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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목록에 오른 탕춘대성, 방어력은 제로인 담장!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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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해여지左海輿誌라 해서 조선 순조~철종 연간에 발행된 채색도彩色圖에 드러난 한양도성과 탕춘대성, 그리고 북한산성이다. 이들이 세트가 되어서 방어벽을 구축했다 하지만 방어력의 실상 북한산성을 제외하고서는 없었다.

 
탕춘대성蕩春臺城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하거니와, 그 기초조사에 지금은 거의 행불 상태인 행주기씨 호철 선생이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 탕춘대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구기동․부암동), 서대문구(홍은동․홍제동․홍지동), 은평구(불광동) 일원을 걸치는 조선후기 산성이라 성벽길이 5천51m라, 개중 석성이 3천549m, 토성이 758m, 자연암반 744m로 각각 구성된다. 

이번 지정면적은 문화재구역이 36필지 1만1천55㎡요, 그 문화재보호구역이 70필지 19만5천453㎡다. 
 

홍지동 방면 탕춘대성

 
이를 사적으로 지정하면서 이르기를

탕춘대성은 조선 후기 도성방어체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방어성으로 1715년(숙종 41년)축조를 시작하여 1754년(영조 30년) 완성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기존 도성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수도 성곽인 한양도성을 수축하고 방어 산성인 북한산성을 신축한 후 이를 연결하는 탕춘대성을 축조함으로써 3개의 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방식의 독창적인 도성방어체계가 구축되었으며 

전시에 한양도성 서북쪽 방어 기능뿐만 아니라 성안에 설치된 평창平倉 등에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군량을 보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였으며,

한양도성을 지키기 어려워지면 조정과 도성민이 북한산성으로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등 탕춘대성이 축조되면서 도성을 굳게 지키는 조선 후기 방어체계가 완성된 것으로 
 

구기동 방면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는데,

인왕산 지역의 토성, 북한산과 일부 지역에 남아있는 북한산성의 축성방식과 같은 형태의 석성, 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자연암반을 이용한 자연지세 활용 구간으로 구분되며

주변 유적으로 탕춘대성의 역할을 알 수 있는 총융청 터, 평창 터 등 조선 후기 국방 관련 유적이 성안에 있으며, 성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접한 성을 연결하면서 군량 보급과 지휘를 하는 배후 성으로 한양도성,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방어체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자연 암반 위에다가 돌로 쌓은 구간

 
이런 점들을 들었다. 

 

*** 

이 탕춘대성 蕩春臺城은 한양도성과 그 배후성으로 여차하면 왕이 튀어 들어가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꿰하고자 한 북한산성 사이에 건설한 성곽이다. 

이 탕춘대성이 들어섬으로써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은 접점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떤 기능을 지녔는가?

놀랍게도 세 성곽 모두 단 한 번도 전쟁다운 전쟁 한번 치러보지 못했으니 방어력은 실제 제로인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피아를 구분하는 경계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실제 그 건설은 뻘짓이었고 국고만 탕진했다. 


 
한양도성∼북한산성 잇는 성곽 '탕춘대성' 국가 사적 지정
송고시간 2024-04-09 09:00
예비문화재 선정 후 2년만에 승격 최초 사례…"도성방어체계 개선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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