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 대숲
담양하면 지금도 대나무와 죽제품으로 저명하거니와,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라고 해도 다른 것도 아니었다.
조선후기 임득명(林得明, 1767~1822)이라는 위항문인이 있고, 그의 시문을 묶은 것으로 《송월만록松月漫錄》이 있다. 이에 수록한 시로써 다음과 같은 아주 긴 제목을 단 한 편이 있다. 기호철 선생이 그의 네이버 블로그에 소개한 글인데 전재한다.
내의원에 공물로 바치는 청대죽이 순창과 담양 두 고을에서 많이 나는데, 해마다 역을 거쳐 올라오는 수량이 500개를 밑돌지 않는다. 요사이 도처에서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시로 쓴다.[藥院進貢靑大竹, 多出於淳昌、潭陽兩縣, 而每年遞驛上來之數, 不下五百箇。近日連路不絶, 寓目發吟。]
순창과 담양의 대나무 서까래만큼 커서
공물로 상납하는 수량 해마다 500개
임금님 쓰고 남은 건 백성에게 돌아가니
서울의 사월 초파일 연등 가득 매달렸네
淳潭竹樹大如椽, 上貢年年數半千。御用餘材歸百姓, 京城八日萬燈懸。
(《松月漫錄》 冊2)
담양 소쇄원
청대죽이 별거라고 생각할 필요없다. 말 그대로 푸른 대나무로써 덩치가 큰 것이니, 이는 지금도 담양 대나무 숲에서 흔히 보는 그것이다.
그런 큰 대나무를 공납물로 바쳤던 것이니, 그것을 거둔 관청이 약원藥院이라 하니, 대나무와 약원이 무슨 상관인지 생각해 봄 직 하나, 아직 내가 그에는 미치지 아니했다. 그 용처가 초파일 연등 달기라 했는데, 이 역시 흥미롭기는 하다.
그건 그렇고, 대나무 공납품은 이송 작업이 지랄이었을 듯한데, 그 고역 역시 만만찮았을 것이다.
담양 소쇄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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