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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사족의 기원[스핀오프] 도통道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앞에서 설명없이 쓴 도통이라는 것에 대해 스핀오프를 하나 써둔다. 도통이라는 것은 신유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맹자의 가장 끝 부분에 그 발상의 시초가 간략히 나온다.孟子曰:「由堯舜至於湯,五百有餘歲,若禹、皋陶,則見而知之;若湯,則聞而知之。由湯至於文王,五百有餘歲,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若文王,則聞而知之。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若孔子,則聞而知之。由孔子而來至於今,百有餘歲,去聖人之世,若此其未遠也;近聖人之居,若此其甚也,然而無有乎爾,則亦無有乎爾。」도통의 개념은 유학의 정수라 할 부분이 위로는 요순 때부터 차례로 성왕과 성인을 따라 전해지고 내려온다는 개념이다. 도통은 유학 자체와는 다르다. 유학자이면서도 도통과는 관련이 없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학자이지만 제대로 된 유가는 .. 2026. 5. 10.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Puyi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완룽Wanrong 푸이는 두 살에 황제가 되었다.그리고 어른이 되기 전에 모든 것을 잃었다.푸이는 1906년에 태어나 1908년에 즉위하여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하지만 1912년, 청나라는 막을 내렸다.신해혁명으로 제국 통치는 종식되었고, 중국 황제는 명목상 황제일 뿐 실권은 없는 어린아이가 되었다.1922년, 겨우 열여섯 살이었던 푸이는 완룽 황후와 결혼했다.그녀는 교육을 잘 받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녔으며, 유력한 만주족 가문 출신이었다.그들의 결혼식은 성대했지만, 허무했다.그들은 명목상의 황제와 황후였을 뿐, 이미 붕괴 직전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1924년, 그 환상마저 깨졌다.그들은 자금성에서 쫓겨났다.황좌도, 조정도, 제국도 없었다.세상은 이미 그들을 잊고 흘러가 버렸고, 두 젊은이는 그저 살아..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5] 듣보잡이었던 길재 이후의 도통 요즘은 사림을 설명하면서 정몽주, 길재에서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로 이어지는소위 사림의 도통에 대해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하니 우리는 이 양반들이 원래부터 대단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영남 사류들이 유종으로 들고 나온 정몽주, 출발은 별볼일 없었지만 훈구파의 시대에 이미 불사이군의 상징으로 추앙된 길재와는 달리 그 이후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등은 도통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양반들은처음 이 주장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조선의 중앙 정계의 사류들이 볼 때는듣보잡 아니면 평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길재까지야 어떻게 봐 줄 수 있다 해도그 아래 학맥은 영남의 사류들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지반신반의하거나 백안시하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은위로 정몽주, .. 2026. 5. 10.
앤 불린은 헨리 8세를 유혹한 무모한 십대? 혹은 성숙한 30대? 위키피디아 앤 불린Anne Boleyn 영문 표제 항목 기술을 보면 그녀의 출생 시기가 요상하게 다음과 같이 표기된다.c. 1501 or 15071501년 무렵 혹은 1507년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 두 가지가 대립한다 할 수 있거니와, 고대 인물도 아니요, 역사 기록이 풍부한 근대 초기 인물이요, 무엇보다 일국의 왕비를 역임했는데도 이런 현상은 왜 빚어질까? 1507년 출생은 오랫동안 많은 역사가가 반복했다.이 시점은 주로 1600년대 초 고대 유물 연구가 윌리엄 캠든William Camden의 주장에서 비롯한다.문제는 캠든이 앤이 죽은 지 한참 후에 글을 썼고, 볼린 가문에 대한 그의 정보 중 일부는 이미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현대 역사가들은 이제 대부분 1507년이라는 날짜를 부정한다.줄리아 폭..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4] 문묘종사를 공략하라 영남사족이 조선전기의 고립을 벗어나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된 데는문묘종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묘종사는 그야말로 정권의 승패를 결정하는 사족들의 트로피가 되어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선전기만 해도 문묘종사는 대단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을 때 고려왕조 당시 문묘에 종사된 사류는 딱 세명 있었으니, 설총, 최치원 그리고 안향 (안유)이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한 후 권근을 종사하자, 도은을 종사하자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전부 나가리 되고 중종 때까지도 추가로 문묘에 종사되는 이 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조선전..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3] 길재와 정몽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남 사족들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 고대국가가 성립한 이후 큰 변화 없이 향촌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어 조선 전기까지 내려왔을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에 성립한 고대국가가 삼국통일을 하고, 후삼국 쟁패기에 최후 승자인 기내 지역의 고려왕조에 요즘으로 친다면 우호적 합병 (friendly M&A)을 한,간단하다면 간단한 두 번의 정치적 계기에서 보여준 이 지역의 선택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고립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장기간에 걸쳐 향촌 지배체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조선 전기를 보자. 조선 전기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기전지역의 사족이 우위를 점하여 성립한 정권인데, 고.. 2026.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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