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정철(鄭澈, 1536~1593),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4. 22.
반응형

담양 송강정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3수(首)

 

[1]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 되었나니,     借名三十載,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오.      非主亦非賓。

띠풀로 겨우 지붕만 이어놓고서,      茅茨纔盖屋,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     復作北歸人。

 

[2]

주인이 객과 함께 이르렀을 때,        主人客共到, 

저녁 호각소리에 물새 놀랐더라.      暮角驚沙鷗。 

물새들 주인과 객을 배웅하려고,      沙鷗送主客, 

물속 모래톱에 도로 내려앉는다.      還下水中洲。 

 

[3]

밝은 달 적막한 뜰에 떠 있거늘,       明月在空庭, 

송강정사 주인은 어디를 가셨소.      主人何處去? 

낙엽이 수북하게 사립문 가렸고,      落葉掩柴門, 

바람과 소나무 밤 깊도록 이야기.     風松夜深語。 

 


송강정 각석



[해제] 

송강정사(松江亭舍)는 증암천(甑巖川)이라고도 일컫는 담양 죽녹천(竹綠川) 가에 있는 송강정으로 원래 이름은 죽록정이었다. 정철의 호 송강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정철이 50세이던 1585년(선조18) 양사(兩司)의 논척을 받아 고양(高陽)에 물러나 지내다가 청평(昌平)에 내려와 살던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수에서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이라고 한 것은 그가 젊었을 때 창평에 살며 여기에서 송강이라는 호를 딴 것을 이른다. 송강이라는 호를 지었음에도 삼십년을 오지 못하여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는 송강정사에 오래도록 머물 생각은 없었고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의 것이었다. 다시 출사하게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이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 함께 이른 ‘주인과 객’은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송강 한 사람이다. 그가 송강정사에 이른 것은 ‘모각(暮角)’이었다. 모각은 저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인데, 송강 자신이 이미 모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20대에 노닐던 곳에 50대에 접어들어 찾아오자 ‘사구(沙鷗)’ 즉 모래톱의 물새는 놀라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가 송강정사에 오래 머물 사람이 아니기에 머지않아 송강을 배웅하려고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셋째 수에서는 그가 도로 서울로 떠나면 비게 될 송강정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른 뜰에 주인은 어디로 떠나고 사립문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이고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윙윙거릴 뿐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