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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철의 고고통신

<신간 발굴조사 보고서> 경주 석탈해왕 사당지 - 토함산 탐방로 정상구간 긴급수습 발굴조사 보고서

by 경주 레인보우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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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명 : <신간 발굴조사 보고서> 경주 석탈해왕 사당지 - 토함산 탐방로 정상구간 긴급수습 발굴조사 보고서

발간기관 :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발간일 : 2021년 6월 30일

내용 : 이 보고서는 토함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신라 석탈해왕 사당지에 대한 발굴조사 보고서이다.

토함산 정상 탐방로에는 초석 1매가 노출된 상태이고, 초석 주변으로는 지형 훼손이 계속 진행 되고 있었다. 훼손된 지역은 ‘경주 석탈해왕 사당지’ 내에 위치하며,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한 결과 는 건물지 2동, 축대 2기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통일신라~조선시대 막새, 평와, 도기, 청 자, 분청사기,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토함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평평한 대지에는 초석과 기와편이 노출되어 있어 일찍이 사당지로 추정하였고 주변으로 트여 있어 멀리 동해까지 보인다. 주변으로는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반경 2㎞ 이 내 분포하는 문화재는 4곳에 불과하다. 탈해왕 사당지와 유적으로는 동악봉수지가 근접해 있고, 남동쪽 840m 지점에 석굴암과 남서쪽 약 1.7㎞에 불국사가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약 230m 지점에서 유물산포지(경주 황용동 토함산 건물지)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유물을 통해 본 사당지의 존속시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전기까지로 추정되며, 유구는 고려 중기~조선시대 전기의 건물지와 축대가 남아 있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의 연화문수막새와 당초문암막새가 확인되며, 고려시대 명문와, 토제말, 철제말 등이 확인된다.

명문와는 A형, B1, B2, B3형으로 구분된다.

A형은 중앙에 종서양각(縱書陽刻)이 된 ‘仇於馹’ 명문과 상하에 뇌문(雷文)이 있다.

B1형은 시문형태가 종서양각(縱書陽刻)이고, 명문은 “癸巳年分施主尹山崔字李堅”으로, 기년명과 시주자가 있다.

B2형은 종서양각(縱書陽刻)이고, 명문내용은 “□□施主尹山”으로 시주자가 있다. 앞의 두 글자는 알 수 없다.

B3형은 2행 우서양각(右書陽刻)을 하였다. 내용은 “彌勒院造(瓦)燔施主尹山崔字李 堅”으로 공급처와 시주자가 있다. 

석탈해사는 문무왕 20년(680)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였고, 문헌과 고지도를 통해 동악봉수가 고려 말부터 18세기까지 존재해 사당과 봉수대가 공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 표지
유적 전경
유구배치도
유적 근경
출토유물 각종
출토 명문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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