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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야요이인 이야기5

1966년 4월의 조선일보 기사: 기마민족도래설 이것이 1966년 4월, 일본학계의 소식을 전하는 삼불 선생의 언급인데 이 기사에서 에가미 나미오 선생의 "기마민족도래설"이 소개되었다. 이보다 앞선 소식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재 신문 검색으로는 나오는 최초의 기사로 에가미 선생의 이 주장이 대중에 확산되면서 한국인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통념이 1980년대 민족주의 열풍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2024. 9. 15.
기마민족의 신화를 깨야 한반도 말의 역사가 보인다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한국에는 한민족이 기마민족이라는 신화 아닌 신화가 있다. 명백히 에가미 나미오의 주장 기마민족일본정복설에서 기원한 듯한 주장으로사실 한민족을 기마민족으로 본 시각은 20세기 이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20세기 들어서도 에가미 나미오 주장이 나온 후 돌연 한국인을 기마민족의 후예로 보는 시각이 유행하기 시작했지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이 블로그에도 썼던 것처럼 한국에서 말의 도입의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매우 늦다. 일단 말의 사육 자체가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에서 시작된 데다가현재까지 확인된 말의 유존체도 중국보다 시기가 많이 늦다. 일본의 경우 서기 5세기까지도 말의 존재가 잘 확인되지 않는데 일본과 같은 계열의 도작문명의 상류에 해당하는 한국의 경우도 청동기시.. 2024. 9. 15.
한반도에서 왔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야요이인이 외부에서 도래했다는 설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설에 대해 부정하는 시각도 많았다. 야요이인과 조몬인은 머리뼈 형태가 분명히 다르지만 이건 식생활 등 환경적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 후에 이것이 부정되면서 현대일본인은 외래계인 야요이인과 재래계인 조몬인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는소위 이중구조론이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때 나온 새로운 주장이 외래계는 맞지만 그럼 어디서 왔느냐는 문제였다. 대부분은 한반도를 지목했지만일부는 벼농사와 함께 양자강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불식되어 적어도 양자강을 지목하는 시각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주류의 위치에서는 이미 탈락한 상태라고 본다. 최근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한반도는 맞지만 도래인이 한국인 그 자체는 .. 2024. 9. 14.
도작의 집중화가 일어난 곳: 한반도인가 일본열도인가 일본열도야요이시대에 도작은 한반도에서 넘어갔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일본열도 큐슈 북부에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도작 유적들이 나오는데야요이시대가 시작될 무렵의 촌락들은 도작에의 의존도가 아주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반도의 도작은 잡곡과 함께 혼합농경의 형태로 한반도를 남하하였다. 그렇다면-. 도작이 다른 잡곡을 압도하여 도작에 의존도가 아주 높은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은한반도 남부에서 일어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일어났을까.도작에 아주 높은 정도로 의존하는 촌락은한반도 남부에서 생겨났을까 아니면일본열도에서 생겨났을까. 한반도에서 건너간 주민들은한반도 남부에서 이미 쌀농사를 주력으로 채택하였을까 아니면, 일본열도를 건너간 다음 쌀농사를 다른 잡곡보다 훨씬 많이 .. 2024. 9. 14.
야요이인 논의를 시작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바, 야요이인 이동에 대한 논의를 이제 시작하고자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국문학술지에 야요이인 이야기를 쓰고는 아무 반응도 접하지 못하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고,많이 읽는 일본어권 학술지에 글을 실어 일본에서 관련 논의의 중심에,태풍의 눈으로 직접 들어갈 생각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고대 한국인이 일본열도에 건너가 현대 일본인의 기원이 되었네 아니네나아가서는 일본의 덴노가 백제인의 후예이니 아니니 이런 이야기의 귀추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팩트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한반도에 불리한 이야기일지라도그것이 사실이라면 다 인정하고 밝힐 생각이니, 필자가 야요이인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한국편만 들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노라. 2024.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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