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전차(電車)의 진상손님
유춘동(兪春東) 선문대 역사문화컨텐츠학과 교수
전차 개통식
현재 대중교통 총아라 일컫는 지하철. 현재에서 가까운 근대기 이 지하철에 필적할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전차(電車)다. 전차는 지하철과 달리 거리 위로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차를 ‘노면전차(路面電車)’라고도 했다.
조선(朝鮮)에 전차가 처음 개설되기는 1899년이었다. 전차가 처음으로 운행하던 날, 동대문 주변에 이를 보고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고 당시 신문은 전한다.
한성전기시대의 전차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던 전차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대한제국 시대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에서 들여온 전차. 이 전차는 전차 가운데 태극마크가 붙은 점이 특징이다. 바로 앞 사진을 보면 태극마크가 있다.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는 전차 승객들
두 번째는 국권을 빼앗긴 뒤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 이하 경전으로 약칭)에서 들여온 전차. 이 전차는 모두 일본에서 제작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전차가 바로 이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전차 381호
전차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서울의 주요 대중교통이 되었다. 이러한 대중시설에 예나 지금이나 빼놓을 수 없는 풍광이 승객들 추태다.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이 당시에도 있었다.
당시 전차 운영권자였던 경전(京電)에서는 간행한 《경전휘보(京電彙報)》를 보면 이러한 진상손님에 대한 글을 만난다.
앞 그림을 그린 이는 岸謙이라는 사람이다. 현재로서는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전에서 일한 직원으로, 「京城の交通問題と其の對策」(『朝鮮』 295, 1939)처럼 조선의 대중교통에 관한 글도 기고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중교통 전문가로 보인다.
그가 그린 그림은 일제강점기 유명한 삽화가 석영(夕影) 안석주(安碩柱, 1901~1950)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그가 스케치로 다룬 진상 손님은 모두 10가지 유형. 하나씩 본다.
첫 번째 진상 손님은 두 칸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 빼째 정신의 표상이다.
두 번째는 여성을 괴롭히는 남성. 치한이다. 요즘 같으면 철창행이다. 겉으로는 멀쩡한 놈인데 변태다.
세 번째는 손잡이 잡고 통로 막는 진상. 이런 놈은 죽이고 싶다.
네 번째 남들 시선을 무시하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꼴불견 부부. 하긴 요샌 주둥이를 쪽쪽 빨고 아무데나 문질러대더만.
다섯 번째는 우산을 거꾸로 들어 남을 위협하는 진상. 이건 요새도 우산 들고 다니는 사람 중에 남 눈깔 찌를 듯한 일이 제법 있다.
여섯 번째는 첫 번째 진상처럼 물건을 놓고 두 자리 차지하는 사람. 요샌 다른 형태의 잡상이 정적을 깨우곤 하더만.
일곱 번째, 손잡이 두 개를 점령한 사람. 이건 나도 가끔은 한다만, 진상인가? 난 결린 어깨 푼다고 가끔 이런다.
여덟 번째, 창밖 구경하느라 두 자리를 차지한 진상. 궁댕이 내민 모습 선하다.
아홉 번째는 좌석 앞에서 손잡이를 잡은 채 서서 남도 못 앉게 만드는 진상.
열 번째는 출입구 앞뒤에만 몰린 채 가운데를 텅빈 채로 남겨둔 손님들. 고스톱 한판 댕기는 모양이다.
1936년에서 80여 년이 지난 2019년 현재. 대중교통에서 만나는 진상손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백팩으로 남을 위협하고 통로를 막는자, 쩍벌남, 추행자, 남 아랑곳 하지 않고 진한 애정 행각 벌이는 젊은 남녀....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술 먹고 난동 부리는 취객(醉客)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역사는 그래서 반복한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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