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란 단어는 섬뜩하고 흉폭하지만 이상하게도 ‘책 도둑’은 지적이며,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고,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책 도둑’도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옛날 신문을 보며 자료를 찾다가 뜻밖에도 ‘책 도둑’, ‘서적절도범’에 대한 기사가 많아 이를 소개한다.
기사는 많지만 내용을 보면 사전 절도범 검거, 조직적으로 움직인 책 도둑 검거, 책을 훔쳐 유흥비로 탕진한 책 도둑 검거로 요약된다.
위 내용은 1925년 9월 21일 《매일신보(每日申報)》 기사이다. 제목은 ‘서적절도체포’, 내용은 서울 원동(苑洞)에 거주하는 안기설(安基卨, 당시 나이 26세)이란 자가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가나자와 쇼사부로(金澤庄三郞)가 지은 《사림(辭林)》을 훔쳐 달아나다 잡혔다는 것이다.
안기설이 훔친 가나자와 쇼사부로의 《사림(辭林)》은 당시 유통되던 사전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책이다. 가나자와 쇼사부로는 ‘일한양언어동계론(日韓兩言語同系論)’, 즉 일본어와 한국어는 같다는 학설을 주장한 일본학자로, 해방 직전까지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학설을 설파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인들에게 인지도가 높았고 그의 저술서 또한 인기가 있었다.
《사림(辭林)》은 바로 그가 펴낸 사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공구서는 인기가 있어 헌책방에서 거래가 활발했다. 안기설은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사전을 훔쳐 달아나다가 검거된 것이다. 안기설처럼 쉽게 거래될 수 있는 사전을 훔쳐 달아난 책 도둑은 참으로 많았다.
한편 대규모 서적절도단도 있었다. 1930년 12월 27일 《매일신보(每日申報)》에 크게 보도된 것은 “현 중등학생(現中等校生)으로 조직(組織)된 서적절도단(書籍窃盜團) 검거(檢擧)”이다.
글은 “요즘 시내 각 처에 지능범이 날로 발생하는데, 상상치 못하게 중등학생 신분으로 교복을 입고 시내에 있는 주요 서점에 들어가 수백여 원을 절취했다”는 내용이다.
김상헌(金尙憲)을 비롯한 7명으로 구성된 학생 전문 서적 절도범은 서울 곳곳을 다니며 책을 훔쳤는데, 이들을 뒤져보니 모 처에 산처럼 《자본론(資本論)》 같은 책들을 훔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을 지능범으로, 이들을 중등학생 절도단으로 명명한 것이 우습다.
이처럼 책을 절도한 책 도둑들을 책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1928년 10월 1일 《중외일보(中外日報)》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다수의 책 도둑은 책을 훔쳐다 유흥비로 탕진했다.
이렇게 잡힌 도둑들의 결말은 너무도 허무하다. 이들은 체포되었으나 즉시 훈방 조치되거나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책 도둑이 활개를 치고 책을 훔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즉 도둑이지만 책을 훔친 것은 다른 죄와 다르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책 도둑들이 당시에는 양산되었다.
책을 훔쳐 유흥비로 탕진했다는 옛날 신문의 책 도둑 기사를 보면서, 옛날은 참으로 낭만적인 시대였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이젠 책이 많아도 훔치는 이들도, 돈이 없어 책을 보고 싶어 훔치는 사람도 보기 드문 세상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책을 훔친 도적들이 잡히고, 책을 탐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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