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898

선불로 준 양반의 특권 조선시대에는 양반은 군역을 지지 않았다. 주의할 부분은 양반이 군역을 안 지는 것은 양반이라 특권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래는 조선은 양천제로서, 양반이 군역을 지지 않는 것은, 사족으로서 과거를 준비하고 급제 후에는 관직을 받아 봉직하니이것으로 군역은 퉁친다는 의미가 강했다. 특히 유학 등 과거 급제 전의 양반 직역자들이 군역을 빠지는 것은, 원래는 이들이 과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사족에게 배려하는 의미가 컸다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가 되면서, 선의를 반복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던가, 개꼬리가 몸통을 휘두른다고 원래는 사족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 사족의 권리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군대를 빠져야 양반인 것으로 되어 버린 것이 바로 조선후기의 상황인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시대 양반.. 2026. 8. 5.
가장 두려운 질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필자도 공부로 밥을 먹고 사는지라 써보면, 학계에서 나오는 질문은 사실 국내학회나 국외학회나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별로 두려울 게 없다. 뻔하기 때문이다. 논문을 투고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경우 논문을 투고하면 리뷰를 하는 사람이 제정신이라면그 리뷰해서 고치라고 할 내용의 80-90프로는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보낸다. 왜냐. 질문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주제로 죽도록 파는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면, 그 안에서 나오는 질문이란 뻔한 까닭이다. 재미있는 것은 학위심사를 할 때이다. 이때 우리나라는 워낙 판이 좁다 보니, 학위 심사위원을 심사 받는 이의 연구 주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연구를 하는 분들을 모실 때가 있는데, 정말 무서운 질문은 이런 양반들한테서 나온다. 이 사람들은 나름.. 2026. 8. 5.
잠삼의 변새시가 사기임을 증명하는 한국전쟁 한 장면 변방 황량한 전쟁터의 덧없음과 그 개고생을 절창으로 노래한 당시唐詩 문단의 기린아 잠삼岑參(715∼770)이 개척했다는 이른바 변새시邊塞詩가 실은 개사기임을 내가 계속 주장하거니와 덧붙여 농민시 또한 그 부류에 속하니, 그러면서 내가 이르기를 농민이 언제 시를 쓰냐 물었거니와농촌 펜션 운영하는 사람이나 가능할 것이며(것도 제대로 운영하는 사람이 언제 시를 쓴단 말인가?) 진짜 농부가 무슨 시를 쓸 시간이 있단 말인가 따졌으니 저 한 장 사진으로 변새시가 개사기임은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국사편찬위원회가 소개하는 난로를 쬐는 미군 병사라는데, 상술하기를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제2사단 소속 병사들이 야외용 난로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고 있다. 한국에 처음 온 대부분의 외국군 병사들은 한국의 혹독한 겨울날씨를 특.. 2026. 8. 5.
한국고고학은 꿈도 꾸지 못할 홍산문화의 최첨단 우하량 유적 박물관[신화통신] 이건 뭐 상전벽해라, 옛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흔적도 몰라보리라. 홍산문화는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역사고고 프로젝트 '고고중국' 그 핵심이다. 그네들 구미에 맞는 유적으로 이만한 데가 있을까?더구나 이전에는 동북 지방에서 따로 논다 생각해서 여간 곤혹스러움을 주지 않은 이곳이 그 말기가 되면서 태행 산맥을 넘어 하북성 북쪽으로까지 치고 들어왔다는데?비로소 중원과 만났잖아? 저런 현장박물관은 한국고고학은 꿈도 꾸지 못한다. 돈이 없어서? 천만에!고고학도들 때문이다. 저런 현장 박물관은 국가유산청 심의만 올라가면 각종 이유 달라 불허 보류가 떨어진다. 그러면서 왈 그 근처 빈터에다 세우라 한다. 그렇게 하세월이다. 한두 번에 된다 안 된다 결정해주어도 될 일을 걸핏하면 불허하고 걸핏하면 보류한다... 2026. 8. 5.
임란 당시 의병은 원래 관군이어야 하는 사람들 임란 당시 의병이라는 것이의병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는 안 나가도 되지만 대의 명분상 참전한다는 뜻이 있는지라, 그런데 과연 임란 당시 의병이 문자그대로 의병이 맞는 것일까일본의 경우를 보면 땅을 한 조각이라도 받으면반드시 전쟁상황이 되면 수하를 끌고, 혹은 자기 한 몸이라도 무장하고 참전해야 했다. 땅이란 게 전시 참전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서양 중세도 그렇다. 분봉하고 땅을 받는 대신에전시에 참전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는 호적과 군역이 묘하게 되어 있어, 양반은 군역에서 제외되고, 노비는 양반 수하에 있다 하여, 개인 재산이라 해서 또 제외하고 보니, 남은건 평민인 농민들밖에 없고재수 없이 걸린 하층 양반 찌끄러기들만 정부의 정책이 좀 빡세지만잡혀서 군역을 지는 판.. 2026. 8. 5.
임진왜란 - 의병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학계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이게 정말 궁금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은 도대체 어떤 구조였을까? 일견해서는 구한말 의병처럼 국권 상실의 위기에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임란 당시 조선사회는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노비인데,노비하고 양반이 같이 들고 일어나 연대해서 의병을 만들어 싸웠겠는가? 일본도 전국 시대 내내 그렇게 싸움이 있어도 농민들은 무사들 싸움을 구경이나 할 뿐이었다는 것인데, 과연 노비들이 임란 때 왜병이 쳐들어왔다고 우리나라 구하자고 양반 모시고 같이 의병을 했을까? 국민국가라는 것이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사는 나라가 내 나라라는 의식이 있어야 하는 바, 임란 당시에는 그런 것이 가능한 사회.. 2026. 8. 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