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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과 함께하는 paleopathology

스핀오프: 미라의 저주는 있는가

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외치와 관련하여 잊지 못할 일은 이른바 “가짜 미라” 소동이었다. 

외치의 발견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어느 언론사 모 기자는 느닷없이 외치는 사실은 이집트 미라인데 명예와 부를 탐한 사람들이 알프스 산 꼭대기에 이를 옮겨 놓았다고 주장하기 시작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의 하나로 “왜 하필 저 유명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 부근을 그날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가. 메스너가 다른 사람들과 짜고 이집트 미라 하나 산꼭대기로 옮겨 놓은거 아닌가”라는 주장을 했다.  

메스너야 말로 외치 발견사에서 가장 초연한 입장에 있었던 사람의 하나인데 느닷없이 유탄을 맞은 것이다. 

메스너의 입장에서는 황당 무계하고 억울한 사건이겠지만 어쩌면 이 사건으로 그는 외치의 저주를 액땜하게 된것인지도 모른다. 

메스너와 함께 이 주장으로 맘 고생을 무지하게 한 사람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는 인스부르크대 고고학자인 콘라드 스핀들러. 

그는 메스너와 함께 짜고 이집트 미라를 가지고 사기를 친 사람으로 기자에 의해 지목되었는데  이 때 고생이 얼마나 지긋지긋했던지 그의 자서전에도 이 부분을 길게 설명하며 해당 기자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무책임한 한 기자의 황당무계한 주장이 빚어낸 이 소동은 그후에도 몇년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흐지부지 되었지만 이 맘 고생 때문인지 뭔지 그는 오래살지 못하고 곧 세상을 떴다. 

외치 발견 전말이 잘 기록된 책. "외치 사기설"도 이 책에 자세하다. 일독을 권한다. 

재미있는 것은 콘라드 스핀들러의 죽음을 미라의 저주와 연관시켜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사실 이 일을 하다 보면 꼭 미라의 저주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글쎄.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금까지는 미라의 저주라고 부를 만한 일이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라 보고가 워낙 센세이셔널 한 뉴스이다 보니 미라와 관련된 보도가 나가는 날은 하루종일 뭔가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

미라의 저주는 서구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거리이다. 

아마도 미라의 저주에 관련하여 가장 처음 나온 이야기는 투탄카문 왕릉을 발굴한 카터 발굴대에 대한 이야기 일것이다. 

하워드 카터. 투탄카문 왕릉의 발견자.

이 발굴단 사람들은 발굴 직후 비명에 간 사람들이 꽤 있다. 이를 호사가들은 투탄카문 왕릉에 써있었다는 저주의 문구와 관련하여 엮어 보기도 한다. 여기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한번 보자. 

George Herbert, 투탄카문 발굴의 스폰서. 무덤문이 열린지 7일만에 모기에 물려 사망. 

George Jay Gould I, 투탄카문 왕릉 방문객. 방문후 열병으로 1923년 5월 사망. 

Prince Ali Kamel Fahmy Bey of Egypt 1923년 7월 아내가 쏜 총에 맞아 사망. 

Sir Archibald Douglas-Reid, 방사선의학자로 투탄카문 미라를 방사선 촬영. 1924년 1월에 불명의 질환으로 사망. 

Sir Lee Stack, 수단 총독. 1924년 11월 카이로에서 암살 됨. 

A. C. Mace, 발굴대원. 1928년 비소중독으로 사망. 

Captain The Hon. Richard Bethell, 카터의 개인 비서. 1929년 사망. 

사망자 리스트를 보면 아주 짧은 기간에 이 발굴과 관련된 사람들이 연달아 쓰러진것을 볼수 있다. 이 리스트에는 없지만 앞에 언급한 George Herbert (투탄카문 발굴의 스폰서)는 함께 발굴에 참여했던 다른 형제들도 비슷한 시기에 죽어 투탄카문 왕의 저주설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사건들이 얼마나 저주라고 부르기에 그럴듯 했던지 최근에는 "이것은 저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저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술논문까지 나왔다. 

미라저주라는게 있긴한건가 하는데 관련된 논문. 결론은 없다인데 정말 그럴까? 싶음. BMJ (British Medical Journal)라는 꽤 좋은 저널에 실렸다. 

미라의 저주는 외치의 경우에도 유명하다 (외치의 저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외치의 발견 및 조사와 관련된 7명이 짧은 기간 동안 모두 비명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살펴보면, 

•Rainer Henn. 64세에 사망. 인스부르크대 법의병리학자. 외치를 조사. 학회 참석차 이동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 

•Kurt Fritz, 52세에 사망. 산악가이드. 외치가 발견되었을때 얼굴을 처음 확인한 사람이라고 한다. 외치를 알프스 산에서 헬리콥터로 들어 내린 사람이기도 하다. 눈사태로 사망. 

•Rainer Hölz, 47세에 사망. 외치가 발견 당시 상황을 촬영하여 다큐멘터리 제작. 뇌종양으로 사망. 

•Helmut Simon, 69세에 사망. 외치의 최초 발견자. 산에 갔다가 추락사.  

•Dieter Warnecke, 45세에 사망. Helmut Simon 사고사때 구조대장. Simon 장례식때 심장마비로 사망. 

•Konrad Spindler, 66세에 사망. 인스부르크대 고고학 교수. 외치를 조사. 지병으로 사망. 스핀들러는 생전에 이미 "외치의 저주" 이야기를 듣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되겠구만"하고 농담삼아 이야기 했다는데 정말 사망. 

•Tom Loy, 63세에 사망. 분자고고학자. 외치의 옷과 무기를 발견. 유전성 혈액질환으로 사망. 

신기하게도 처음 외치 발견과 조사에 관련된 사람들은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이 죽었다. 

외치가 죽은 지역 아주 가까이에 지어 놓은 Archeoparc. 외치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해 놓았고 외치가 사망한 지역을 아래에서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처음 외치 발견에 깊이 관여 하고도 지금까지 죽지 않은 사람은 라인홀트 메스너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도 앞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가짜 외치소동으로 곤혹을 치르긴 했지만 히말라야를 넘나드는 사람으로서도 죽지는 않은것을 보면 그의 포스는 외치의 저주로 뚫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어쩌면 그야 말로 아무 사심없이 외치를 수천년 시간을 넘어 대면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고.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외치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제 외치의 저주도 약발이 다 했는지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게 빨리 죽는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여러가지 구설수에 휘말리는 경우는 아무래도 많은 것 같지만. 

미라의 저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그리 이야기 하곤 한다. 이 일을 할때는 마음을 비우라고. 유명해 지겠다는 생각도 말고, 뭐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도 말고 우리 할일만 하고 돌아가신 분을 다시 보내드려야지 사심이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바로 이 점을 미라에 대한 작업을 하는 연구자, 언론인, 행정가 등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생각해 볼만한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