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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713

산성이 무에 소용인가? 북한산서 소환한 임경업과 윤선도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산성 무용론이 봇물터지듯 한다. 산성을 놔두고 적들이 횡하니 지나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백마산성 임경업이 그 결정적 단초였다. 호언장담.. 하지만 철기군은 잘 있으레이 한마디 남기곤 한양으로 휑하니 날았다. 멍 때린 임경업이 할 일은 암것도 없었다. 산성이 효용성을 지닐 때는 첫째, 적이 쌈을 걸어와야 하고 둘째 걸어오지 않고 지나 쳐도 산성에서 기어나와 끊임없이 적 배후를 교란할 때다. 하지만 조선군은 산성에만 기어박혀 암짓도 하지 않았다. 산성이 효용성을 지닌 유일한 곳이 고갯길. 이곳은 적들 역시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산성 무용론엔 정치투쟁도 점철한다. 윤선도는 대표적 산성 무용론자였다. 산성이 완전 폐기되기는 조선말 대한제국이었다. 실제 페기된 것이며 아무짝에도.. 2021. 5. 8.
유길준의 측량학교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다. 프론티어 frontier 와 보더라인 borferline 의 차이거니와 Borderline을 긋기 위한 필요조건이 측량 메저먼트다. 유길준이 하필 측량학교를 세웠겠는가? 수탈?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2018. 5. 6) *** 누누이 지적했듯이 근대국가는 측량과 인구센서스 이 둘을 축으로 그릇을 만든다. 측량은 경계의 확정이라 그 경계는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이 모호함은 빗금에서 탄생하니 그 모호는 선을 그어서 쟁투의 빌미를 차단한다. 이 측량을 기반으로 지도가 완성된다. 인구센서스는 결국 징발을 위한 기초단위다. 세금을 얼마를 거두며 군대 노동력은 어찌 징발할 것인지는 성별 연령별 통계가 있어야 한다. 이를 수탈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다. 그 주체가 대한제국이건.. 2021. 5. 6.
소화昭和 연간 검근장檢斤帳 소화 연간 창평 검근장檢斤帳 색다른 문서다. 개인 소장인데 담양군에 기증하기로 했단다. 검근장이란 곡물을 저울질한 문서다. 지금도 시골에선 무게를 근으로 재서 몇 근 한다. 소화 연간에 가마니에 담아 검근하여 거래하도록 입법화했다. 이는 그 사정을 증언하는 문서다. 2021. 4. 30.
경부자은輕部慈恩, 고적조사 손길을 벋어난 공주고고학의 제왕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손길이 공주에는 생각보다 뻗치지 아니했다. 그 자리를 가루베 지온 경부자은 輕部慈恩이 헤집고 들어갔다. 메이지대학 한문학과 출신인 그는 조선으로 넘어와 애초에는 평양 숭실로 갔지만, 그 일대는 총독부가 장악해 정착하지 못하고 그 꿈을 공주에서 펼치기로 하고 남하했다. 놀랍게도 그의 조사는 모두가 불법이고 도굴이었다. 더 놀랍게도 그런 불법과 도굴을 그는 조사보고서로 남겼다. 그의 조사는 도굴과 발굴 그 어중간을 보여준다. 싫건좋건 웅진백제고고학은 그의 이름없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웅진고고학 백제고고학의 비조다. 그가 남긴 글은 이 두 책으로 정리됐으니, 작은 것이 생전에 나온 것이요 후자가 유저다. 나는 이 두 책을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실에 소장 중인 판본을 이용하곤 했으니, 불편이 .. 2021. 4. 28.
[진덕眞德, 꿔다논 보릿자루 멀대여왕] (3) 정적을 처단하고 공포정치를 개막한 칠성파의 절대지존 김유신 신라 진덕여왕 시대 왕은 꿔다논 보릿자루였으니, 이는 진덕 개인 성향도 한 몫을 했을 성 싶거니와, 그는 첫째 왕으로서 신민을 군림하며 그들을 시종 주도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던 듯하며, 둘째 집권과정에서 그 자신의 뜻 혹은 힘이 아니라 엎혀서 권좌에 오른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이는 분명 그 직전 권좌를 군림한 사촌언니 선덕과는 다른 점이었다. 그런 선덕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쓰러져 눕자, 이 와중에 권좌 탈취를 노린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신라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뜨린 이 쟁투는 김유신 시대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그 반란진압 총사령관으로 마침내 비담을 짓눌러 버린 김유신은 그 와중에 선덕이 세상을 떠나고 진덕을 옹립하고는 그 수습책으로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비담.. 2021. 4. 25.
"소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뿔라졌어요" 자묵게 해주소서 *** 오늘 어떤 지인 글을 보니 조선시대 소 도살에 관한 논급이 있어, 그와 관련해 내가 다룬 옛날 관련 기사 하나를 끄집어 내어 본다. 도살 금지 조선시대 소 도살 '백태' 송고시간 2011-09-14 06:35 전경목 교수, 고문서서 각종 편법 발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제 상전은 어버이의 병환이 한 달 전부터 갑자기 깊어져 의원에게 물어보니 중풍허증(中風虛症)이라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의원은 '반드시 우황을 복용해야만 낳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금(牛禁)ㆍ주금(酒禁)ㆍ송금(松禁)의 세 가지 법금(法禁)은 실로 나라에서 금하는 일이라 감히 이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제 상전은 그저 혼자 애를 태울 뿐입니다." 조선후기에 나온 공문서 작성 서직집인 유서필지(儒胥必知).. 2021. 4. 24.
문물교류는 2천년 전에도 리얼타임 삼국사기 김유신金庾信(595~673) 열전을 보면 그 아비 서현이 아들놈 이름을 지을 적에 중국의 유명한 유신庾信(513~581)이라는 사람 이름을 땄다 했다. 이에 이끌려 중국의 유신이 몹시도 궁금했던 적 있다. 이 유신은 중국 문단에선 소위 유미주의 열풍의 선두주자에 선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에 대한 행적과 문학세계가 궁금하던 차에 이 논문을 발견하고선 복제했으니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단행본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저 열전 기록을 취신할 때 흥미로운 점은 유신이 신라사회에 알려진 시기다. 중국 문단의 스타 유신은 동시대 신라의 스타이기도 했다. 문물교유는 그때도 즉각이었다. (2017. 4. 24) *** 내가 이 업계에 처음 투신할 무렵에 보니 모조리 타임래그를 설정했으니, 이 대목이 내가 보.. 2021. 4. 24.
마왕퇴馬王堆 태산서胎產書 충북 진천엔 김유신 태실이 있다. 그는 진천 태생이고 더구나 삼국사기에 그의 태실이라 했으므로 이곳이 진짜 그의 태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데 관건은 이를 제외한 태실 조성 관련 기록이 조선시대 이전엔 전연 안보인다는 사실이다. 중국 기록을 봐도 당대 이전 문헌에서 태실 관련 기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김유신 태실은 평지돌출이다. 한데 내가 십수년전에 검토한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塞 출토 백서錦書 중 태산서胎產書를 보니, 그에 태를 안치하는 방법을 기록한 대목이 있고, 더구나 그 대목에 붉은 펜으로 내가 차기劄記하기를, '김유신 태실'이라 한 메모가 있는 옛날 책을 발견했다. 이런 등신 멍충이 바까야로 (2017. 4. 21) *** 마왕퇴 백서白書 중 하나로 본래 이런 이름이 아니라, 나중에 이를.. 2021. 4. 21.
훈고와 의리 겸용을 주장한 《한유통의漢儒通義》 훈고와 의리 겸용을 주장한 한유통의漢儒通義 송고시간 2013-11-08 16:43 중국 청말의 저명사상가 진례 저술 국내 첫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젊을 때부터 한대漢代 유학자들의 서적으로 읽으셨고 중년에는 송대宋代 유학자들의 서적을 읽으셨지만 실사구시의 태도를 견지하셨으며, 한대 학술과 송대 학술 사이에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다투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는데 이는 한대 유학자들의 서적도 분명히 송대 유학자들이 연구하려던 의리를 밝혔다고 보셨기 때문이다." 제자 호석연胡錫燕은 1858년 7월 스승 진례陳澧(1810-1882)가 정리한 책 한유통의漢儒通義에 부친 발문에서 이렇게 썼다. 그에 대해 진례는 이보다 2년 전인 함풍 6년(1856) 6월 초하루에 쓴 이 책 .. 2021. 4. 20.
버트런트 러셀이 간파한 민주독재의 창시자 장자크 루소 그(루소-인용자)는 낭만주의운동의 시조이자 인간의 감정에서 인간성에 위배되는 사실을 추론한 사상 체계의 창시자이며, 전통적인 절대군주제에 대립하는 유사 민주주의적 독재정치를 옹호한 정치철학을 고안한 사상가였다. 루소 이후 개혁가로 자처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한 부류는 루소를 추종하고 다른 부류는 로크를 추종했다. 때에 따라 그들은 협조관계를 유지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두 부류 사이에 양립할 수 없는 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양립할 수 없는 면들이 명백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 히틀러는 루소의 후예로, 루스벨트와 처칠은 로크의(이상 870쪽)의 후예로 평가한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2009.10 디종 아카데미는 "예술과 과.. 2021. 4. 18.
만명부인은 코끼리? 김유신 출생을 정리한 삼국사기 기록은 문제가 적지 않다. 김유신이 워낙 거물인 까닭에 갖는 영웅담이 뒤섞여 있다. 우선 그의 임신 기간이 20개월이라는 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이것이 어떤 역사적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면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 상상 임신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둘째 일부러 임신했다고 속였을 가능성도 내치지 못한다. 만명 부인이 코끼리도 아닐진대 임신 기간이 20개월일 수는 없다. 참고로 코끼리 임신 기간은 21~22개월이라 한다. *** 강민경 선생 전언에 의하면 추사 김정희는 24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뻥을 쳤다 한다. 김유신을 모델로 삼아 그보다 허풍을 더 떨었나? 2021. 4. 17.
형해화한 말타기 인사동 어느 막걸리집 비름빡에 붙은 1957년 서울 충정로 포착 장면이란다. 이 말타기는 내가 어린시절에도 자주 했던 놀이지만 지금은 계우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조형물로만 편린을 전할 뿐이다. 2021. 4. 12.
농부 밥 먹고..겸상은 없었다 농부 밥 먹고 라는 제목을 스스로 붙인 기산 풍속도 중 한 장면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근자 상설전시실을 개편하면서 내걸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Farmers Eating 복제품 Replica | 1880년대 1880s, 기산 김준근 箕山 金俊根, 생몰년대 미상 Gim Jungeun (pen name: Gisan; birth and death date unidentified) 독일 MARKK 원본 소장 Original in the collection of 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Germany 김매기를 하고 나서 농부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 A work of genre art depicting farmers hav.. 2021. 3. 29.
보쿠와 열라리나 바까야로데싯따 1971년 7월, 발견 개봉 당시 무령왕릉 대강 유물배치 양상이다. 대강이라 하는 까닭은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도 개판으로 발굴해서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적어도 위치관계 배치양상은 확실한데 무덤길 입구 진묘수랑 그 바로 앞쪽 묘권墓券 두 장 배치관계도다. 묘권 두 장은 무덤 안쪽에 있는 사람 기준으로 텍스트 방향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저 문건은 무덤 주인공인 무령왕릉 부부가 화자話者이자 발신자다. 이 점 잊어서는 안된다. 이 무령왕령은 정확히는 부부능이다. 왕이 먼저 죽어 묻혔고 왕비는 나중에 죽어 추가됐다. 이것이 왕이 죽었을 때 묘권 배치 양상이다. 역시 묘권은 철저히 왕 중심이다. 왜 두 사람은 머리를 남쪽에 두었고 부부 위치는 바뀌었는가. 이것이 나로선 체증이었다. 이걸 해결한.. 2021. 3. 26.
똥간에서 낳은 영국왕자, 똥간에서 태어난 사다함 아비 "너무 빨리 나와서"…영국 여왕 증손자, 화장실 바닥에서 태어나 송고시간2021-03-25 06:00 최윤정 기자 www.yna.co.kr/view/AKR20210325003200085?section=international/all&site=hot_news"너무 빨리 나와서"…영국 여왕 증손자, 화장실 바닥에서 태어나 | 연합뉴스(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증손자가 집 화장실 바닥에서 태어났다고 더 타임스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www.yna.co.kr 유례없는 장수시대에 생전에 증손주 보는 일이 드물지 않거니와, 이러다간 고손주도 생전에 맞이하는 시대로 가지 않을까 한다. 저 할매 그리 집안 문제로 골치 아픈 일 많지만, 참말로 독해서인지 길고도 오래도록 권좌를.. 2021. 3. 25.
김유신과 천관녀, 자율주행전기차의 비극 부모 허락없이 만나고 또 아 뱄다 해서 지금의 충북 진천 산골 변경으로 쫓겨난 서현과 만명. 변변찮은 산부인과 하나 없는 궁벽한 동네인 데다, 초산이라 출산에 애를 먹어 코끼리마냥 스무달 만에 낳은 떡뚜꺼비 같은 아들 유신. 금지옥엽 너무 귀하게 오냐오냐 키워서인지, 경주로 돌아와서는 매일밤 월성 인근 룸사롱이며 클럽에서 죽치는 생활이라 술만 퍼마시고, 마약까지 손대기 시작했으니, 그 동네 인근에 천관이란 절색가인이 주택형 고급 싸롱 열어 놓고는 돈 많고 출세가 보장된 사람들만 손님으로 골라 받았으니, 유신도 개중 한 명이라 펄펄 끓는 두 청춘 마침내 음냐음냐 너 아니면 나 못 살아 죽자사자 맨날맨날 붙어 노는지라 이 소식 어쩌다 엄마한테 들어갔다. "소곤소곤 블라블라, 마뉨, 대련님이 맨날맨날 밤마다 .. 2021. 3. 21.
제사는 하이힐을 신고 조선시대 그릇류 중에서 이른바 제기祭器라 해서 제사와 같은 각종 의식에서 신한테 공헌하는 음식을 담는다. 제기는 귀신의 영역이라 산 사람들이 딩굴고 사는 이승과는 여러 모로 다른 법이라 같은 그릇이라 하지만 귀신이 쓰는 그릇과 산사람이 사는 그릇 역시 그런 구별표식을 디자인으로 하게 되는데 그 가름선이 바로 굽다리다. 굽다리가 사람 꼬리뼈맹키로 흔적기관으로 남았으면 주로 산 사람을 위한 것이고 저처럼 굽이 높은 하이힐은 귀신용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의 구분선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굽다리가 지닌 가치가 바로 人과 鬼 그 갈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귀신은 굽다리를 쓰는가? 날아다니는 존재인 까닭이다. 그래서 산 사람과는 달리 움직임에 제약이 없다. 그네들 팔은 가제트 팔이다. 간단히 말한다. 귀신은.. 2021. 3. 20.
世紀 혹은 世記와 화랑세기 기紀는 근간이 記와 발음, 뜻이 같다. 그래서 세기世紀는 世記라고도 한다. 世紀 혹은 世記는 무슨 뜻인가? 순차별 전기라는 뜻이다. 순차는 무엇인가? 먼저와 나중을 구별하되, 먼저 무슨 직책에 있었던 사람을 앞세우고 뒤따르는 사람은 나중에 쓴다. 세가世家라는 말이 있다. 기전체 역사에서 이는 왕대별 주요 사건 일지다. 고려세가라 하면 반드시 그 순서는 초대 태조 왕건에서 시작해 순서를 밟아 마지막 공양왕까지를 기록한다. 세기가 무엇인지 이 세가를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화랑세기花郎世記가 있다. 삼국사기 김대문 열전에 그가 지은 책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한데 그것을 베꼈다고 간주되는 남당 박창화 필사본에는 그 제목이 花郎世紀다. 둘 사이 미묘한 표기차이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나 같은 말이다. 이 화랑세.. 2021. 3. 18.
근대 도시 탄생의 증언록 《마산번창기》(1908) 마산의 대관大觀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맑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馬山灣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 구라파[泰西]의 어떤 이는 이 항만을 가리켜 태평양 해안으로서는 호주의 시드니 항, 북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 항에 다음가는 세계 세 번째 최우량의 산수山水라 하여 그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동양에서 얼어붙지 않는 항구로서 마산을 얻으려고 마산사건馬山事件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듯이 얼마나 마산이 그 형세가 좋고 그 풍경 역시 보기 좋기는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사뭇 흥분한 어조로 마산을 이리 찬양하는 이는 100년도 더 지난 1908년 어느 일본인이다. .. 2021. 3. 18.
창왕명 석조 사리감이 관 뚜껑인 이유! 부여 능산리 절터 중 목탑터 심초석 자리서 수습한 소위 창왕명昌王銘 백제 사리감舍利龕이다. 사리감이란 사리를 안치하고자 파서 만든 동굴 모양 굴이란 뜻이다. 한데 저 모양이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무덤 혹은 목관 단면을 빼다박았다. 소위 궁륭형 혹은 터널형이다. 탑은 늘 주장하듯이 부처님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다. 그러니 동시대 무덤 양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탑은 언제나 고분이라는 관점에서 돌파해야 한다. 이 관점을 알지 못하면 언제나 저런 사리장치는 미술사, 더욱 좁게는 불교미술사 영역을 맴돌 뿐이다. 탑은 고분이라는 관점에 접근해야 비로소 고고학이 된다. 나아가 그것은 불교 사상사가 되는 것이다. 흡사 생김새는 우체통이다. (2017. 3. 13) 2021. 3. 17.
천전리 서석의 어사추於史鄒와 화랑세기의 보현普賢 울주 천전리 서석이라는 돌맹이에 새긴 중고시대 신라 금석문을 분석하면 신라 법흥왕과 그의 동생 사부지 갈문왕徙夫智葛文王한테는 이들 형제의 여동생으로 어사추於史鄒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돌맹이를 장식하는 무수한 글자와 문양 중에서도 법흥왕 시대에 작성 문서를 보면, 문제의 여인이 모습을 들이미는 것이다. 다만 문자 판독 여부에 따라 어사추於史鄒라는 대목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지만, 그가 법흥왕과 사부지 갈문왕 여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아무튼 우리한테 중요한 대목은 기존 문헌에서는 전연 존재를 알 수 없는 지증왕과 연제 부인 사이에 새로운 소생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지증왕과 왕비 연제延帝 부인 사이 소생으로는 훗날의 법흥왕인 원종原宗과 진흥왕의.. 202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