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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해서 동원하기 쉬운 서자들, 이들의 시각에서 북방 사민도 봐야 한다 이쯤에서 이제 굳이 복잡하게 글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간단히 정리하여 써 보겠다. 앞에서 쓴 향촌 중인, 조세 부담자 중 상위계층으로 평소에는 조세를 안 부담하던 이들, 향교에 등록하여 교생이라 칭하고는 과거 보는 데는 뜻도 없고 군역 면제나 받으려 한 자들, 양반들이 모여 이들을 "놀고 먹는 놈들"이라고 부른 이 사람들은 18세기 무렵 호적을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향촌에서나 양반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서자 출신이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서자의 숫자.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그 숫자는 절대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위에 서자가 있으면 그 아래로 후손들이 줄줄이 금고되는 나라라, 시골 바닥에 대대.. 2026. 5. 17.
말과 함께 묻힌 1,400년 된 아바르족 엘리트 전사 무덤 루마니아서 발굴 루마니아 서부 티미쇼아라 서부 우회도로Timișoara West Bypass 건설 예정지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조사 중 1,400년 된 아바르족 전사Avar warrior가 말과 함께 묻힌 상태로 발견되어, 중세 초기 중부 및 동유럽을 지배한 기마 엘리트들의 세계를 엿볼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서기 6세기에서 7세기로 추정되는 이 장례 유적은 기반 시설 공사에 앞서 진행된 사전 발굴 조사 중에 발견되었다.티미쇼아라 지역개발공사(DRDP Timișoara)에 따르면 이 매장지는 격동적인 이주, 전쟁, 그리고 정치적 변혁의 시기에 이 지역 전역에서 활동한 기마 전사 집단인 아바르족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전사와 말이 함께 묻혔다는 점이다.고고학자들은 또한 금, 은, 청동으로 .. 2026. 5. 16.
보낼 사람이 없는 북방 사민, 중앙에서는 인원 할당만! 필자가 장황하게 향촌 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우리나라 조선전기의 북방사민 때보낼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앞에서 우리나라 호적은 열명 중에 한두 명이 간신히 기재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써 놨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호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호적을 한 번 보면 대략 도대체 누구를 뽑아 사민에 보낼 것인가관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없 을리가 없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양반의 아래에는 노비가 다수 속해 있었고, 양반이건 노비건 간에 북방 사민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사민의 대상은 관에 속한 노비이거나, 아니면 농사 짓는 평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즉,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평민 역시 귀중한 세금 부담자로서, 이들을 보내버리면 우리 동네에 세금 낼 사람이 없다는 .. 2026. 5. 16.
왜 오른손잡이이가 압도적으로 많을까? 그 해답은? 옥스퍼드 대학교 제공 옥스퍼드 대학교 제공이는 인류 진화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모든 문화권에서 약 90%가 오른손잡이인데, 다른 어떤 영장류 종에서도 이처럼 높은 인구 수준의 선호도를 보이지 않는다.수십 년 동안 손잡이와 관련된 뇌, 유전자, 발달 과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왜 인류가 압도적으로 오른손잡이가 되었는지는 여전히 진화론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새로운 연구, 손, 뇌, 그리고 걷기의 연관성 밝혀내다옥스퍼드 대학교가 주도해 PLOS Biology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그 해답이 인류 진화의 두 가지 결정적인 특징, 즉 두 발로 걷는 것과 인간 뇌의 급격한 확장에 있다고 제시한다.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 및 박물관 민족학부 토마스 A. 퓌셸Thomas A. Püschel 박사와 레이첼 M. 허.. 2026. 5. 16.
땡땡이들이 만든 역사 조선의 역사는 노비 사역을 중심으로 한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는 잘 나가는 양반이 수백명 노비를 거느리고농장이나 다름 없는 땅에서 농작물을 뿌리고 수확하는지라 대규모 경작이 대부분이라 그 안에서 먹고 살 농산물이 대부분 생산되고 그러고 남는 건 선물의 형태로 있는 집끼리 서로 교환해 살았다. 그러다 보니 화폐가 돌 일도 없었고시장도 있어봐야 뻔했다. 있다 해도 사 올 물건도 없고, 팔 물건이 있어도 주변 사족들에게 선물로 주어 인심도 얻고나중에 그에 해당하는 선물로 보답 받는 것이 모르는 사람하고 돈으로 거래하는 것보다훨씬 남는 인간 관계인 것이다. 이런 상태가 대략 18세기 초반까지도 계속되어 동네마다 수백 노비를 거느리고 사역시키는 양반이 즐비한 것이 우리나라 사정이었다. 이런 판에 이 시절 우리나.. 2026. 5. 16.
"잔반"은 진짜 몰락한 양반인가? 북방 사민 이야기를 계속 쓴다. 우리는 "잔반"이라는 말을 어떤 때 쓰는가 하면, 19세기 말 가진 것도 하나 없이 양반 코스프레를 하는 평민과 차이도 없는 이들을 가리킬 때다. 예를 들어 19세기가 되면 향촌에 잔반이 급증하였다, 양반 호구가 70프로가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 할 때, 확실한 양반 계급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평민이랑 진배 없는 이들을 "잔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학모칭자", "양반모칭자"와 거의 비슷한 용도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19세기의 유학모칭자, 양반모칭자, 잔반은 그 시절 호적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집에 노비 딱 한 명을 데리고 있고, 주호는 유학이다. 친가 3대조와 외조부, 그리고 처가 3대조와 그 외조부도합 여덟 분이 호적에 기재되어 있으니 양반의 틀은 갖추었.. 202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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