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유목3 부여 고구려는 유목민이 아니다 그리고 원래 유목민이었다가 어영부영 농경문화에 들어온 그런 사람들도 아니다. 부여 고구려는 농경민, 그 중에서도 잡곡을 바탕한 잡곡농경민이다.원래 잡곡농경민이 각종 가축사육이 많다. 황하유역도 용산문화 시기에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농경사회에서 사육하는 거의 대부분의 가축 사육이 완성되었다. 부여 고구려는 삼국지 동이전 보면 없는 가축이 없다. 이 사람들이 유목민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잡곡농경민이기 때문이다. 잡곡농경민은 원래 가축 사육을 끼고 살았다. 이 부여 고구려 유목민설에 기마민족론을 희안하게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한국인의 조상이 원래 말타면서 유목했을거라는 건데한국문화는 유목문화에 기원한 적도 없고 유목민이 주류였던 적도 없다. 잡곡농경이냐 도작농경이냐그 차이만 있을 뿐. 중국에서 황하문명이냐 .. 2024. 10. 1. 노마드 Nomad,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 전략 2005.11.22 13:50:2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만리장성 너머 광활한 땅을 무대로 화려한 제국을 이룩했다가 등장 만큼이나 극적으로 와해되어 버린 위구르 제국. 서기 744년 이후 840년까지 약 100년의 성화를 누린 그들은 비록 사라졌으나 각종 비문을 남겼다. 이 중 한 군데서 '뵈클리' 혹은 '매클리' 비슷한 말이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국내 역사학계 일각에서 '고구려'로 모습을 바꿔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비문에 보이는 '뵈클리'(매클리)가 고구려임을 확정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그것은 고구려가 예맥족으로 구성됐다는 욕망이 빚어낸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예맥의 '맥'이 매클리, 뵈클리라는 것이다. 중국을 기준으로 만리장성 너머 북방 유목민족이라 하면 흉노가.. 2022. 11. 18. 피안彼岸으로서의 사막과 초원, 그리고 실크로드 나는 북방과 시베리아에 대한 관심을 초원에 대한 열망이라고 본다. 그래서 걸핏하면 우리는 알타이 민족의 시원을 찾는답시며 바이칼 호수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서역 혹은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사막과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의 표출이라고 본다. 초원과 사막은 한국 문화권에는 없다. 그래서일까? 그런 우리에게 각인한 유목과 사막은 진취와 광활, 야성, 그리고 원시의 표상이다. 사막과 초원을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강인하다는 이미지로 우리는 각인했다. 그들이 실제로 그러한지 아닌지는 관심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늘 그러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표상들로써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사막과 초원에서 우리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려 했는지도, 혹 하려는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늘 사대.. 2019. 4. 2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