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022 폼페이 최후의 날에도 의사는 수술도구를 챙겼다 폼페이 고고학 공원Pompeii Archaeological Park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피해 탈출하려다 사망한 희생자 중 한 명이 로마 의사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이 발견은 폼페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유적 중 하나인 '도망자들의 정원Garden of the Fugitives (Orto dei Fuggiaschi)' 발굴 작업 이후 60여 년 만에 이루어졌다.1961년, 아메데오 마이우리Amedeo Maiuri가 이끄는 발굴팀은 포르타 노체라Porta Nocera 인근에서 화산쇄설류pyroclastic cloud에 휩싸여 사망한 14명 유해를 석고 모형으로 복원했다. 최첨단 영상 진단 기술을 통해 희생자 중 한 명이 의료 도구로 추정되는 물품이 담긴 작은 가방을 소.. 2026. 5. 17. 의무려산 거란 황실 무덤 발굴 성과전 요녕성박물관서 개막 (大众日报, 2026-05-16 22:26) 랴오닝성 박물관에 따르면, "산해를 억누르다镇岳凝山海 - 의무려산 요나라 황릉 발굴품 전시회医巫闾山辽代帝陵考古成果展"가 5월 18일 개막한다.랴오닝성 박물관,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원, 금주시 문화여유국锦州市文化旅游局, 라디오텔레비전국广播电视局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의무려산 요나라 황릉에서 발굴된 200여 점 유물이 전시되며, 그중 90%는 최초 공개다.요나라는 거란족이 건국하여 200여 년 동안 중국 북부를 지배했다.요사辽史와 같은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의무려산医巫闾山에는 양국 황제让国皇帝 야율비耶律倍, 요 경종景宗 야율현耶律贤과 그의 황비인 예지황후睿智皇后 소탁萧绰이 묻힌 두 개 황릉皇陵(현릉显陵과 건릉乾陵)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2026. 5. 17. 또 눈알 뒤집어질 중국 최신 박물관, 호북성 석가하石家河 유적 박물관 내일 개관 천문天门 석가하 유지石家河遗址? 이건 또 무슨 개뼉다귀인데, 이를 전문으로 선전하기 위한 거대한 박물관이 또 문을 연단 말인가?자고 나면 바뀌는 데가 중국고고학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 할 정도로 정신없이 변해간다. 저 유적을 홍보하기 위한 천문 석가하 유지 박물관天门石家河遗址博物이라는 데가 내일 문을 연다는데, 그 규모가 또 으리으리하다. 아무튼 관련 소식을 살핀다.(极目新闻, 2026-05-17 16:00) 호북성 천문에는 5천 년이 넘는 선사시대 문명 유적인 석가하 유지石家河遗址가 있다.그 규모는 자금성 네 개에 맞먹을 정도다.70년이 넘는 발굴을 통해 수많은 국가 보물이 땅속에 묻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다.석가하 유적은 '중국 10대 고고학적 발견'과 '세계 고고학 포럼 10대 주요 현장 고고학적.. 2026. 5. 17. 미니어처 도기, 원반 모양 도기 나왔다고 동삼동 패총이 해양 제사 현장? 부산 영도구와 부산시립박물관이 영도구에 소재하는 이른바 '동삼동 패총' 조개무지를 판 모양이라, 그 성과라며 부산박물관이 보도자료를 통해 근자 공개했으니 골자를 추리자면 이번 조사를 통해 7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 미니어처 토기랑 원반형 토제품, 고래 뼈, 작살과 같은 유물을 수습했다가 하거니와 이를 토대 삼아 평하기를 "일본으로의 항해 출발지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의례 행위 흔적 확인"이라 했으니, 이 무슨 말인지? 저런 유물이 확인됐다 해서 저와 같은 확대해석이 가능한지, 혹은 기존 다른 기관 같은 지점 발굴성과를 토대 삼아 그렇다는 것인지, 당장은 아리숑숑하다.아무튼 상술하면 두 기관은 2024년 영도구청의 부산 동삼동 패총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계기로 지난해(2025년) 8월 이래 추진한 계획에 따.. 2026. 5. 17. 사생아가 멸망시킨 잉카제국, 그에서 유발하는 조선 북방 사민의 비밀 필자가 우리나라 사민 사업에서 하삼도의 서자가 많이 끼어 이주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세거지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이들이 뭐가 아쉬어 배타고 나가고, 오랑캐들 사는 북방으로 가겠는가. 일본도 북해도 개척은 메이지유신 단계에서 패퇴한 구 막부측 번의 번사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북해도로 이주하여 사선에서 발악하며 개척한 것이니,세계 어느 나라건 다 비슷했다 할 것이다. 북해도에 가면 다테시伊達市라는 곳이 있는데,이 다테가 바로 센다이번仙台藩을 세운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할 때 그 다테이다. 센다이번의 영주 성을 딴 도시가 북해도에 들어선 것은 이 센다이번이 메이지유신 때 천황군에 맞서 싸우다가 절단이 나버려서그 번사들이 갈 곳이 없어 북해도로 집단.. 2026. 5. 17. 일단 북방으로 강제 차출한 사람들, 그 이후는? 북방 사민은 흔히 세종대의 사건으로만 보지만실제로는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 중앙의 관심이 쏟은 국가 프로젝트라북방에 여진족이 준동하거나 아니면 전염병이 도는 등북방을 혼란에 빠뜨릴 일이 벌어지면 중앙의 비상한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범상하게 넘기는 것이 있으니, 왜 윤관 때는 실패한 사민 사업이 세종 때는 성공했느냐는 것이다. 필자도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는 해답을 낼 만한 역량이 되지 않지만 북방 사민이라는 게 그냥 사업을 벌인다고 성공하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사민 사업이 정말 대단한 것이 두만강 압록강 선까지 진행된 것이 15세기였는데, 같은 위도에서 일본이 열도에서 사민이 진행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나 되어서의 일로, 북해도 개척이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본격화했다는.. 2026. 5. 17. 이전 1 2 3 4 ··· 400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