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송강정
〈송강정사에서 묵으며[宿松江亭舍]〉 3수(首)
[1]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 되었나니, 借名三十載,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오. 非主亦非賓。
띠풀로 겨우 지붕만 이어놓고서, 茅茨纔盖屋,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 復作北歸人。
[2]
주인이 객과 함께 이르렀을 때, 主人客共到,
저녁 호각소리에 물새 놀랐더라. 暮角驚沙鷗。
물새들 주인과 객을 배웅하려고, 沙鷗送主客,
물속 모래톱에 도로 내려앉는다. 還下水中洲。
[3]
밝은 달 적막한 뜰에 떠 있거늘, 明月在空庭,
송강정사 주인은 어디를 가셨소. 主人何處去?
낙엽이 수북하게 사립문 가렸고, 落葉掩柴門,
바람과 소나무 밤 깊도록 이야기. 風松夜深語。
송강정 각석
[해제]
송강정사(松江亭舍)는 증암천(甑巖川)이라고도 일컫는 담양 죽녹천(竹綠川) 가에 있는 송강정으로 원래 이름은 죽록정이었다. 정철의 호 송강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정철이 50세이던 1585년(선조18) 양사(兩司)의 논척을 받아 고양(高陽)에 물러나 지내다가 청평(昌平)에 내려와 살던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수에서 ‘이름만 빌린 지 삼십년’이라고 한 것은 그가 젊었을 때 창평에 살며 여기에서 송강이라는 호를 딴 것을 이른다. 송강이라는 호를 지었음에도 삼십년을 오지 못하여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는 송강정사에 오래도록 머물 생각은 없었고 ‘도로 일어나 북으로 돌아갈 사람’의 것이었다. 다시 출사하게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이에 불과하다고 한 것이다.
둘째 수에서 함께 이른 ‘주인과 객’은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닌’ 송강 한 사람이다. 그가 송강정사에 이른 것은 ‘모각(暮角)’이었다. 모각은 저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인데, 송강 자신이 이미 모년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20대에 노닐던 곳에 50대에 접어들어 찾아오자 ‘사구(沙鷗)’ 즉 모래톱의 물새는 놀라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가 송강정사에 오래 머물 사람이 아니기에 머지않아 송강을 배웅하려고 모래톱에 내려앉는다.
셋째 수에서는 그가 도로 서울로 떠나면 비게 될 송강정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오른 뜰에 주인은 어디로 떠나고 사립문엔 낙엽이 수북하게 쌓이고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윙윙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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