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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12

소쇄원 죽림엔 모기만 남도땅 어디메 담양이란 데가 있고 그 담양땅에 이름 높은 정자가 있어이름을 소쇄원이라 하는데 그 한켠에 죽죽 뻗은 대나무 밀림 이루니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옘뱅..유유자적 희희낙락 온데간데 없고 모기만 물어 뜯더라. 아서라. 그 옛날 선우용녀라는 여배우 있어 지금도 왕성 현역활동 중인 이 할매 이르대 내 젊은시절 대밭에서 러브씬 찍다 모기밥 되었노라 하더라. 셀카 자주 찍다보면 경지에 이르나니 이 소쇄원 대밭 사진이 모두가 셀피라. 2019. 5. 3.
담양에서 나는 청대죽靑大竹 담양하면 지금도 대나무와 죽제품으로 저명하거니와,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라고 해도 다른 것도 아니었다. 조선후기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이라는 위항문인이 있고, 그의 시문을 묶은 것으로 《송월만록松月漫錄》이 있다. 이에 수록한 시로써 다음과 같은 아주 긴 제목을 단 한 편이 있다. 기호철 선생이 그의 네이버 블로그에 소개한 글인데 전재한다. 내의원에 공물로 바치는 청대죽이 순창과 담양 두 고을에서 많이 나는데, 해마다 역을 거쳐 올라오는 수량이 500개를 밑돌지 않는다. 요사이 도처에서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시로 쓴다.[藥院進貢靑大竹, 多出於淳昌、潭陽兩縣, 而每年遞驛上來之數, 不下五百箇。近日連路不絶, 寓目發吟。] 순창과 담양의 대나무 서까래만큼 커서공물로 상납하는 수량 해마다.. 2019. 4. 10.
정호(鄭澔, 1648~1736) 〈식영정 중수기(息影亭重修記)〉 장성 獨居翁 기호철이 교열하고, 해제하며 옮기다. 지금은 전남 담양군 광주호 변 경승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한 누정樓亭인 식영정은 앞선 자료들을 봤듯이 임진왜란 발발 이전인 1560년 무렵에 지었다가 이후 언제인지 폐허가 된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공업자이면서 땅 주인인 김성원(金成遠, 1525~1597)과 그가 이를 지어 짜웅한 그의 장인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죽으면서 이내 폐허 상태로 방치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어느 시점이 되겠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그렇게 폐허가 된 그 터에다가 송강 정철 후손인 정민하(鄭敏河)가 그 땅을 사들이고는 경종 3년(1723) 무렵, 식영정을 재건한 사정을 정리한다. 중건기를 쓴 사람은 같은 정.. 2019. 1. 7.
김성원(金成遠, 1525~1597)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 장성 獨居翁 기호철 해제하고 번역하고 해설함 이번에 소개하는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은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쉬도록 제공한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지은 연작시다. 임억령이 쓴 〈식영정기〉에 따르면, 김성원은 1563년에 정자를 지어 식영정이란 이름을 짓고 그 기문을 지었다 했다. 하지만 김성원 행장에 따르면 식영정은 서하당과 같은 1560년에 이미 지었다고 했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임억령이 그 정자가 대단히 초라함을 강조해서 식영(息影)의 본래 뜻인 은거(隱居)가 지닌 의미를 극대화하고자 해서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억령은 식영정기에서 이 정자가 허름하다 했지만, 1563년에 쓴 시들을 보아도 .. 2019. 1. 7.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다. 임억령 시대 식영정은 이후 언제인지 사라지고 200년 가까이 그곳은 빈터로 남았다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후손들이 식영정 터를 매입해 정자를 새로이 짓고 중건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 직접 연결된다. 식영정 중건기를 송강.. 2019. 1. 5.
정철(鄭澈, 1536~1593),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3수(首) [1]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 되었나니, 借名三十載,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오. 非主亦非賓。띠풀로 겨우 지붕만 이어놓고서, 茅茨纔盖屋,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 復作北歸人。 [2]주인이 객과 함께 이르렀을 때, 主人客共到, 저녁 호각소리에 물새 놀랐더라. 暮角驚沙鷗。 물새들 주인과 객을 배웅하려고, 沙鷗送主客, 물속 모래톱에 도로 내려앉는다. 還下水中洲。 [3]밝은 달 적막한 뜰에 떠 있거늘, 明月在空庭, 송강정사 주인은 어디를 가셨소. 主人何處去? 낙엽이 수북하게 사립문 가렸고, 落葉掩柴門, 바람과 소나무 밤 깊도록 이야기. 風松夜深語。 [해제] 송강정사(松江亭舍)는 증암천(甑巖川)이라고도 일컫는 담양 죽녹천(竹綠川) 가에 있는 송강정으로 원래 이.. 2018.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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