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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위창과 우현, 두 거장의 만남

by taeshik.kim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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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미술사를 공부한다면서 위창 오세창(1864-1953)과 우현 고유섭(1905-1944) 두 분께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두 분의 글 제목을 연구사의 첫머리에 얹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위창은 전통적 서화골동 감식의 마지막 세대였고, 우현은 미술사라는 새로운 학문을 익힌 첫 세대였다.

하지만 이들은 역대 한국의 미술이 지나온 궤적과 미술가들의 삶을 당시의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섬세하게 살피고 정리해냈다.

2. 이들은 40년 넘는 나이 차가 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런 만큼 두 분이 만나고 교분을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과연 둘이 만났다면 어떤 얘기를 했을까? 둘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상상은 꼬리를 잇지만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상상을 현실로 만들 근거가 나타났다.

3. 어느 날, 문화재를 단상에 올려놓고 가격을 매기기로 유명한 모 프로그램에 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몇 주 뒤, 어떤 경매회사 누리집에 이 글씨가 올라왔다.

시작가는 그 프로그램 감정가 1/3이었는데, 딱 한 분만 입찰을 해서 결국 시작가에 낙찰되었다.

뜻밖의 작품이 나타난 기쁨과는 별개로,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 때는 1937년 여름, 일흔넷의 예술가와 서른셋의 학자가 만났다. 노예술가는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젊은 학자를 만난 것이 퍽 기꺼웠는지, 종이를 펴고 붓을 물들였다. 그가 많이 썼던 전서체로 칠언 대구를 적어내려갔다.

氣節爲精金介石 心神如秋月春雲
기운과 절조는 정련된 금과 단단한 돌처럼
마음과 정신은 가을날 달과 봄날 구름같이


그리고 전서 느낌이 나는 예서체로 낙관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우현 대아께서 바로잡아주소서. 정축년 여름 오세창."

5. 태산북두 두 분이 만나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80여년 뒤의 후학은 그저 상상만 할 뿐, 남은 건 글씨뿐이다.


*** Editor's  Note ***


내년이 우현 80주기라 혹 이에 기념한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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