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마왕퇴 미라에 대한 부검을 곽말약이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마왕퇴 의학조사는 그 목적이 과학적 연구도 있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이 미라의 보존에 있었다.
당초 미라가 발견된 후 이 미라가 문화적 가치가 있는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아니 의견이 엇갈린 것이 아니라 마왕퇴 보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여
마왕퇴 한묘를 조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봉건 지주계급을 옹호하는 주자파라는 주장이 문혁의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서 현지 고고학자들이 상부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라는 문의를 중앙 정부에 했을 때,
이 보고를 먼저 접한 사인방의 일파는 미라는 보존의 가치가 없다. 보존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명령을 바로 하달했을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그럴진대, 어느날 갑자기 이천년전 사람이 썩지 않고 나타났을 떄
미라라는 것을 본 적도 생각했던 적도 없는 사람들의 당혹스러움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다.
우여곡절끝에 이 미라를 보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그러면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죽은 사람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것이 바로
지도자가 죽을 때마다 방부처리를 해서 보존하던 소련이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시 소련과 중국은 핵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마왕퇴의 방부처리에 대해 소련으로부터 노하우를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역시 곽말약이 주장한 것처럼
일단 해부를 해서 내장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을 만 하다.
아니, 사실 소련의 방법대로 하더라도 내장은 제거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죽었을 때, 썩기 시작하는 부패균의 증식은 두 군데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피부, 그리고 또 하나는 내장이기 때문이다.
내장 안에는 정상적으로도 장내 세균총이 있는데 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내장으로부터 시신이 썩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인체의 방부처리를 할 때는 가장 먼저 내장을 제거해야 했는데,
이는 이집트 미라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미라에서 모두 동일했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외치 등 미라에서는 이런 작업 없이 냉동 공간에서 그대로 보관하고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이러한 결론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팽융상은 마왕퇴 한묘에서 나온 미라의 내부 장기를 제거하기 위한 부검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신동훈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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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 한묘馬王堆漢墓와 여성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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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 한묘馬王堆漢墓와 여성미라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서 1970년대 초반에 발견되고 발굴된 이른바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미라mummy 관련 단행본을 서울대 의대 신동훈 교수와 내야 한다. 아직 이 작업에 본격 내딛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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