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4)

by 초야잠필 2019. 4. 24.
반응형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원래 화요일 오전에는 글을 올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필자의 글을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면 미안하다는 말씀드린다. 

사실 필자도 생업이 있는지라 되도록 연재 주기를 지키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화요일 연재는 필자가 최근 뭔가를 연구 관련하여 배우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그 투자한 시간 만큼 이 작업에서 시간이 빠져 나갔다. 사실 어차피 빡빡한 스케줄에서 뭔가 하나가 들어오면 다른데서 펑크가 나는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미리 살펴보고 고지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필자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취미생활은 전혀 아니고, 언젠가도 올렸듯이 이 작업이 지난 십수년간의 우리 연구실 활동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결국 어떤 연구자이건 진지하게 깊이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은 의미에서이건 나쁜 의미에서이건 오타쿠가 되기 마련이라 자기 일에만 매몰 되기 마련인데 필자 역시 연구를 공공의 자금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재원의 제공자라 할 시민들에게 어떤 형식이건 연구의 결과를 돌려드려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뭐라도 전공논문과는 다른 형식의 글을 써야 하는데 이것도 일이 밀려 쉽지 않다. 김기자님 블로그를 빌어 정해진 시간에 글을 올리고 있는것도 이렇게라도 억지로 하지 않으면 결국 이 일은 못하게 될 것 같아서이다. 현재 연재가 60회를 넘어서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약간의 의무감이라도 없다면 없는 시간 쪼개서 이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현재 내 글이 김기자님 블로그 그리고 페북에 전달될때 대중의 반응은 내 글의 침로를 그때 그때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 실린 글은 재차 정리하여 "한국의 고고학"이라는 고고학 대중 잡지에 싣고 있어 블로그에서 한번 대중에게 전달된 정보를 대중잡지에 재차 싣는 셈인데 이는 고고학자들에게도 우리 작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게 전달하고자 함이다. 이렇게 하면 공적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리 연구실의 성과를 이 분야 전공자 이외에도 전달하여 돌려주는 내 작업은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부분 완수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이 블로그에 연재했던 내용은 정리하여 "한국의 고고학"이라는 대중지에 싣고 있다. 


각설하고, 

다시 인더스 문명의 이야기를 할 때이다. 

앞에서 인더스 문명의 "평화로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다. 

인더스 문명의 "유니크함"을 이야기 할 때 항상 나오는 이야기의 하나로 "평화로움"과 함께 하나 더 있다. 

"평등한 사회"의 신화 이다. 

인더스 문명은 인류 문명-사회가 발전하면 잉여가 발생하고, 그 남는 산물을 둘러싼 싸움이 발생하며 이 과정에서 계급이 발생하고 구조화된 폭력이 성립하며 최종적으로는 국가가 발생한다는 평범한 (?) 상식에서 매우 이탈해 있는 사회이다. 정말 그렇게 이탈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구글에도 "Indus valley civilization"과 "egalitarian"을 함께 검색하면 꽤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많은 부분이 이를 찬성하는 시각에서 쓴 것이겠지만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서술한 이야기도 꽤 많다. 

앞에도 간단히 썼지만 인더스 문명 유적을 보면 묘한 "평등함에 대한 집착"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인더스 문명 유적 중 대도시 유적에 가면 몇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인더스 문명 대도시 유적에는 공공적 성격이 뚜렷해 보이는 건물이 밀집한 지역이 있다. 공공 목욕탕, 신전으로 추정되는 지역 등 오늘날로 치자면 관공서와 공공기관으로 밀집해 있다고 보이는 지역이다. 위 사진에서 보면 citadel로 표시된 곳이 바로 그것이다. Citadel이라는 이름 그대로 인더스 문명 대도시 유적에서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고 건물들도 크다. 

이 citadel 외에 또 한군데 확연히 구분되는 지역이 인더스 문명 대도시유적에서는 확인되는데 이 구역의 이름이 "lower town"이다. Lower town은 사람들이 살던 지역으로 넓은 지역에 펼쳐져 있지만 건물의 크기는 citadel보다 작다. 하지만 건물은 구역안에 매우 정연하게 배치되고 정밀하게 도시 시설이 설계되어 배치되어 있다. 상하수도가 확연히 정비되어 있고 건물의 크기가 매우 일정하여 지금으로 치면 "구청"이나 "시청"에 해당하는 도시 권력이 이 구역을 행정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수 있다. 

이전에 소개했던 볼리우드 영화 "모헨조다로"를 보면 이런 배치를 잘 볼 수있다 (이 영화를 구해 볼수 있는 분은 한번 보시길)

영화 "모헨조다로"의 한 장면. 여주인공인 모헨조다로 제사장이 살던 이 그림에 보이는 구역이 바로 "citadel"이다. 

같은 영화에서 보이는 "lower town"구역. 여 제사장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주인공 (리틱 로샨 분)

위에 예를 든 장면은 모헨조다로의 발굴 결과로 구성한 그 당시 도시의 구조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인더스 문명의 대도시는 모두 이와 비슷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citadel과 lower town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방문했던 Dolavira역시 인더스 문명의 5대 대도시의 하나로 추정되는 지역인데 여기도 발굴해 놓은 모습을 보면 citadel과 lower town의 모습이 확연하다. 

돌라비라 유적에 조성된 4500년 전의 거대 저수지. 이런 거대 저수지가 도시주변에 여러개 만들어져 있다. 이 저수지는 암반이 있어 이렇게 고르게 벽을 다듬기 어려운 구간인데 암반을 모두 떼내어 벽을 고르게 정비했다. 기술적으로 매우 치밀한 전문가 집단이 4,500년전 이 사회에 존해했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돌라비라 유적 citadel 구역에서. 사진 중앙은 김용준 박사.

돌라비라 유적 "lower town" 지역의 배수관. 도시의 정비 수준이 뛰어나 매우 효율적 행정이 펼쳐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일정한 크기로 나뉘어진 lower town 구역의 집. 골목의 모습과 집의 형태를 보면 이 구역은 "동일한 크기의" 아파트 같은 것이 주민에게 배분되었는지도 모른다.

(계속)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