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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미라

[조선시대 미라-7]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2)

by 초야잠필 201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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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 2회 분 연재에서 한 번은 미라 보존과 매장의 문제를, 또 다른 한번에서는 그간 우리 연구실에서 보고한 연구 실적을 간단히 언급했다. 

 

이 중 두번째 분량은 본문에서도 썼던 바와 같이, 조선시대 미라가 단순히 흥미 영역을 넘어 명실상부 한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국 조선시대 미라 안에 아직도 잔존한 과학 정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윤리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조사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증명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과연 어떤 "의학적 정보"가 미라 연구를 통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이야기를 하나 예를 들어 써보겠다.  

 

때는 지금부터 13년 전. 2006년 4월. 

 

지금은 국립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 중인 이양수 선생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았다. 

 

당시 이양수 선생은 김해박물관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이 양반 이야기인즉 현지 발굴 중 조선시대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보물전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이양수 선생.

 

 

하동에서 발견된 회곽묘. 회곽이 완전한 형태로 유지되어 내부에서는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가 발견되었다 

 

이 미라는 현장에서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출토복식이 정리되어 옷은 따로 수습 되었고 우리는 미라가 되신 분만 연구실로 모시고 올 수 있었다. 

 

위 사진에서 콘크리트 박스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회곽"이다. (연구자에 따라 "회격"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 무덤을 발굴하면 지면 아래에 저런 구조물이 들어 있다. 이 회곽을 부수고 들어가면 내부에 관이 있는 것이다. 

 

 

회곽이 열리는 장면. 내부 관이 보인다. 

 

대개 회곽묘가 보존상태가 아주 좋은 경우에는 내부 관재가 마치 어제 나무를 켜서 만든 듯 생생한 일이 많다. 이런 경우 관 내부에서는 돌아가신 분이 미라가 되어 계실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회곽묘"라는 무덤의 기원과 구조, 그리고 미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지금은 건너뛰기로 하자. 

 

회곽 내부의 관. 보존상태가 탁월하다. 

 

관 뚜껑을 열면 염습한 시신이 보인다. 사실 이 단계에서 시신이 미라화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각설하고, 이 무덤에서 발견된 피장자-미라는 서울 우리 연구실로 모시고와 다양한 인류학적 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중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기생충학적 검사였다. 

 

미라 장기에서 채취한 분변 시료를 수화하여 기생충학적 검사를 수행한 결과 다양한 종류의 기생충 알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미라 분변안에서 발견한 기생충란 중에는 "참굴큰입흡충"의 충란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하동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미라 분변에서 확인 된 "참굴큰입흡충"의 충란. 

 

사실 이 미라에 대한 기생충학적 조사가 있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학계에서 미라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 하고 있었다고 본다. 

 

옛 미라에서 조선시대 당시의 기생충 알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야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겠지만 과연 학술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학자들이 시간을 들여 연구할 만한 대상일까? 

 

이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당연한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미라에서 "참굴큰입흡충"이 발견되면서 조선시대 미라 연구의 학술적 가치는 일약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필자가 이 부분 이야기를 자세히 여기에 써 볼까 생각하고 장황하게 쓰고 있던 중 웹서핑을 하다가 고기생충학 연구를 필자와 공동 작업을 하는 단국대 서민 박사가 잘 써둔 글이 이미 온라인에 업로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굴큰입흡충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함께 이 기생충란을 미라 샘플에서 발견한 것이 왜 당시 기생충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가 하는데 대한 설명이 자세하여 아래에 링크 해 둔다. 독자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네이버캐스트: 참굴큰입흡충 (단국대 서민)

 

 

단국대 서민 박사는 필자의 대학 동기동창인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ㅋㅋ). 

 

위 글을 읽고 나면 조선시대 미라 연구가 단순한 복고취향이 아니라 어떻게 현대 의학 연구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갔을 것이라 본다. 

 

이제 다음 회 부터는 조선시대 미라의 매장과 보존 문제로 다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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