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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한국과 중국의 미라48

마왕퇴 (10): 인증 도장, 봉니封泥 * 마왕퇴는 문화적 측면은 김단장이 쓰실 것이라 깊이 다루지 않으려 했는데 검토하다 보니 이따끔씩 짧게라도 멘트를 남겨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싶어 이런 것은 함께 다룬다. 마왕퇴에서는 봉니封泥가 나왔는데 그 중에 많은 것이 "대후가승軑候家丞" 그리고 "우위右尉" 봉니다. 열후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 중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가승家丞"이라고 한다. 마왕퇴 봉니에서 "가승"명 봉니가 많은 것은 피장자의 사망 후 무덤에 함께 묻는 부장품의 최종 점검을 "가승"이 한 탓이라 한다. "우위" 봉니는 아마도 피장자가 분봉 받았던 "대후국"의 "우위"였을 것이라는데, 대후국의 우위라고는 해도 대후인 피장자에게 피종속 된 관계는 아니었다고 한다. 대후국에는 별도의 현령縣令이 있었고 이는 한 조정에 직접 종속되어 .. 2023. 10. 29.
마왕퇴 (9): 방부처리 중인 미라 보자 몰려든 수십만 군중 마왕퇴 시신은 원래 이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결국 이를 방부처리키로 했다. 방부처리는 해부용 시신이나 좀 얻어볼까 하고 찾은 호남의학원 해부학교수들을 잡아 놓고 이들에게 협박 반 사정 반으로 제발 도와달라 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해부학교수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교육용 시신에 대한 방부처리를 하는 방식대로만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방부처리용으로 알코올과 포르말린 혼합액을 주입했다고 되어있는데, 대개 혈관에 방부액을 흘려 보내면 이 방부액이 몸 안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까지 따라가며 시신을 더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왕퇴 미라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혈관 속에 방부액을 흘려 보냈던 모양인데 아마도 큰 혈관은 흘러 지나갔겠지만 소혈관 이하.. 2023. 10. 29.
마왕퇴 (8): 만병통치약 마왕퇴 기록을 보면 중국 대중은 조용한가 싶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몰려들어 쑥밭을 만들어 놓고 떠나가는 존재로 나온다. 이 당시가 문화혁명 절정기였던 탓도 있고, 뭐 솔직히 있는 그대로 쓰자면 중국민중의 당시 민도 탓도 크다. 마왕퇴 무덤은 가장 안에 목곽이 놓이고 그 밖에 숯을 채우고 다시 그 바깥쪽을 고령토로 다져 밀봉한 다음 위에 흙을 다져 쌓아 올려 만들어졌다. 이 무덤을 발굴했을 때 목곽주변에 쌓아 둔 막대한 양의 숯이 나왔는데, 너무 많은 양이 나와 이 숯은 박물관 창고에도 넣지 못하고 마당에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쌓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숯을 사람들이 광주리를 들고와 퍼가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런지 이유를 들어보니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이 숯이 사람들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고 .. 2023. 10. 28.
마왕퇴 (7): 호남의학원 마왕퇴 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관의 하나가 호남의학원이다. 의학조사 자체는 당시 중국 내 전국의 의과학 역량을 딸딸 긁어 모았다고 해도 좋은데, 그 중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 湖南医学院이다. 이 학교는 2차대전 이전에는 상아의과대학湘雅医科大学이라 일컬은 대학으로 1914년 미국 비영리재단인 Yale-China Association에 의해 건립된 의대였다고 한다. 한때 "북중국은 협화의대, 남중국은 상아의대"라고 불릴 정도로 대륙의 의학계를 양분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공내전 후 1953년, 상아의대가 호남의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마왕퇴 무덤이 발굴되던 당시에는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호남의학원이 마왕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마왕퇴에서 미라가 나왔는데 정부에서는 문화재.. 2023. 10. 27.
마왕퇴 (6): 소하와 문화혁명 마왕퇴 연구의 이해는 문화혁명에 아주 깊이 얽혀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화혁명의 절정기에 중소분쟁이 격화한 그 와중에 마왕퇴 무덤이 발굴되었고, 무려 2천년전 한 제후왕의 완벽하게 보존된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것 때문에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성격으로 비화할 확률이 높았다. 그냥 문화유적과 유물은 그렇게만 봐주면 될 것을 당시는 문화혁명 와중이라 이에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워 마왕퇴 무덤은 반동영주계급의 소산이요, 마왕퇴 미라는 호의호식한 여편네 정도로 폄하되어 원래 같으면 홍위병 습격으로 몽땅 태워질 판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마왕퇴 발굴이 그렇게 막장으로 가지 않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 한 의학조사까지 성공리에 마친 것은 어쨌건 그 미친 세상의 와중에도 제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 2023. 10. 26.
마왕퇴 (5): 해부는 왜 했을까? 앞서 마왕퇴 미라에 대한 해부를 곽말약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마왕퇴 의학조사는 그 목적이 과학적 연구도 있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이 미라의 보존에 있었다. 당초 미라가 발견된 후 이 미라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현지 고고학자들이 상부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의를 했을 때, 이 미라는 보존의 가치가 없다.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명령이 하달 되었을 정도였다. 미라라는 것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이천년전 사람이 썩지 않고 나타났을 떄 그 당혹스러움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다. 우여곡절끝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그러면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죽은 사..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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