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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520

빡빡이와 장발족 80년대 장발이 유행한 가장 큰 이유는 두발 자율화였다. 자율화 때문이 아니라 자율화 이전 까까머리에 대한 억압 때문이었다. 왜 머리를 까까머리로 윽박해야 했는지 흔히 군사 문화 영향을 드나 나는 그걸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관행이었다. 왜 빡빡 밀게 했는지, 자율화 시대가 되니 종래의 억압에 대한 반발이 분출했다. 그리하여 다들 보란듯이 장발로 갔다. 엿먹으라였다. 한국현대사를 기술할 때 저 두발 자율화와 교복 자율화는 유신정권 시작만큼 중요하다. 이 억압과 허용의 길항에서 또 하나 중대한 사건은 내가 군복무 시절 일어난 과외자율화다. 한국현대는 이런 제압과 규율이 빚어낸 교향곡이다. 그나저나 저 사진 속 순단이랑 동순이는 어데갔는지 모르겠다. (2018. 9. 25) 2020. 9. 25.
부산 초원복국을 찾아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른바 부산 초원복국 사건 무대가 되는 그 식당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이 주도한 이 모임엔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조리 참석했다. 92년 12월인가 11월에 일어난 이 사건은 당시 대선 정국을 흔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대권은 YS로 갈수밖에 없었다. 부산 지인을 만나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이곳을 추천하는지라 두 말 없이 가자 해서 갔다. 주변 일대 풍광이 모조리 바뀌었지만 대략 이 어간인 것만은 분명한 그곳에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사건이 하도 요란했던 만큼 이 식당은 이후 유명세를 타고 번창일로를 걸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기자가 된 시점은 93년 1월 1일이며 또 내가 첫 발령지로 부산지사에 배치된 시기는 그해 6.. 2020. 9. 23.
다시 생각하는 경애왕의 비극 나는 앞선 고찰들을 통해 포석정鮑石亭은 신성한 맹서를 토대로 하는 혼인이 이뤄지는 웨딩홀이었으며, 한편으로는 화랑과 그가 이끄는 무리한테는 종묘와 같은 신성 공간이었음을 주장했다. 그곳은 웨딩홀인 까닭에 남녀 결합을 상징하는 석조 구조물을 형상화한 것이며,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그곳에는 역대 화랑 중에서도 특히나 존경받는 문노와 같은 인물 초상화를 봉안한 제의시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포석정이 신라시대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약칭 포사鮑祀라 일컬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성격에서 포석사가 신라 하대로 올수록 유흥시설로 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웨딩에는 언제나 유흥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천년왕국 신라가 마침내 종적을 감추고 마는 그 결정적인 사건, 다시 .. 2020. 9. 21.
포석정鮑石亭, 그 천년의 비밀을 까부시며 1. 화랑세기가 폭로한 포석정 경애왕 비극의 주무대인 경주 포석정이 화랑세기에는 포석사鮑石祀 혹은 포사鮑祀라는 이름으로 여러 군데 보이거니와, 祀라는 말에서 엿보듯이 이곳은 유흥을 위주로 하는 정자가 아니라, 신성한 제의祭儀 공간으로 등장한다. 요컨대 화랑세기가 말하는 포석정은 사당이다. 건립시기는 명확한 언급이 없지만, 적어도 법흥왕 이전임은 확실하다. 종래 포석정은 신라 말기에 등장하는 까닭에 막연히 그 무렵에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화랑세기가 폭로하는 포석사는 그 연원이 아주 깊어 신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예식장으로서의 포사鮑祀 포석사 혹은 포사의 기능과 관련해서는 현재 두 가지 정도를 적출하는데 첫째는 예식장이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화랑의 전당이다. 먼.. 2020. 9. 21.
치초郗超가 추천한 사현謝玄, 부견符堅을 박살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제7권 식감識鑒 편에 나오는 일화다. 현존본에서는 이 편 22번째 이야기로 수록됐다. 식감識鑒이란 간단히 말해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안이다. 아래 텍스트는 《세실신어잔소世說新語箋疏》(여가석余嘉錫 撰)에 기반한다. 익히 알려졌듯이 《세설신어》는 남북조시대 유송劉宋 유의경劉義慶 찬이지만, 본문이 너무 간단해 이를 보완한 해설본 혹은 보완본이 이미 같은 육조시대 소량蕭梁 유효표劉孝標 손을 거쳐 나오니 세상에서는 이를 《세설신어주世說新語注》라 한다. 파란색 고딕이 유의경 원문이고, 그 사이에 첨가한 검은 글씨가 유효표가 덧보탠 부분이다. 이에서 보듯이 주석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분수다. 번역은 김장환 역주(살림 간)을 인용하되 약간 수정을 가한다. 22 郗超與謝玄不善。〔一〕符堅將問晉鼎,既已狼噬梁.. 2020. 9. 18.
쌍분과 쌍탑 남쪽과 북쪽에 별도 봉분을 잇대어 쌓아 만든 경주 황남대총은 두 봉분을 구별하고자 각기 위치하는 방향에 따라 북쪽에 있는 것을 북분北墳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것을 남분南墳이라 한다. 적석목곽분 시대 신라 무덤에는 이런 사례가 적지는 아니해서, 현재까지 발굴된 것으로 3곳 정도가 아닌가 하는데(하도 경주시내를 까디빈 데가 많아 사례는 세밀히 조사하면 증가할 것이다) 내가 세심하게 살피지 아니해서 자신있게 말할 순 없거니와, 대략의 기억대로 말하자면 북쪽이 여성, 남쪽이 남성으로 패턴화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둘은 현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관계와 관련한 답은 부부다. 적석목곽분은 그 구조상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효율성이 너무 적어 같은 봉분에다가 부부를 함께 매장하는 이른바 단일 봉분 합.. 2020. 9. 17.
백화수피白樺樹皮 논쟁을 끝내버린 황남대총 고깔 황남대총을 구성하는 두 봉분封墳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남쪽에 위치한다 해서 남분南墳이라 일컫는 데서 출토한 유물로 딱 한 번 대외로 공개된 적이 있다. 그때 박물관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백화수피제 고깔과 관장식 白樺樹皮帽冠裝飾 Birch-bark Cap Fragments and Branch-shaped Ornaments 같은 사진을 좀 확대해 본다. 이 유물이 중대성을 함유하는 까닭은 첫째, 백화수피 활용 시점을 끌어올린 점이요, 둘째 그 정체를 실상 자작나무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신라가 백화수피를 활용한 이용해 여러 용도로 활용해 사용한 시점을 종래에는 6세기 초반 무렵 축조로 보는 천마총 출토 장니 천마도를 통해 추정했다면,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신라가 이걸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인 까닭이.. 2020. 9. 17.
늙으면 물러나야, 노퇴老退와 궤장几杖 하사 앞선 강의 혹은 글에서 나는 595년생인 김유신이 만 70세가 되는 해(664) 정월에 사표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근거로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는 예기禮記 왕제王制편 언급이 불문률처럼 통용하는 신라사회 한 단면을 소개하면서, 이런 모습이 고려시대에는 더욱 극성을 부리면서, 때로는 이것이 중요한 정치역학 구도가 되어 정적을 퇴출하는 방법으로 작동하기도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아가 70세 퇴직을 허락하면서, 혹은 허락하지 않으면서, 이 무렵이면 임금이 그 원로신하한테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와 의자를 하사하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하는 의식과 더불어, 그런 사람이 궁궐을 출입할 적에는 허리를 굽히지 아니해도 되고, 임금 앞에서는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아니해도 되며, 가마를 타고 들락거릴 수 있게 .. 2020. 9. 16.
에밀 졸라와 집단광기 내가 읽은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J'accuse..》의 객체를 집단 광기로 본다. 실제 그의 관련 논설 곳곳에서는 대중의 광기를 논한다. 집단 광기를 모두가 경멸하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그 광기에 포박된 줄을 모른다. 이르노라. 이것이 광기니라. (2014. 9. 9) 2020. 9. 16.
종이로 쓴 자작나무 껍질 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Thursday, September 14, 2017 www.archaeology.org/news/5916-170914-bakhshali-manuscript-dates?fbclid=IwAR3gnaqFk9gNthp0mJOCWCPacxnTi6Ca_6IyYnbT7g272vdncH08qiCXmtMNew Dates Push Back Use of Zero - Archaeology MagazineOXFORD, ENGLAND—The Guardian reports that new radiocarbon dates have been obtained for the Bakhshali manuscript, which was written in an ancient form o.. 2020. 9. 16.
땅딸보 조조曹操 중국 남조시대 송宋나라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 찬 《세설신어世說新語》를 구성하는 여러 편篇 중 용지容止라는 이름이 붙은 데는 제목 그대로 용모와 행동거지에 관한 모음집이라, 그 첫 머리 일화가 위무장견흉노사魏武將見匈奴使라는 제하로 실린 다음 이야기다. 저 제목은 위魏 무제武帝가 흉노 사신을 접견할 때 정도를 의미한다. 위 무제가 장차 흉노 사신을 접견하려 했지만, 스스로 몰골이 비루하니 먼 나라에 위엄을 보이기는 부족하다 생각하고는 최계규崔季珪한테 대신 자기 역할을 하게 하고는 무제 자신은 칼을 잡고는 어좌 앞머리에 서 있다. 친견이 끝나고서는 간첩을 시켜 흉노 사신한테 묻기를 "위왕은 사람이 어떻습디까?" 하니, 흉노 사신이 대답하기를 "위왕은 진짜 고아한 풍채가 남들과 다릅니다. 하지만 어좌 앞머리.. 2020. 9. 15.
김유신 탄생 전야, 서현과 만명의 결합 김유신이 어떤 사연을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근거는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 上이 저록한 다음 대목이다. 일찍이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눈짓으로 꾀어 중매를 거치지 않고 결합했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 태수太守가 되어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니, 숙흘종이 그제서야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 미워해서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갑자기 벼락이 문간을 때리자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이 없었다. 만명은 창문으로 빠져나가 드디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서현이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만명도 신축일辛丑日 밤에 한 어린아이.. 2020. 9. 14.
한반도에 침투하는 생일 앞선 글에서 나는 동아시아 생일이 황제를 기준으로 당 현종 때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런 생일이 한반도에도 침투하기 시작하니, 이를 고려사절요에서 죽 뽑는다. 빠진 것이 있을 줄로 알지만,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본다. 나아가 이를 정리한 글도 내가 보기는 했다.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병술 12년(1046) ○ 12월에 백관이 건덕전에 나아가 성평절(成平節)을 하례하고, 재추(宰樞) 급사중승(給舍中丞) 등 왕의 시신(侍臣)들에게 선정전(宣政殿)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성평절은 왕의 생일이다. 승록사(僧錄司)가 아뢰기를, “이제부터 성평절이 되면 국가는 기복도량을 외제석원(外帝釋院)에 7일 동안 설치하고, 백관들은 흥국사(興國寺)에서, 동서 양경ㆍ4도호ㆍ8목은 그곳에 있는 절에서 .. 2020. 9. 14.
멀고먼 부처님을 향한 길, 삼중잠금장치 채운 석굴암 석굴암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평면도다. 인터넷에서 긁어왔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제시한다. 보다시피 석굴암은 부처님이 위치하는 원형 주실主室을 뒤쪽 후미진 곳에다가 넣고, 그 전면에 평면 방형인 전실前室을 배치했으니, 두 군데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유의할 점은 주축 장축은 동-서 방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남북 방향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은 서쪽 끝 후미진 안방에서 전실 너머 동쪽을 향한다. 더 간략화한 평면도로 역시 아무데서나 긁어왔다. 전실과 주실 통로를 비도라 했는데, 저건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용어인지 모르겠다. 중국 고고학 용어를 빌린다면 용도甬道라 하는 통로다. 보다시피 전실 양쪽 벽면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 해서, 불국토를 팔방에서 호위하는 무사 8명을 네 명씩 벽면.. 2020. 9. 10.
모란은 억울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수록한 신라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 이야기, 곧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를 보냈는데 그 모란 꽃에 나비가 없음을 알고는 그 모란씨가 발아한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임을 선덕이 알았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둘러싼 곡해 하나를 낳게 하거니와 이르기를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이니,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테 주어진 각종 모란은 꽃이 진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가 모란을 곡해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저 이야기 어디에도 모란은 본래 향기가 없는 꽃을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대신 이세민이 보낸 모란은 꽃이 향기가 없는 특수품종이라는 말을 강조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내친 김에 동아시아 역사를 보건.. 2020. 9. 7.
야유타국阿踰陁國과 황룡국黃龍國, 허황옥을 둘러싼 두 곳의 출자出自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 파트너 허황옥許黃玉을 둘러싼 출자出自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절록切錄한 고려 문종시대 문헌인 《가락국기》가 거론한 아유타국阿踰陀國이 전부였으니, 이는 후대 허왕혹 출신지를 인도로 거론하는 바탕이 된다. 그 근거가 된 대목을 보면 김수로와 첫날을 보내는 날 그 배필이 된 허황옥이 수로한테 하는 다음 말이 그것이니,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 하며 나이는 16살입니다.[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黄玉, 年二八矣.] 유의할 점은 그가 아유타국을 거론했지, 그것이 인도인지 어딘지는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아유타국을 인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한 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 2020. 9. 5.
지도로란? 이젠 설명하느라 입이 아픈데, 나는 그 태고적부터 저 지도로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활동했거니와, 지금도 유튜브 계정 이름은 '지도로 고고야담 JIDORO'S HISTORY STORAGE'이라 할 정도이니, 그런 까닭에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로 대체 지도로는 무슨 개뼉다귀냐 물어오는 분이 더러 있으니 그런 사람들한테 매양 나는 "아 그거? 신라 지증왕 이름인데 짬지 길이가 45센티라 해서 내가 가져다 쓰는 거야" 하면 "에이 무슨 그런 장난을 치느냐" 하기에 나는 다시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삼국유사에 나와" 하면 "에잇 설마요?" 하는 반응이 압도하며 많다. 우리 사회가 불신지옥이라 하더니, 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믿지 못한단 말인가?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에는 지철로왕智.. 2020. 9. 5.
접어 포개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신라금동관 6세기 초반에 만들었다 추정하는 신라 적석목곽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은 발굴 결과 금동관을 접어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저 금동관이 얼굴을 거의 온전히 가린 것은 분명하되 그렇다면 저걸 머리를 아예 다 덮어씌운 것인지 아니면 절반을 포개서 수건처럼 얼굴에 댄 것인지가 궁금해 조사단에 직접 확인한 결과 후자임이 확실하니 그것 관이 접힌 부분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라 한다. 얼굴 부분만 떼서 보면 이렇다. 앞선 관련 글에서 내가 잠깐 말했듯이 이 전통이 같은 경상도 문화권에서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면 부채를 저런 용도로 쓰기도 함을 본다, 부채로 저런 식으로 시신 얼굴을 가리는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년전, 그러니깐 저보단 대략 오백년 정도 빠른 서력기원 전후 이른바 통나무 목관.. 2020. 9. 4.
발명한 김정희와 박제가 《용재수필》 물린 자리 허전함을 메꾸고자 새벽에 뒷다리 잡기 시작한 후지즈카 책 역본이다. 원저 명성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거나와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는 '발명'되었다. 다시 말해 추사는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주물한 이미지다. 그 위대한 주물의 용범을 만든 이가 후지즈카요 그가 주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후지즈카를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다. 저 일본어 원전은 무단 복제본으로 오래전에 구해 놓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지즈카가 더욱 놀라운 점은 박제가 역시 저의 손끝에서 관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 후지즈카에게 김정희나 박제가가 종착역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바는 청대 고증학의 일본 열도 상륙의 양상이었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2020. 9. 4.
김유신의 두 마누라와 네 딸, 그리고 조카 김유신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정실 자식으로는 태종무열왕 딸인 지소부인과의 사이에서 5남4녀를 두었다. 아들로는 삼광과 원술 등이 모두 대아찬 이상 등위의 재상을 지냈다는 점을 특기할 만 하거니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 후광이었다. 문제는 저 기술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세한 근거 제시는 생략하지만 저 아들 중에서 행적을 분석하면 맏아들 삼광은 결코 지소부인 소생일 수는 없다. 김유신은 655년 지소와 혼인했는데, 당시 지소는 스무살도 안된 애송이고, 반면 삼광은 그 지소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았다. 더구나 김유신이 지소를 맞아들일 때 나이가 이미 61세라, 이때까지 미혼으로 지냈다고 보긴 힘들다. 고자도 아닌데 말이다. 삼국사기와 화랑세기 관련 기술을 종합한 김유신 혼인 관계도와 .. 2020. 9. 3.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2) 고구려왕을 효수했다는 주장 표문은 요컨대 우리랑 힘을 합쳐 고구려를 치자는 내용이다. 당신들이 고구려 서쪽을 치면 남쪽에서 우리가 쳐서 고구려를 협공하잔 것이다. 당시 백제와 개로왕이 완전한 고구려 타멸, 곧 멸망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본떼보여주긴지는 알 순 없지만 군사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이 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저와 고구려는 조상이 모두 부여 출신이므로 선조 시대에는 고구려가 옛 정을 굳건히 존중하였는데, 그의 조상 쇠釗가 경솔하게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군사를 거느려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왔습니다만 우리 조상 수須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 같이 달려가 기회를 타서 공격하니 잠시 싸우다가 쇠의 머리를 베어 효시하였습니다." 이에서 말하는 쇠釗가 바로 100년 전에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은 고.. 2020.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