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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국적 이탈의 자유를 달라

by taeshik.kim 2018.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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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8 19:08:07

註 : 과거에 내가 쓴 기사를 어떻게 하다가 네이버에서 만났다. 작성시점은 2년 전. 읽어보니 비교적 잘 쓴 글이라 자찬하여 재방송한다. 

 

<국적, 그 선택의 자유와 이탈의 자유>

2005-06-07 11:4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국민은 매일매일의 국민투표다."


19세기 프랑스 국민국가 이데올로그인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은 보불전쟁(1871~72)의 패배로 프랑스 전체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던 1882년 소르본대학에서 한 연설 '국민이란 무엇인가'에서 이 말을 들고 나왔다. 


이에 의하면, 프랑스라는 국민국가의 절대 기반인 '프랑스 국민'은 종족과 언어와 종교와 이익공동체와 지리조차 초월한다. 그가 어디에 살며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황인종이건, 프랑스 국민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다고 르낭은 설파한다.


그래서 '프랑스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절대 불변으로 고정된 게 아니라, 매일 국민투표로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르낭은 프랑스 국민이 되는 조건을 이야기했으나, 그 반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즉, 자유 의지로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다면, 프랑스 국민이 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 그 국적을 버릴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프랑스 국민이고 싶은 선택의 폭은 얼마든지 개방했음에도, 그것에서 벗어날 출구를 완전히 봉쇄해 버린 르낭의 민족주의가 곧 프랑스 제국주의의 또 다른 버전임이 여기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대한민국 법 체계, 특히 헌법이 일본의 그것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두 나라 헌법에는 무시 못할 차이가 곳곳에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국적 관련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이와 관련된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그 하위인 국적법이란 법률로 밀어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적 취득자인 '국민'의 권리와 의무만 나열해 본말이 뒤바뀐 느낌을 준다. 


더 큰 문제는 하위 법률인 국적법(일부개정 2004.1.20 법률 제07075호) 어디에도 국적 이탈의 자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반대로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국적법 어디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대한민국 국민이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자유를 규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적 이탈의 자유를 헌법이나 법률로 명쾌하게 보장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반면 일본의 경우, 1945년 11월 3일에 공포되고, 이듬해 5월 3일에 시행된 '일본국헌법'에 국적 이탈의 자유를 명시했다. 이 헌법 제22조 '거주ㆍ이전 및 직업선택의 자유, 외국 이주 및 국적 이탈의 자유' 중 제2항은 "누구도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국적을 이탈할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何人も, 外國に移住し, 又は國籍を離脫する自由を侵されない)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은 대체로 국적 이탈의 자유를 보장한다. 쉽게 말해, 국가를 버릴 수 있는 자유도 헌법으로 보장한다. 그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권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역사적 조건이나 경험에서 한국은 독특한 면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이나 국적에 대한 조항에서 대한민국은 여타 OECD 회원국에 비해 '억압적'인 측면이 강한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적법은 혈통주의,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속인주의'를 고수한다. 다시 말해 그가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곳에서 어떠한 종교적 신념을 지닌 채 살고 있건, 대한민국 피가 섞여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강제 편입하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국적법에서 출생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예외 조항은 "부모가 모두 분명하지 아니한 때 또는 국적이 없는 때에는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이거나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기아는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가 된다.


이에 의하면 고아로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버려진 아이만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자격인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현행 국적 조항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은 외국인에 대해서는 "품행이 방정한 자"라는 등의 모호한 기준이 적용돼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하는 한편, 반대로 '병역기피' 등의 이유로 대한민국 국적으로 포기하고자 하는 자에 대해서는 갖은 사회적 지탄을 가하게 하고 있다.


새 국적법 발효에 따라 종래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옛 대한민국 국민'들의 명단을 대한민국 정부가 7일 관보에 실명 공개한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국적 이탈의 자유'가 법률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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