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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어우야담於于野談》이 과장한 금강산 폭설과 유점사탑

by taeshik.kim 202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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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금강산 유점사.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금강산은 산이 험하고 땅이 북쪽에 가까워 큰눈이 많이 내려 매양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고 쌓인 눈이 산을 덮어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곤 한다. 


(중략) 유점사楡岾寺 탑은 높이가 열 길인데 탑 꼭대기에 달린 뾰족한 쇠가 (사냥꾼들이 타고 다니는) 썰매에 부딛혀 기울어졌으니 쌓인 눈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고성군은 금강산 아래에 있다. 가정嘉靖 연간(1522~1560)에 큰눈이 산을 덮어 산에 길이 없어진지 여러 달이었다. (고성)태수가 밤에 꿈을 꾸니 어떤 神人이 관아의 문을 엿보며 말했다.


식민지시대 금강산 유점사 능인보전과 구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전형적인 고려시대 빼빼로형 석탑이다.



"나는 월출봉月出峰 산신령이요. 적조암寂照庵 중이 눈에 막혀 음식을 먹지 못한지 이미 닷새입니다. 태수가 그를 살려주기를 바라오."


꿈에서 깨어나 기이하게 생각하고는 사냥꾼을 불러 마른 양식을 싸서 썰매를 타고 월출봉을 찾아가도록 했다. 적조암 중을 부르니 그가 깊은 눈속에서 대답했다. 마침내 눈을 뚫고 양식을 주니 중은 굶은지 이미 닷새였다.


식민지시대 금강산 유점사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조선중기 때 문사 유몽민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보인다. 


유몽인이 직접 들은 얘기를 처음 채록했는지, 누군가의 글에서 베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건이 발생한 가정연간과 유몽인이 활동한 시대가 대략 반세기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석탑에 대한 구체적인 재원을 내가 확보하지는 않아 자신이 없지만, 물론 유몽인의 저런 증언은 뻥이다. 


금강산 혹은 유점사가 남극이나 북극도 아닐진댄, 저 높은 탑이 보주만 뾰족히 내민 상태로 눈이 덮일 리는 만무한 까닭이라, 저길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쌔고쌘 판국에 맘껏 질러나 본 셈이다. 이른바 과장법이라는 것인데 뭐 요새 저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가짜뉴스로 판별날 것이요, 그런 증언을 일삼은 유몽인은 기뤠기가 되지 않겠는가?


뻥을 쳐도 쎄게 쳐야 한다. 


그냥 웃으면 될 일이요, 증언이 정확치 못하다느니, 가짜뉴스니, 기뤠기니 꼭 욕지거리 해대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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