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얼마나 아는가?
2004. 08. 27-081-0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글은 철종이 발명했다"
가장 최근에 우리에게 소개된 외국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사례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이런 왜곡된 한국사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필리핀 역사교과서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다.
일본역사교과서 사태니, 고구려사 사태니 하는 이른바 '한국사 왜곡사태'가 터질 때마다, 철종의 한글 발명 운운하는 등의 외국교과서에 실린 한국사 왜곡 실태 조사 보고는 단골처럼 등장한다.
이런 활동에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앞장 서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같은 국책연구기관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 결과는 거의 반드시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다 좋은 일이다. 한글의 철종 발명 운운하는 것과 같은 '명백한 한국사 왜곡' 사례를 적발해 내고,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야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
하지만 그에 앞서, 혹은 그와 병행해 우리 자신을 반성하자.
기자는 이런 유의 조사보고가 발표될 때마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니, 우리가 그들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필리핀 역사교과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가 아는 필리핀은 무엇인가? 다른 것은 다 놓아두고 그 역사만을 예로 들어본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아는 필리핀의 역사라곤 혹시 맥아더가 전부가 아닌가? 맥아더 사령부가 있던 곳이 필리핀이라는 정도가 우리에게 각인된 필리핀의 전부가 아닌가?
다른 동남아시아 역사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외국의 한국사 왜곡 실태 조사보고서에 단골처럼 빠지지 않는 곳이 이 지역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동남아시아는 고작 앙코르와트나 호치민, 혹은 베트콩 정도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남미 각국 역사교과서도 한국사 왜곡 실태 조사보고서에서 곧잘 인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남미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프리카는 어떤가? 세계사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첫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이집트 고대 문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사 전부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 한국인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세계 어떤 나라 어떤 역사교과서가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만큼이나, 우리도 그들의 역사를 알고자 해야 한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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