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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이 들어가는 무과급제 대개 우리나라 역사학은 사족들의 글만 읽다 보니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있어조선후기 양반들이 대과 급제는 기본이요소과 급제정도는 해야 되고무과는 과거도 아니라는 뉘앙스의 글을 자주 보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후기 들어오면 사족들은 호적상 점점 늘어나고, 이들은 어떻게든 급제 출신으로 정말 제대로 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는데과거 급제는 숫자가 뻔해서 아무리 별시 증광시가 있다 해도 문과급제는 언감생심한 번에 백명씩 뽑는 진사 생원도 쉽지 않아족보들을 유심히 보면 촌 동네 사족들은 소과 급제자도 매우 드물다. 향촌에서 진사의 파워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호적에 유학이라고만 적혀도 17,18세기에 그 파워란 무시 못하는 것인데, 진사 입격에 출신까지 떡 적히면, 향촌에서 그 힘이란.. 2025. 12. 5.
새로운 거대 오리주둥이 공룡 종 발견 by Ryan Abramson, Mary Kate Maguire, Sara Kardish,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새로운 공룡 종이 발견되었다.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리하이 밸리 캠퍼스 생물학자를 포함한 국제 연구팀은 7천 5백만 년 전 다른 공룡으로 분류된 화석이 실제로는 거대 오리주둥이 공룡duck-billed dinosaur 종임을 발견했다.뉴멕시코 자연사과학 박물관과 협력해 연구팀은 새로 발견된 종에 1916년 처음 발견된 지역을 기념하는 의미로 '아시셀사우루스 위마니Ahshiselsaurus wimani'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1년부터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리하이 밸리 캠퍼스 생물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 D. 에드워드 말린작Edward Malinzak과 연구팀은 뉴멕시코 자연사과학 박물관 게시.. 2025. 12. 5.
정약용이 남긴 막대한 저서에 우선하는 말 정약용은 그 저술의 질을 막론하고, 우선 다작가다. 평생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이라 저작의 양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그가 남긴 막대한 저술보다 훨씬 세태를 잘 반영한 말이 있으니바로 서울 떠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대략 조선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지점에전국 각지로 사족들이 이동한 정황이 많이 보인다. 그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임란의 와중, 혹은 그 이후에 크게 혼란에 빠진토지제도 때문에 그 공백을 노려 낙향들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씨족이라 해도 서울 근처에 남은 종족과 그 시절에 어떤 이유에서건 서울 근처를 떠나 지방으로 낙향해 뿌리 내린 종족. 이 두 종족의 흥망성쇠를 본다면, 낙향한 쪽이 크게 못 미친다고 하겠다. 대략 서울 근교, 넓게 보아 경기도 일.. 2025. 12. 5.
조선시대를 알고 싶다면 탈북자에게 물어라 조선시대 상황을 알고 싶다면탈북자에게 물어보는 편이 가장 빠르다. 과전법이 궁금한가? 북한의 배급제도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정약용의 여전제가 궁금한가? 북한의 집단농장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보면 된다. 과전법 붕괴이후 조선의 장터?북한의 장마당을 보면 된다. 조선의 부역을 알고 싶은가?북한의 공짜 공공노동을 보면 안다. 조선의 군역을 알고 싶은가?북한의 병역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조선의 시스템 그대로다. 북한이 저런 엉망인 시스템으로도 지금 수십 년을 버티고 있듯이조선도 그렇게 수백년을 갔다.조선을 이해하는 데는 수백 권 책을 보는 것보다북한의 운영체제를 보는 것이 이해에 더 빠르다. 2025. 12. 5.
"더럽고 추악했다" 13살에 만난 고흐를 100년 뒤 회상한 여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그녀가 만난 때는 13살 때다. 100년 후 고흐를 둘러싼 각종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볼 때까지 살아남았다.100년 후, 그 글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는 "더럽고, 불쾌하고, 추악한" 사람이라고 했다.잔 루이즈 칼망Jeanne Louise Calment은 1875년 프랑스 아를Arles에서 태어났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를 완성하던 해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중, 꾀죄죄한 빨간 머리 화가가 연필과 캔버스를 사러 왔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였고, 그는 아를에서 살면서 그의 훗날 가장 유명한 걸작들을 만들고 있었다.세월이 흘러 잔이 114세가 되었을 때, 기자들이 이제는 전설적인 화.. 2025. 12. 5.
풍납토성 배경으로 뒤늦게 담아본 내 전신 사진 언제쯤인가?2001년 2월 졸저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를 발간한 직후 일일 것이다. 미디어오늘인지 기자협회보인지 아무튼 언론 관련 전문 매체에서 저 풍납토성 사태와 관련한 내 행적과 내 생각을 취재하고선 풍납토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있으면 달라 했다. 그 기사에 녹여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데 그렇게도 풍납토성에 미쳐 날뛴 나였지만, 그때까지 정작 내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저런 현장마다 더러 일부러 내가 들어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이후 그런 사진을 요청한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으니 그런 사진으로 써먹은 것이 없다. 앞 첨부 사진은 2008년 5월 7일,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한신대박물관이 재발굴하고, 그에서 다.. 202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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