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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춘대성4

사적 목록에 오른 탕춘대성, 방어력은 제로인 담장! 탕춘대성蕩春臺城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하거니와, 그 기초조사에 지금은 거의 행불 상태인 행주기씨 호철 선생이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 탕춘대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구기동․부암동), 서대문구(홍은동․홍제동․홍지동), 은평구(불광동) 일원을 걸치는 조선후기 산성이라 성벽길이 5천51m라, 개중 석성이 3천549m, 토성이 758m, 자연암반 744m로 각각 구성된다. 이번 지정면적은 문화재구역이 36필지 1만1천55㎡요, 그 문화재보호구역이 70필지 19만5천453㎡다. 이를 사적으로 지정하면서 이르기를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도성방어체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방어성으로 1715년(숙종 41년)축조를 시작하여 1754년(영조 30년) 완성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기존 도성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 2024. 4. 9.
한양을 지켜낸 연융대성(탕춘대성) 감사원 《감사》 2022년 9, 10월호 .vol164에 실린 〈한양을 지켜낸 연융대성(탕춘대성)〉입니다. 전체는 아래 링크에서 pdf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ai.go.kr/proa.../ebook/ttsbook/vol164/book.html 2022. 12. 11.
[조선시대 품셈단가] 영조시대 연융대성의 경우 영조 때 연융대성[탕춘대성]을 쌓을 때 이를 석축으로 할 것인지 토축으로 할것인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때 품셈 단가가 나오네요. 영조 24년 10월 11일에 환경전(歡慶殿)에서 대신과 비국 당상인 인견하는 자리에서, 강화 유수 권혁(權爀)이 "돌로 쌓을 때 1步[약 1.2m]에 들어가는 물력은 돈으로 5냥 남짓이 되고 쌀로는 2섬 남짓이 되는데 지금 쌓지 못한 곳이 4천 여 보가 넘습니다. 만약 돌로 쌓는다면 이 물력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수 있습니까?[石築時一步所入物力, 錢爲五兩餘, 米爲二石餘, 卽今未築處, 至過四千餘步。若欲以石築之, 此物力從何辦出乎?]" 라고 한 기록이 보이네요. 나머지 축성 기록 들을 검토하여 축성 비용을 계산한다면 조선시대 축성의 품셈단가를 계산할 수 있을 듯. 2020. 10. 22.
탕춘대성 홍지문弘智門 유래는? 홍지문에 대해서는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홍지문)'이라 편액을 써서 문루에 달았는데,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한북문漢北門이고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홍지문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영조 24년 3월에는 한북문 어제현판을 잘못 걸었다고 고쳐 걸라는 지시를 내리기 까지 합니다. 홍지문이라는 근거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래도 박정희시절 창작한 이름인 듯합니다. *** 홍지문은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한 탕춘대성에 난 성문이다.(김태식 補) 201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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