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퇴 시신은 원래 이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결국 이를 방부처리키로 했다.
방부처리는 해부용 시신이나 좀 얻어볼까 하고 찾은 호남의학원 해부학교수들을 잡아 놓고
이들에게 협박 반 사정 반으로 제발 도와달라 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해부학교수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교육용 시신에 대한 방부처리를 하는 방식대로만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방부처리용으로 알코올과 포르말린 혼합액을 주입했다고 되어있는데,
대개 혈관에 방부액을 흘려 보내면 이 방부액이 몸 안 곳곳에 퍼져 있는 모세혈관까지 따라가며
시신을 더 썩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왕퇴 미라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혈관 속에 방부액을 흘려 보냈던 모양인데
아마도 큰 혈관은 흘러 지나갔겠지만 소혈관 이하는 모두 막히거나 수축되어
의학교육을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 할 때처럼 체내 곳곳으로 방부액이 흘러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방부액에 오랫동안 시신을 담궈 두는 수 밖에 없는데,
마왕퇴 미라의 경우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큰 유리관을 하나 제작하여 그 안에 방부액을 붓고
미라를 그 안에 담궈 두어 방부처리를 하려 한 모양이다.
호남의학원 교수들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셈인데
이렇게 방부처리 중에 그냥 놔두었으면 되었을 것을
미라를 좀 보자는 인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당의 명령 덕에
유리관 안에서 방부처리 중인 상태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때 기록에 의하면 방부처리 중인 유리관 안에 있는 미라를 보기 위해
장사시 시민 수십만 명이 박물관으로 몰려들었다는데
미라를 보겠다고 몰려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유리창이 깨지고 문이 부숴지는 등
박물관은 난장판이 되어 다치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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