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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시사"는 미시사가 아니다 미시사가 아니라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지금까지 너무 몰랐기 때문에 이제야 해제를 제대로 붙이고 원전 사료를 밑바닥까지 훑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옳다. 예를 들어 일기 사료를 가지고 쓴 논문을 미시사라고 부르는 경우를 보는데 그렇게 친다면 일기 사료를 대거 차용하여 중세사를 구성하고 있는 일본사는 도대체 언제부터 미시사를 했다는 소리겠는가? 정확히는 미시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된 사학의 본령에 접어 들고 있다고 보는게 옳겠다. 2023. 2. 14.
불교가 살아가는 초대형 이벤트 불사佛事, 사리 영이기와 관세음 응험기가 결합한 1313~14년 고려 개경 국청사 불상 봉안기 아래 비교적 긴 글은 조선 초 사가정 서거정이 편집 주간을 맡아 완성한 거질 한국문학총서 동문선東文選 권 제68 기記가 저록한 민지閔漬(1248~1326)의 국청사 금당주불 석가여래 사리영이기 [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 라는 글 전문이라, 하나하나 음미해서 봐야 한다. 불교문학에서는 매우 흔한 사리영이기舍利靈異記란 간단히 말해 부처님 사리를 둘러싼 신이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본문에서 음미하면 드러나겠지만, 이는 역시 불교문학에서는 흔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이기도 하다. 관세음응험기란 관세음보살, 약칭 관음보살이 선사하는 신이한 행적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으로, 가장 보편적인 기술은 없던 사리가 각중에 느닷없이 나타났다거나, 혹은 사리 한두 개가 또 각중에 느닷없이 무한세포증식을 거듭해 여러 개로 .. 2023. 2. 14.
때 벗기러 동래온천 가신 이규보 선생 처음엔 쓸쓸하니 찬 샘물 솟나 싶더만 / 瑟瑟初疑瀉泠泉 도리어 자욱하니 저녁 연기 나는 듯 / 濛濛還似起昏煙 산 속에 들어앉아 섣달 보내는 고승은 / 高僧坐度山中臘 나물 삶고 차 달일 제 불 필요 없으리 / 煮菜嘗茶不火煎 물 솟는 곳에 유황 있다는 말 믿지 않고 / 未信硫黃浸水源 되레 양곡에서 아침 해가 목욕하던가 싶었지 / 却疑暘谷浴朝暾 다행히 외진 곳이라 양귀비가 오지 않았으니 / 地偏幸免楊妃汙 지나는 길손 잠깐 씻어본들 뭐 어떠하리 / 過客何妨暫試溫 온천溫泉 밑에 욕탕지(목욕할 수 있게 만든 둠벙)가 있으므로 목욕은 반드시 여기서 하게 된다. - 전집 권12, 고율시, "박인석朴仁碩 공과 동래東萊 욕탕지浴湯池로 떠나려 하면서 입으로 부르다 2수 同朴公將向東萊浴湯池口占 二首" 이규보가 경주 민란을 진.. 2023. 2. 14.
거시사와 미시사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멘트 중 하나는 역사학이 꾸준히 발전한 결과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발전하게 되엇다는 소리다. 미시사를 몰랐는데 거시사는 어떻게 했나? 그랬으면 그 지금까지 거시사라는 것은 다 구라였겠지... 요즘 보면 너무 미시사라는 용어를 남발하는 추세인 것 같은데, "실증사학"만큼이나 하나마나한 용어라는 생각을 한다. 사학이면 당연히 실증을 해야지 실증없이 어떻게 학문이 되나? 실증사학이 아니라면 그건 구라라는 소리겠지.. 지금까지 환자 보던 의사가 느닷없이 지금부터 의사들은 엑스레이를 진단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뜬금없이 들린다. 그럼 지금까지 환자는 어떻게 봤는고? 2023. 2. 14.
하다의장何多宜藏이 법사法師? 이런 법호法號는 단군조선 이래 있은 적이 없다 이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 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번 여러 자리에서 다뤘으니 개중 하나가 아래라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한 나의 중간 결론 1. 扶餘 扶蘇山城 東門址 出土 金銅光背 뒷면 銘文은 ‘何多宜藏治佛’이며, 그 意味는 “하다의장(何多宜藏)이라는 사람이 佛像을 造成했다”는 뜻이다. 이를 從來에는 ‘何多宜藏法師’라고 historylibrary.net 저번 주말 백마강 황포돛배 타고 싶다는 제주댁 모시고 사비를 행차한 길에 국립부여박물관에 들린 바, 저 유물이 빠질 수는 없으니 여전히 화려한 백제문화를 웅변하는 증언자로 여전히 상설전시실을 지키고 있는 바, 저에 대한 안내문이 이것이라 문제는 이것이라, 곧 판독이 여전히 '何多宜藏法師'라, 저.. 2023. 2. 13.
한국에서 학대당한 詩 우리나라 동문선東文選은 거질이다. 조선 전기 서거정이 그때까지 전해오는 명문장을 모아 꾸민 책으로 양과 질적인 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은 동문선 시를 읽고 감동했을까. 정서적으로 공감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라고 해서 말과 문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보다는 그 괴리감이 덜했을 터. 우리는 말과 문장이 따로 논 정도가 매우 심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한평생 국문시가 아니라 영시 창작에 몰두한 셈인데. 감동적인 영시가 일생에 몇 편 나올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소요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겠다. 20세기가 되어 비로소 국문시가 시 주류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이데올로기적 강제가 사람들 감정의 발산을 막았다. 80년대 이후 쓰여진 시 중 이데..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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