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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글이 안 되자 붓을 던져버린 최온崔昷

by taeshik.kim 202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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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강

 

 


고려 중기를 살았던 최온崔昷(?∼1268)이란 사람이 있었다. 당대 문벌인 철원 최씨 출신으로 그 자신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는데, 자기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좋게 말하면 문벌답게 행동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콧대높은 안하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문한관이 되어 임금의 문서를 담당하는 고원誥院에 들었다. 그때 이순목李淳牧, 하천단河千旦이라는 이들이 같이 근무했는데, 그들은 지방의 향리 출신이었다. 그러니 최온의 눈에 찰 리가 있나. 서로 경이원지하던 중...

"이웃나라에서 견책譴責하려 보낸 조서詔書에 대한 답서答書를 작성하여 올리라는 명령이 있어, 최온이 붓을 잡았는데, 머리를 긁으며 고심을 해도 뜻대로 글이 되지 않자 붓을 집어 던지고 욕을 하며 말하기를, “이것이 시골구석의 포의布衣 무리가 자부하는 까닭인가?”라고 하였다."

당시는 '능문능리能文能吏'로 대표되는 실무형 관료가 많이 진출한 때였다. 최온도 과거에 급제해 문한관이 될 정도였으니 글재주가 없는 것은 아니었겠지만서도, 오로지 글재주만으로 그 자리를 얻어낸 이들에게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그 자부심에 성질이 뻗치지 않을 수 없었던가 보다.

 

*** 이상 국립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이다.

 

이 무렵은 최씨 무신정권기로, 기라성을 방불하는 문장가가 많이 등용되었으니, 저들 역시 그런 신진들 중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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