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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학술전문출판의 위기, 민속원 빈 방에서 홍기원 회장을 추모하며

by taeshik.kim 201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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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춘동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兪春東 鮮文大學 歷史文化Contents學科 敎授



민속원은 우리나라 민속학(民俗學) 분야에서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는 학술전문 출판사다.  



마포 대흥동 민속원



나는 2010년 학회 일로 이곳을 처음 갔다. 학술지 출판 문제로 홍종화 사장과 한참 이야기하던 중에, 노장(老壯) 한 분께서 나를 쓱 쳐다보며 전공을 묻고 나갔다. 그리고 곧 책 선물을 주셨는데, 《혜경궁의 읍혈록》이었다. 책을 받고나서야 그 분이 그 유명한 민속원 설립자 홍기원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때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그런 고마운 기억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2019년 1월에 사부(師傅)이시며, 근대서지학회장으로 책 수집가인 오영식 선생님과 민속원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홍기원 회장님이 최근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민속원 설립자 홍기원 회장(오른쪽)과 그 아드님인 홍종하 사장(왼쪽)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홍기원 회장이 쓰시던 방을 구경했다. 홍종화 사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방을 치우지 못하고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방은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홍 회장이 들어올 것 같은 그런 생전의 상태 그대로였다. 



민속원 홍기원 회장 사무실



책장에 꽂힌 책 하나하나를 보면서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해 상당히 많은 책을 수집했고 공부한 흔적이 역력한 까닭이었다. 새삼스레 민속원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저력과 밑천에서, 중요한 책들을 간행할 수 있었음을 알고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홍기원 회장이 민속원을 통해 간행한 세책 중 숙종대왕 민중전덕행록.



홍기원 회장은 마지막으로 "절대 출판사를 문 닫게 해서는 안 된다. 천 벌을 받는다"는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걱정이 들었다. 그나마 전문 전공서적 독자였던 대학의 관련 전공 학생들도 이제 더는 책을 안 사는 시대에 그런 책을 내는 전문 출판사가 어떻게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우려였다. 


현재 국문학 관련 학술 출판사는 대략 10곳가량 남았을 뿐이다. 이제 이런 학술 전문 출판사마저 없어지면 한국 인문학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최근 성균관대 앞에서 영업하던 사회과학 서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것도 큰 문제지만 이제 우리가 고민할 것은 공부하는 사람 모두 학술 전문 출판사들의 생존과 존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 하는 대책 세우는 일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절대로 출판사를 관두지 말라. 천 벌을 받는다”고 유언한 홍기원 회장, 그의 이런 유언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하는 출판사 직원들, 이런 고귀한 정신과 생각을 민속원의 빈 방, 고 홍기원 회장 방에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홍기원 회장의 명복을 빌며, 저 세상에서도 원하는 좋은 책을 만드시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본다. 


덧붙여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한 연합뉴스 기사를 첨부한다. 


국학전문출판사 민속원 홍기원 회장 별세

송고시간 | 2018-10-10 20:46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민속학 분야에서 독보적 성과를 낸 국학전문출판사 민속원 창립자 홍기원 회장이 10일 오후 2시 27분에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경희대 한의대로 재편된 동양의약대학을 졸업하고 동화통신 편집기자로 근무했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지키고 역사적 사실을 연구·발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1977년 민속원을 설립한 뒤 민속학, 인류학, 한국음악학, 복식사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의 학술 이론서와 원전 자료를 발간하는 데 집중해 책 3천500여 종을 출간했다.

 

그중 159종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92종이 세종도서 학술 부문(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


특히 2012년 선보인 아르케북스는 민속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소개해 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홍기원 회장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비교민속학회,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국립국악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문화대상과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성균관 서울시운영위원회 운영위원, 풍산홍씨 대종회 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저서는 '숙종대왕 민중전 덕행록', '인목대비의 서궁일기', '혜경궁의 읍혈록', '단종대왕의 육신록', '유성기음반가사집'(공편), '숨은 소리도 세월 따라 흐르네'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아들 종화(민속원 대표) 씨, 딸 종혜(중앙대 박사과정) 씨가 있다.


빈소는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8시. ☎ 02-2002-8444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10/10 20:4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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