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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라 불만이었던 노상추 그러나 실상은..... 노상추일기는 유명하다.그리고 노상추가 문과로 나가지 못하고 무과급제자가 된 데 상당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렇게 대대로 사마시로 나간 자신이 무과로 간 데 불만이 많아 영남 지역은 차별받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영남 지역 사림들이 중앙 정계를 농단하던 15-16세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이 시점의 과거 급제자 등을 보면 특별히 영남지역이 차별받은 것도 아니고, 경상도 지역은 여전히 과거 급제자에 있어 전국 탑클라스였다. 그렇다면 노상추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가를 보면, 그의 비교대상이 다른 향촌 지역이 아니라 서울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서울에 거의 모든 부와 권력, 심지어는 문무과 급제자들까지 모여 있기 때문에 향촌의 사족들은 문과가 문제가 아니라 무과도 제대.. 2026. 5. 23.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2) 사무라이가 몰린 에도, 무관들이 운집한 한성 앞에서 하타모토 8만기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들 대다수는 에도시대 수도인 에도에 머물며 명분상 쇼군을 호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 숫자만 헤아려도 인구가 상당히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참근 교대로 지방과 수도를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사는 300 제후의 번저와 그 족속들이 에도에 살아가니이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도시민(조닌)까지 있으니 이를 다 합치면 백만 명이라는 인구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성이라고 달랐을 것인가. 한 번 따져 보자. 한성부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사족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문과 급제자 수나 진사 급제자 수를 보면 전체 40 프로 정도가 한성부 안에 살았으니 사실상 조선의 제대로 된 사족의 절대다수가.. 2026. 5. 23.
그 많은 경화사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나라 경화사족-. 흔히 서인 독재가 시작된 조선후기에나 등장한 것처럼 역사책에는 써 놨지만앞에서 필자가 쓴 대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도 근방의 사족들이 절대 우위를 점하지 않은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에나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조선시대 선비 집안 하면 지방의 사족들이 하도 떠드는 통에 마치 우리나라 역사는 이들 향촌 사족들이 주도하고 좌지우지한 것 같이 보이고, 심지어는 몇몇 좀 잘 나갔다는 집안들이 자기들은 국반이니 도반이니 하며 보학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들이 오가지만이런 분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는 그 전 시기 내내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바글 바글 모여 살았던 사족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주이씨가 가장 우위를 점한 것은.. 2026. 5. 23.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이야기 (1) 쇼군을 대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 일본사에는 하타모토 8만기(旗本八万騎)라는 말이 있다. 하타모토旗本란 에도시대 사무라이 계급 사다리에서 최정점에 있던 이들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쇼군과 직접적인 주종관계가 맺어진 이들이 바로 하타모토와 번주 (영주)들이고, 번주에 소속된 번 사무라이들은 쇼군이 볼 때는 배신陪臣이 된다. 따라서 쇼군은 원칙적으로는 하타모토나 번주 정도나 되야 대면이 가능하지 번주의 신하인 배신들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에도시대 소위 말하는 300제후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은 쇼군이 볼 때 모두 배신들이었기 때문에, 쇼군이 직접 상대 할 만한 가격의 사무라이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할 것이다. 하타모토는 쉽게 말해 쇼군에 직속된 무사들이라 할 수 있다. 에도시대 대부분의 사무라이가 번주에게 소속된 사무라이였던 데 반해, 하.. 2026. 5. 23.
꼴랑 45채 루마니아 선사 시대 마을에 350제곱미터 규모 초대형 건축물 프리드리히-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Friedrich–Alexander University Erlangen–Nurnberg 제공 프리드리히-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Friedrich–Alexander University Erlangen–Nurnberg (FAU) 연구진이 대규모 선사 시대 정착지의 조직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초대형 구조물로 알려진 특별한 유형의 건축물에 주목했다.루마니아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이러한 유형의 건축물이 소규모 정착지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초대형 구조물은 수천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뚜렷한 위계질서 없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루마니아 북동부 보토샤니 지역Botoșani.. 2026. 5. 23.
잉카 제국 통치 수 세기 전 페루의 혼인과 이주 네트워크 드러나 시드니 대학교 제공페루 태평양 연안을 따라 장거리 이주가 최소 800년 전, 잉카 제국이 등장하기 수 세기 전, 그리고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국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대 DNA(aDNA)를 고고학적 및 역사적 자료와 함께 분석한 이 연구는 잉카 제국 시대(서기 1400년~1532년) 이전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인구 이동이 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며, 잉카 이전 해안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이동하고 지역 및 광역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이 연구는 사람들이 페루 북부 해안에서 남쪽 친차 계곡Chincha Valley까지 700km 이상을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202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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