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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5

국립중앙박물관 오세창吳世昌 전시장에서 위창 오세창(1864-1953), 그는 누구인가. 3.1운동 33인의 한 명인 독립운동가이자, 전서로 일세를 풍미한 서예가요, 기자로 시작해 와 를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언론인에 와 을 엮은 수집가, 거기에 을 저술한 미술사가. 도대체 어느 한 면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70주기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촐한 전시를 꾸렸다. 한국미술사의 시조에게 바치는 헌사 - "근대 문예인, 위창 오세창"이다. 12월 말까지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으시거든 꼭 한 번 다녀오시기를. 그리고, 한국의 근대라는, 그 어려운 시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격랑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한 인물('문예인'이란 표현.. 2023. 11. 11.
위창과 우현, 두 거장의 만남 1. 한국미술사를 공부한다면서 위창 오세창(1864-1953)과 우현 고유섭(1905-1944) 두 분께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두 분의 글 제목을 연구사의 첫머리에 얹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위창은 전통적 서화골동 감식의 마지막 세대였고, 우현은 미술사라는 새로운 학문을 익힌 첫 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은 역대 한국의 미술이 지나온 궤적과 미술가들의 삶을 당시의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섬세하게 살피고 정리해냈다. 2. 이들은 40년 넘는 나이 차가 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런 만큼 두 분이 만나고 교분을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과연 둘이 만났다면 어떤 얘기를 했을까? 둘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상상은 꼬리를 잇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상상을 현실로 만들 근거가.. 2023. 10. 22.
누구나 언론이며 기자인 시대를 살아가는 법 아래는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어떤 행사 예고와 그에 첨부한 사진들이다. 천상 기성언론이 하던 일을 고스란히 우라까이했음을 본다. 이런 현상이 관공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관찰되는데 기존에는 보도자료라 일컫던 양식이라 언론에다 우리 이런 일 한다, 혹은 이런 일 했다 라고 선전하고 싶을 때 배포하던 자료들이다. 그런 까닭에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했는데, 이 보안이란 실은 보도자료 공개시점이었다. 흔히 엠바고 해제라는 이 보도자료가 공개되는 시점을 기해 그 봉인이 풀렸다. 하지만 시대는 급속도로 변해서 무엇보다 그 엠바고 시점을 그런 자료를 배포해야 하는 기관들이 기다리지 못하는 시대로 돌입했으니 알리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시절이 되었다. 예고라는 이름으로 우리 이런 거 준비한다는 사전정보 유출이 요새.. 2023. 9. 16.
위창葦滄이 보던 고려도경高麗圖經 국립중앙도서관 위창문고에 있는 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철필로 긁어 민 등사본이다. 몇 군데 살펴보니 지부족재본을 그대로 베꼈는데, '경성 군서당서점'이란 딱지가 붙었다. 이당 김은호의 자서전 을 보면 당시 서점에선 알바들을 고용하고 책을 베꼈다고 한다. 필경사들이 베낀 책의 수요가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창 선생 댁에 지부족재본 이 없었다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 台植補 *** 위창문고란 근대 서화가이자 서지학도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문고를 말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이에서 말하는 등사가 실은 전통시대 전형적인 출판방식이다. 인쇄본? 졸라 비싸고 출판량도 많지 않아 구득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것도 대개 비매품이라, 그거 하나 얻겠다 난리를.. 2021. 3. 17.
위창葦滄 독서도 위창은 오경석 아들로 오세창吳世昌(1864~1953) 호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작가다.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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