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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44

마왕퇴, 戰國미라, 그리고 楚-漢의 시대: 프롤로그 일단 이 사이트에 이전 써둔 글들이 있어 먼저 그 내용을 링크해 둔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할 듯 싶다. 위부터 아래까지 연속된 연재물이었다.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필자가 조선시대 미라로 초창기 논문을 낼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미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조선시대 historylibrary.net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2)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나라 미라의 경우 다른 나라 미라와 구별되는 특이한 점은 인공적인 방부처리에 의해 만들어진 미라가 아닌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historylibrary.ne.. 2023. 1. 11.
예고: 마왕퇴, 戰國미라, 그리고 楚-漢의 시대 김 단장과 필자가 오래 전부터 준비 중인 단행본 집필 계획이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부지하세월이라 슈베르트 미완성교향곡은 1-2악장이라도 있지 이 책은 아예 나오지도 못할 가능성이 있어 부득이 하게 이 블록에 연재를 시작합니다. 단행본화를 목적으로 하므로 일정 시간 후에는 김단장께서 비공개로 전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게시된 내용은 마지막에 김단장께서 몽땅 고쳐 일반 독자분들 읽기 좋게 고쳐 쓰실 것이므로 마지막 출판물과는 다른 초고에 해당한다고 보셔도 될 듯합니다. 김단장과 필자가 준비한 책은 미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라연구와 관련된 당시 사회문화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흔히 미라 관련 저작들이 필자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엽기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는데 애초에 저작물 자체에 역사문화에 대한 .. 2023. 1. 8.
마왕퇴 백화와 말 전한대 유력자 가족이 뭍힌 마왕퇴 고분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2000여년전 중국 최 정상급의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쾌거로 인문학계를 뒤흔든 쾌거였다. 마왕퇴에는 여러가지 유물이 나왔지만 그 중에 비단에 그린 그림으로는 이른바 T자형의 백화가 유명하다. 당시 중국 양자강 중류지역에 퍼져있던 신화의 세계를 생생히 보여주는 그림으로 그 학술적-미술적 가치가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그림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편집자께서 여러번 소개한 바 있으므로 따로 더 적지는 않겠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에 마왕퇴에서 발견된 백화는 이 그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왕퇴 3호묘에서는 라는 것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서한 당시의 의장행렬의 실세를 볼 수 있는 유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2021. 12. 24.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0): 에필로그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약속한 대로 조선시대 회곽묘 관련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아래 연구에 필자의 글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조선초기 상장의례의 변천은 정종수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박사논문 "조선초기상장의례연구"에 자세하다. 이 논문은 회곽묘만 다룬 논문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주자가례를 도입하는 과정의 논란과 변천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려시대의 석실묘가 조선시대의 회곽묘로 변천해 가는 과정도 자세히 다루었다. 정종수 선생 다음으로 회곽묘의 변천과 관련하여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김우림 선생의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를 권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 김우림 선생의 글은 회곽묘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글이었는데 이 책에 이전 주장이 알기 쉽게.. 2019. 6. 1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9)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의 하나는 회곽묘 구조가 처음 조선 땅에 출현했을 때와 나중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백문화재연구원 방유리 선생의 "조선시대 회격묘 출토 유물의 수습과 보존" (야외고고학 제 7호)이나 김우림 선생의 단행본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을 보면 이 부분이 비교적 자세하다. 김우림 선생 주장에 따르면 조선전기에는 "국조오례의"에 기술된 방식대로 회곽묘를 만들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소위 "국조오례의" 방식의 회곽묘 제작 기법. 방유리 선생의 논문에서 전재하였다. 초기 방식의 회곽묘 제작 방식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묘광을 파고 그 위에 목곽-.. 2019. 6. 7.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8)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불교식 상장례를 타파하고 주자가 정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공식적인 매장 방식으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바닥 그 누구도 회곽묘를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회곽묘에 사용한 재료. 위에 보이는 재료 중에 석회·모래·황토를 삼물三物이라 부르는데 이것으로 섞어 관 주위에 다져두면 굳어 회곽이 된다. 마사토는 무덤 주변의 생토층을 상징한다. 회곽묘는 지배계층의 대 불교 "사상투쟁" 과정 중에 채택된 묘제이므로 회곽묘는 조선 계급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부터 아래로 그 유행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회곽묘는 "국조오례의"의 흉례 "치장" 편에도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국초에 이미.. 201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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