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182 개털렸다는 비엔나 박물관, 그 직전을 목격한 어느 지자체 학예사 이야기 우리 땅 양상군자님들도 이젠 국제화 시대라 국경이 없다!따라서 기왕 털려거든 박물관 미술관을 털라!한국에서는 털어봐야 돈도 안 되니 유럽 미국으로 가라!기왕이면 루브르나 바티칸쯤을 털어야지 않겠는가?그래야 후세에 이름이라도 남기지, 어디 먹을 게 있다고 우리네 국립박물관?털어봐야 돈도 안 된다.신라 황금 유물? 녹여 봐야 몇 돈 나오지도 않는다.괜히 그 몇 돈 안 되는 거 털어 인생 조질일 있는가? 유럽으로 가라!그쪽 방어 수준이 빈집털이 수준이라, 망치 하나 들고 들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루브르가 이거 털려 개망신 당했지만, 이후에도 그에 격발한 양상군자님들 활약이 그야말로 눈이 부셔서스페인 어느 고고학 박물관 홀라당 털었는가 하면, 그제는 비엔나 박물관에 표 끊고 유유히 들어가 망치 하나로 두들겨.. 2026. 8. 31.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4) 황남대총 자작나무 껍띠는 왜 중요한가? 이 자작나무는 한국문화사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라, 무엇보다 그 다기능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개중에서도 제지발달사에서 대서특필하고 호외로 발행해서 현창해야 할 사건이다.자작나무는 시대를 통괄하고 그것이 자생하는 문화권에서는 거개 다 저 종이 대용 기능이 있거니와, 불경만 해도 그것이 동아시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고산지대를 통과하면서 자작나무 껍떼기 종이에다가 기록하는 시대가 있었으니, 그 실물 자료가 근자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일도 있다.혹자는 한반도에서 그 자생지가 함경도 일대임을 들어, 나아가 신라가 그것을 저처럼 활용하는 문화기반이 돌출이라 생각하기 십상인 모양이라, 이는 그네가 고고학적 검토를 충분히 행하지 못한 까닭이지, 본래 자작나무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신라는 내물왕 무렵 동해안을.. 2026. 8. 31. 산업혁명기의 불행한 인생 아래 산업혁명기 19세기 바젤 여성의 손 뼈 분석에 총평한다. 산업혁명기 인생의 비참한 삶은 유럽사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우선 산업혁명 전야, 토마스 모어는 영국 엔클로저 운동이 빚어낸 참상을 보고,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고 일갈하였다. 산업혁명 전야, 그 이전 수천년 동안 농지였던 곳에 담장을 치고 보다 짭잘한 이윤을 내는 양을 키우면서, 중세 내내 토지에 붙어 연명하던 농민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게 되었으니 이를 엔클로저 운동이라 한다. 필자는 예전, 영국 학회에 초대받아 런던에서 학회장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창밖에 펼쳐지는 영국 시골의 정경을 보고 비로소 엔클로저 운동이 만들어 낸 그 곳 농촌의 모습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었다. 아무튼 그 이전 수백년을 토지에 결박된 채 농노의 모습으로 연명하던 .. 2026. 8. 31. [천마도 장니로 가는 길] (spinoff3) 신라 백화수피 이해를 위한 몇 가지 전제 천마도 장니 백화수피白樺樹皮, 그것이 자작나무임을 확정 혹은 추정하는데 결딴하는 다음과 같은 전제 혹은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그 자생지는 한반도에서는 함경도 지방이라는 사실둘째, 그 함경도는 고구려가 제대로 진출한 적이 없다는 사실 셋째, 그 함경도는 시종일관 말갈 혹은 읍루 혹은 그렇게 통칭하는 북방계 민족들이 점거했다는 사실넷째, 그러한 땅을 신라가 시종 일관해서 점유했다는 사실 이 문제들을 나는 시종일관 강조했거니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신라가 저 함경도 일대 동해안 지방을 진출하고 장악한 시점이 중요하거니와 신라는 적어도 내물왕 무렵에는 함흥평야까지 진출했으며, 따라서 진흥왕에 의한 북방 영토 개척은 개소리이며 나아가 진흥왕 이후에 그 영토를 상실했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통일기에.. 2026. 8. 31. 남경 대보은사 자리를 꿰차고 나온 북송 시대 아육왕탑 북송北宋시대 유금보탑鎏金宝塔당시 장인들은 무엇을 사용하여 이 "가보급 보물"을 만들었을까?금박 탑[鎏金宝塔]에서 답을 찾아본다. 이 눈부신 황금빛 아육왕탑阿育王塔은 아육왕阿育王이 세웠다는 탑을 모방했다는 뜻에서 이리 부른다.아육왕阿育王은 인도 역사에서 공작 왕조孔雀王朝[마우리아 왕조] 제3대 군왕으로 아쇼카왕이다.이 이름으로 지은 탑은 모두 아육왕탑이라 한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을 당시, 아육왕탑은 마치 찐빵처럼 뒤집힌 그릇 모양[복발覆钵], 곧 만두馒头 모양이었다고 전한다.[이때 만두는 둥근 만두를 말한다.] 이후 중국적인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그 형태는 점차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진화했다. 2008년, 칠보아육왕탑七宝阿育王塔 하나가남경南京 대보은사大报恩寺가 있던 터에서 발견되었다... 2026. 8. 31. 소년 노동의 연구 아래 소년 노동의 연구에 대해 부연한다. 논문 전체의 기조를 보면 먼저 출토인골에서 사람 나이를 추정한 후, 신체 각부위에서 과도한 노동에 의해 유발된 손상이나 변형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연령 추정은 전통적으로 치아, 골반뼈,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유치를 확인하거나아니면 손목뼈 등의 방사선 사진 등으로 추정 가능하다. 따라서 연령 추정은 현재 통용되는 인류학적 기법에 따라 비교적 정확히 수행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이 논문에서 보이는 사진 중에는 노인의 것이라 이야기 해도 좋을 정도로 변형이 심하게 진행된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피장자의 척추뼈의 변형된 모습인데, 이렇게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에 마모가 심하거나, 작은 뼈 돌기가 자라거나 (bony spur),혹은 척추.. 2026. 8. 31. 이전 1 2 3 4 ··· 419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