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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가와 가사문학 고려말 조선 초에 발생해 이후 유행하는 긴 사설형 운문형식 우리말 노래를 가사歌辭라 하고, 그를 둘러싼 문학 환경 전반을 가사문학이라 하거니와, 이에 대한 명칭으로 가사라는 게 과연 적당한지 나는 모르겠다.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는 면앙정가에 대한 평이 보이거니와 그에서는 그냥 '이어장가俚語長歌'라고만 했다. 근세에 우리말로 장가(長歌)를 짓는 자가 많으니, 그 중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와 진복창(陳復昌)의 만고가(萬古歌)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흡족하게 한다. 면앙정가 줄거리를 보면 아늑한 산천과 널찍한 전야의 모양과 높고 낮은 정대(亭臺), 휘돌아드는 지름길, 그리고 춘하추동 사시와 아침저녁 경치를 두루 기록하지 않음이 없는데, 우리말에 한자를 써서 그 .. 2018. 2. 19.
동몽선습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이야기다. 근세에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책이 있어 이름을 《동몽선습(童蒙先習)》이라고 하는데, 누구 저작인지는 몰랐다. (그러다가) 어떤 이가 사문(斯文) 박세무(朴世茂)의 저작이라 하기에 그 조카 박정립(朴挺立)에게 물어보았더니, 과연 자기 숙부 저작이라 했다. 그 책은 먼저 오륜(五倫), 다음으로는 역대 사실을 서술하였으며, 그 다음은 우리나라의 사실과 경사(經史) 약간을 서술하였으니, 어린이에게 마땅히 먼저 읽힐 것이 된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자는 어찌 이것을 먼저 가르치지 않겠는가. 2018. 2. 19.
묘제墓祭와 봉분 무덤에 가서 조상을 제사하는 행위인 묘제墓制 혹은 묘를 살피는 성묘省墓는 실은 각종 의례서에서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아마도 어느 일정 시기까지 무덤에다가 그 표식인 봉분을 만들지 않은 데서 비롯한 것으로 나는 본다. 중국사를 보면 공자 이전에는 봉분이 없어, 일단 무덤을 쓰고 나면, 그 위치는 후손도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까닭에 장소도 모르는 묘제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묘제의 제1 성립 조건은 그 위치 확인이다. 묘제를 둘러싼 이렇다 할 규정이 없는 까닭은 나는 이런 역사성에서 말미암는다고 본다. 묘제 혹은 성묘는 때마다 무덤을 소제하는 행위인 소분掃墳 혹은 잡초를 베어내는 벌초伐草와도 밀접하다. 봉분이 없던 시대, 조상숭배는 자연 조상의 혼이 깃들었다고 간주하는 사당인 종묘宗廟 혹은 가묘.. 2018. 2. 19.
서얼 차별, 그 부당성은 누구나 알았으나...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이야기다. 국법(國法)에 서얼(庶孼)은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는 옛날에는 없던 일이다. 당초 이런 법을 세운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근래에는 벼슬길을 열어주자는 의론이 여러 번 있었으나, 결국 행해지지 않고 있으니, 또한 그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서얼로 문장에 능한 자는 앞선 시대에 어무적(魚無跡)과 조신(曹伸)이 가장 유명하고, 근세에는 어숙권(魚叔權)과 권응인(權應仁)이 또한 유명하며, 그 나머지는 모두 기억하지 못하나, 재주를 가지고도 출세하지 못함은 어찌 억울하지 않으리오. 그리고 나라에서 인재를 수용하는 데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서얼 차별이 가혹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고, 실제 그 철폐를 위한 움직임이.. 2018. 2. 19.
Pantheon, Rome Pantheon or Πάνθειον, Rome, Italy Originally Build by Marcus Agrippa during the reign of Augustus (27 BC – 14 AD), the temple was completed by the emperor Hadrian and probably dedicated about 126 AD. The building is circular with a portico of large granite Corinthian columns (eight in the first rank and two groups of four behind) under a pediment. A rectangular vestibule links the porch to the r.. 2018. 2. 19.
때되면 깨끗이 물러나라 서거정(徐居正·1420∼88)의 《필원잡기(筆苑雜記)》 제2권에 보인다. 고려 때에는 다섯 성(省)에 일곱 추(樞)가 있어 재상의 숫자가 적었으므로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직책을 제수하였기 때문에, 벼슬은 높아도 한직에 있는 자가 반수나 되어 70이면 반드시 치사하였고, 연령을 숨기고서 치사하지 않는 자는 여론이 나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비록 70이 되지 않았더라도 인끈을 풀고 퇴직을 원하는 자가 많았다. 본조 개국 이래로 비록 치사하는 법이 있었으나 높고 낮은 관원들이 녹을 탐하여 연한을 무릅쓰고 그대로 벼슬하는 자가 거의 전부였다. 요즈음 사헌부에서는 나이가 심히 많은데도 억지로 벼슬에 종사하는 자를 미워하여 해당 부처에 공문을 보내어 연령을 상고하여 탄핵하려 했다. 내가 말하기를, “송나라 한위공.. 2018.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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