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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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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다. 


임억령 시대 식영정은 이후 언제인지 사라지고 200년 가까이 그곳은 빈터로 남았다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후손들이 식영정 터를 매입해 정자를 새로이 짓고 중건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 직접 연결된다. 식영정 중건기를 송강의 후손이며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33~1689) 문인인 정호(鄭澔, 1648~1736)가 지은 인연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정자를 중건한 이후 정호와 같은 문중 사람인 정민하는 오늘날 담양 지실이라는 마을에 터 잡은 연일정씨(延日鄭氏)를 중흥시킨 이라고 할 만한데, 그가 식영정 주인으로서 남긴 기문이 지금 소개하는 이 기문이다. 지실은 식영정이 터잡을 마을로, 연일정씨 집성촌이다. 


이 기문은 예서로 써서 일부 판독이 쉽지 않은 글자가 있어 이런 대목들은 그간 이를 조사한 보고서에서도 모두 빠졌다. 예서 원문과 이를 오늘날 사용하는 정자로 바꾸고 표점을 찍어 번역한다. ​



식영정 현판



예서 원문


息影亭記」


嗚呼爾影爾隨吾而游行者今幾年𢨷吾行則爾行」

吾止則爾止吾動則爾動吾靜則爾靜七拾春秌行」

止動靜𣟒𢨷𨓹而不從游則嗚呼爾影亦云困矣雖」

𤉷吾榮則爾榮吾樂則爾樂何㠯言之彤庭玉階爾」

隨吾而后至咫尺𠀘威承玉音之丁寧于旹華筵𤋜」

身𠀘香惹衣此實不丗之榮灮難遇之異數苟非吾」

之𢨷隨則爾安得此榮乎吾榮則爾榮者此之謂𠃟」

且如風軒水閣爾隨吾而登陟携朋引盃樂旹華之」

佳勝時或起舞罇前爾影裵廻此實弌旹之快樂眼」

前之勝事苟非吾之𢨷游則爾安得此樂乎吾樂則」

爾樂者亦此之謂𠃟嗚呼爾影吾与爾榮且樂者極」

矣盡矣此間雖或有爾影靡依驚頹蒼黃之囸而使」

爾猶未至艱險之域爾亦𢆎矣吾今㿟頭森〃而爾」

影婆娑疲骨稜〃而爾影參 欲趨則不趨而爾亦」

不得趨欲走則不走而爾亦不得走吾已𠇾矣爾亦」

𠇾矣吾已息矣爾亦息矣主人翁書」



정민하〈식영정기(息影亭記)〉




탈초 


〈息影亭記〉

嗚呼爾影!爾隨吾而游行者,今幾年所?吾行則爾行,吾止則爾止,吾動則爾動,吾靜則爾靜。七拾春秋,行止動靜,無所往而不從游,則嗚呼爾影,亦云困矣。雖然,吾榮則爾榮,吾樂則爾樂。何以言之,彤庭玉階,爾隨吾而後至,咫尺天威,承玉音之丁寧,于時華筵照身,天香惹衣。此實不世之榮光,難遇之異數。苟非吾之所隨,則爾安得此榮乎?吾榮則爾榮者,此之謂也。且如風軒水閣,爾隨吾而登陟,携朋引盃,樂時華之佳勝,時或起舞樽前,爾影裵廻。此實一時之快樂,眼前之勝事。苟非吾之所游,則爾安得此樂乎?吾樂則爾樂者,亦此之謂也。嗚呼爾影!吾與爾,榮且樂者,極矣盡矣!此間雖或有爾影靡依驚頹蒼黃之日,而使爾猶未至艱險之域,爾亦幸矣。吾今白頭森森,而爾影婆娑,疲骨稜稜,而爾影參差,欲趨則不趨,而爾亦不得趨,欲走則不走,而爾亦不得走。吾已休矣,爾亦休矣。吾已息矣,爾亦息矣。

主人翁書。


식영정 노송




번역 


아아, 너 그림자여! 네가 나를 따라서 돌아다닌 지 지금 몇 년이더냐. 내가 가면 너도 가고, 내가 멈추면 너도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너도 움직이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너도 움직이지 않았다. 칠십 년 세월 왕래와 행동거지를 좇아서 가지 않음이 없었으니, 아아, 너 그림자 역시 피곤했다고 하겠다.


비록 그랬을지라도 나의 영광이 너의 영광이었고, 나의 즐거움이 너의 즐거움이었다. 어째서 이 말을 하느냐면, 화려한 궁궐의 조정에 너는 나를 뒤 따라와서 임금님의 위엄이 지척인 곳에서 임금님의 간곡한 말씀을 받들었는데, 그때 성대한 연회 자리에 몸을 비추어 궁궐의 향기가 옷에 배었다. 이는 실로 세상에 보기 어려운 영광이며 겪기 어려운 특별한 예우였다. 만약 나를 따르지 않았다면 네가 어찌 이러한 영광을 누렸겠는가. 나의 영광이 너의 영광이라는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또, 바람 부는 정자나 물가 누각 같은 곳에 너는 나를 따라 올라와 벗과 함께 술을 마시며 철에 맞춰 꽃이 피는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고, 때때로 술독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출 때면 너 그림자는 배회하였다. 이는 실로 한때의 즐거움이며 가까운 장래에는 훌륭한 자취가 된다. 만약 내가 노닐지 않았다면 네가 어찌 이러한 즐거움을 누렸겠는가. 나의 즐거움이 너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이를 말한 것이다.


아아, 너 그림자여! 너와 나의 영광과 즐거움이 지극하고 최고에 달하였도다! 이 사이에 비록 너 그림자가 쓰러지고 기대고 놀라고 무너지고 급작스러운 날이 있었을지라도 너를 여전히 어렵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만들지는 않았으니, 너에게도 다행이다.


나 지금 흰머리 무성한데 너 그림자는 검은 머리 덥수룩하고, 피골이 앙상한데 너 그림자는 우락부락하며, 빨리 걸으려 해도 빨리 걷지 못하니 너도 빨리 걷지 못하고,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나지 못하니 너도 달아나지 못한다.


나 이미 끝났다. 너도 끝났다. 나 이만 쉬련다. 너도 쉬려무나.


주인옹(主人翁)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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