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2 13:50:23
<장성 너머에서 본 '위구르 제국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만리장성 너머 광활한 땅을 무대로 화려한 제국을 이룩했다가 등장 만큼이나 극적으로 와해되어 버린 위구르 제국.
서기 744년 이후 840년까지 약 100년의 성화를 누린 그들은 비록 사라졌으나 각종 비문을 남겼다. 이 중 한 군데서 '뵈클리' 혹은 '매클리' 비슷한 말이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국내 역사학계 일각에서 '고구려'로 모습을 바꿔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비문에 보이는 '뵈클리'(매클리)가 고구려임을 확정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그것은 고구려가 예맥족으로 구성됐다는 욕망이 빚어낸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예맥의 '맥'이 매클리, 뵈클리라는 것이다.
중국을 기준으로 만리장성 너머 북방 유목민족이라 하면 흉노가 대명사처럼 거론된다. 하지만 한국학계에서 흉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로선 다른 역사분야를 연구하면서 곁다리로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다.
흉노가 이럴진대 그 역사도 훨씬 짧고, 그것이 세계사(동아시아사)에 미친 영향력 또한 적을 수밖에 없는 위구르 제국사야 말해서 무엇하랴?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인 정재훈(40) 경상대 인문학부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거의 외면해온 위구르 제국사 연구에 매달렸다. 1998년 서울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심사 통과논문을 토대로 최근 완간한 단행본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문학과지성사)은 이 분야 연구성과에 대한 그의 1차 중간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유목(遊牧)은 낭만이 아니다. 이동성을 강조하는 노마디즘(유목정신)이 각광받고 있으나, 실상 노마드(유목민)의 생활은 고통 그 자체라는 것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과학적 생존 전략, 그 이상도 이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목민족 위구르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머무름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들 노마드를 영웅시하거나, 그와 정반대로 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본 사람들은 형편없이 깎아내린 기록을 남겼다.
위구르 제국사를 연구하는 정 교수에게도 이런 극단적인 모습은 당면 과제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위구르에 대해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는 중국 기록은 믿을 만한 구석이 그다지 없다. 반대로 위구르인 자신들이 남긴 각종 기념비는 그들의 역사를 영광으로 점철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런 두 개의 극단적인 상(像)이 충돌하는 위구르 역사를 보는 자세를 '(만리)장성 너머에서 중국사 보기'로 비유했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자칫 위구르 역사를 중국사의 부속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만리장성에서 인공위성을 띄워 거기에 몸을 싣고 그 남(중국)과 북(위구르)을 동시에 아우르는 자세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저자 자신은 이번 책이 "위그르 유목제국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세계 최초의 연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당돌한' 선언을 하고 있다. 흉노 역사의 개설서 하나 없는 국내 학계의 척박한 풍토로 볼 때 이번 책이 정말로 세계 최초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이를 위해 이번 책은 초기(744-755) 위구르가 유목국가를 건설해 가는 과정을 시발로 삼아 중기(755-787)를 지나면서 몸집을 키워간 과정을 거쳐 후기에 접어들어 그것이 붕괴되고 와해된 시말을 통사적으로 살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작 주시해야 할 대목은 부록에 수록된 '자료' 편이다. 여기에는 고대 투르크 비문 전문을 전사하는가 하면 그에 대한 번역을 시도했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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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내 기사를 17년 만에 소환한다. 다음달 개강하는 총 12주 일정 연합뉴스 K컬처아카데미 여행자학교 2기에 정재훈 선생이 저 위구르를 필두로 돌궐, 그리고 흉노를 고리로 노마드 삶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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