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이제 이 글 마무리 할때가 되었다.
글의 대부분은 미라나 발굴현장에서 수집한 인골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웠다.
지금까지 연재를 통해 인골과 미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발굴현장에서 차근차근 수집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법률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비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고려해야 할 전부일까. 미라의 학술적 중요성만 고려하면 되는 것일까.
발굴현장 어딘가. 열심히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잠깐만 돌려보자.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한 것이지만 우리는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 보는데 익숙하다.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있고 그 중 악인은 뚜렷이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연구윤리를 위반한 신문 기사가 뜨면 어떻게 그런 나쁜넘이 대학교 선생을 하고 있느냐고 분개한다. 이런 독자의 정의감 자체에는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문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연구윤리 문제의 태반은 우리가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은데서 발생하고 선한 일 중독자 사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미국에는 NAGPRA라는 것이 있다. Native American Graves Protection and Repatriation Act라고 쓰는 법률의 약자이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미국 원주민 고분 보호 및 반환에 관한 법률" 정도가 될 것이다.
미국은 잘 알다시피 원래 미국 원주민 땅이었던 북미대륙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점령하여 새운 나라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원주민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미대륙에는 많은 박물관과 연구기관이 새로 생겼는데 이 기관들 수장고를 북미인디언 무덤이 발굴되어 여기서 획득한 유물과 (인골) 등을 구입하여 채우는 일이 빈번해졌다. 앞에서 막대한 학문적 의의를 지닌 스미소니안 박물관 같은 곳도 수장하던 많은 인골을 이렇게 해서 얻었다. 말하자면 무덤 연고자 (이 경우 해당 부족. 따라서 무연고와는 또 다르다) 동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무덤이 발굴되고 여기서 얻은 인골들이 박물관 컬렉션으로 보관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렇게 박물관에 보관된 북미인디언 인골은 19세기 후반 이래 무려 14,500 개체에 달했다고 한다.
이렇게 획득한 인골은 20세기 동안 인류학자들의 소중한 연구 자산이 되었다. 오늘날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미국 뼈고고학-생물인류학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아마도 이렇게 획득한 연구자산-북미 인디언 인골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북미인디언 인골과 인류학자 간의 밀월(?)은 끝났다.
북미인디언 인골의 박물관에서 해당 부족으로 반환되는 모습
자신들 조상의 무덤이 허락도 없이 발굴되어 "학술적 목적으로" 유물과 인골이 박물관에 보관되는 상황에 직면한 원주민들은 집요하게 반환을 요구했고 마침내 미 연방정부는 1990년, 미국 정부 연구비를 받아 연구를 수행한 연방정부와 연구기관은 미국 원주민의 문화유물 및 인골을 해당 무덤의 피장자가 속한 집단이나 후손이 있을 경우 이들에게 반환하라고 판결을 내린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풍부한 인골 컬렉션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인류학계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 연구의 공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어느 정도 양해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후손이 있는데도 그냥 무덤을 파서 들고간 행위는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2019년 현재 이 법률은 아직도 미국에서 강력히 시행 중이다.
NAGPRA를 묘사한 그림. 미원주민 유물과 인골을 조사한 고고학-인류학자의 순진한 얼굴을 보라. 이 사람들 그 누구도 스스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대로 학문적 관심, 사회적 공익, 그리고 이에 따른 과학적 연구야말로 언제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은 여러모로 미국 학계에 이정표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보고 그때까지 하던 여러 연구활동을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후에도 NAGPRA가 정한 범주 이외의 연구활동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박물관이 보유한 미국 내 인골 컬렉션은 양적 질적 면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다.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의 경우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이처럼 강한 규제를 고인골에 대해 걸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한 고인골에 대한 연구는 합법적으로 허용하며 NAGPRA 영향을 받아 만든 법률이 있는 경우에도 NAGPRA처럼 강력하게 반환을 지시하는 경우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한편 우리나라는 인골이 합법적 정부 허가를 거쳐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고 유족이나 문중의 뜻에 반하여 박물관에서 이를 보관하는 경우도 없으니 미국의 이런 사례와는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분들도 수백년전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학적조사는 사회적 합의하에 정중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정작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학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일수록 "일괄해서 보관"해야 한다던가 "일괄해서 매장"해야 한다는 일도양단의 주장이 나오기 쉬운데 어느쪽도 항상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수백 수천년 된 유해이긴 하지만 어쨌건 우리같은 사람인 이상 미라건 인골이건 간에 이를 보관해야 할것인가 매장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의 즉흥적 감정에 따라 혹은 법률의 이름으로 일괄적이고 기계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많은 부분을 관련자들이 함께 따져보고 여러 사람들의 중의를 모아 "조사하고" "매장하고" 혹은 "모시고 있어야 (우리 연구실에서는 인골이나 미라는 보관한다는 말은 잘쓰지 않는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세한 부분이 고려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조사" 혹은 "매장"이란 인디언 원주민 인골과 NAGPRA의 경우처럼 그 누구도 생각지도 않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항상 있다고 봐야 하겠다.
결국 이 연재는 미라를 매장해야 하는가 보존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 어느 쪽을 택하건 그것보다 기본적으로 이 분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 부분을 충족하는 그런 쪽으로 우리 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을까. (完)
고민하는 오창석박사
* 혹 미라나 인골에 대한 조사기간이 길어지고 학술적 가치가 너무 높아 수십년을 모시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인골이나 미라는 다른 유물 처럼 박물관 유물로 분류되어 기계적으로 보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비록 조사에 동의하는지 돌아가신 분께 직접 물을 수는 없더라도 매장 전에 잠시만 과학적 조사를 위해 그들에게 시간을 빌린다는 생각으로 유골과 미라 된 분들을 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설사 우리가 미라나 인골을 "보존" 하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유물을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마음의 준비- 영원한 안식이 될 "매장" 이전에 우리가 잠시 모시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 분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맞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인골/미라에 대해 조사할 것인가 조사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보존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보존할 것이가 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디테일 있게 합의만 될 수 있다면, 여러가지 이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예방 할 수 있겠다고 본다.
** 우리 연구실은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미라로 발견되신 분들은 인류학적 조사를 거친 후 유족에게 반환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발굴기관이 화장할 수 있도록 반환하고 있다. 물론 예외적 상황도 있지만 극소수. 하지만 미라를 보존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의견은 해외에도 연구자에 따라 다르므로 우리의 방식이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란 어렵다. 연구실 마다 다른 처리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다시 말씀 드린다.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은진, 이원준, 공수진, 신동훈 등이 저술한 "학술적 연구대상으로서 고인골의 법적 지위에 대한 검토 (야외고고학 20호)"라는 논문에 어느정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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