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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경주 꺽다리 이채경 회고록》(1) 문화재 발굴조사비, 특히 소규모 개발사업의 경우

by taeshik.kim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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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문화재 발굴비용 국가 부담과 옛 문화재보호법 제44조와 제74조의 개정과 제74조의 2 신설이야기

경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고, 신라천년의 수도였으며, 신라이후 다시 천년이 넘도록 지방의 웅부(雄府)였다.

경주시의 행정력이 미치는 대부분의 지역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분포되어 있고, 지하에는 매장문화재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문화재로 인한 갈등이 매우 큰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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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비용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한 당시 문화재보호법 제44조와 제74조는 개발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재보호법의 가장 악명높은 조항이었고 그에 따른 민원과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주시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된 매장문화재 발굴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도록 문화보호법 개정요구를 끊임없이 건의하고 요청하였으나 아무도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문제는 경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그 심각성이 체감되지 않았을 것이다.
  
1995년이 되었다. 이해는 경부고속철도 경주 통과노선과 경주 경마장 건설예정부지의 문화재 보존문제를 두고 새해 벽두부터 학계에서는 한국미술사학회를 비롯한 12개 학회가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시민들은 다시 이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경주의 문화재보존 문제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이런 격랑 속에서 내가 맡은 문화재보존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런 때에 다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비용 시행자부담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하였다.

지금까지의 정상적인 계통으로의 추진이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지역의 국회의원을 통하여 의원입법이라도 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직 경주시장 출신으로 당시 경주시의 재선 국회의원이었던 황윤기 의원을 찾아가서 그간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관련 모든 자료를 제공하면서 이 문제는 우리 경주시민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제도화시키지 못했다고 하면서 국회에서 의원입법이라도 해서 반드시 해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고 황의원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대답하였다.

황 의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시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을 설득하고 재정경제부(현재의 기획재정부)와 비용문제를 협의 하였으나 절대반대의 장벽에 직면했다고 한다.

당시 재경부의 입장은 개발사업은 개발을 함으로서 그 개발이익을 남기기 마련인데 그에 따른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해마다 전국적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텐데 그만한 재정을 부담할 수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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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황 의원은 다시 재경부의 입장이 그렇다면 서민들이 평생 돈을 모아 내가 살 작은집 하나 짓는 것, 소규모 영세상인들이 작은 가게 하나 짓는 것 정도라도 해주자고 설득하고 그에 소요되는 비용은 국가재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권기금으로 마련하자고 하여 마침내 협조를 얻어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해 정기국회에서 문화재보호법의 제44조와 제74조를 개정하고 제74조의2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재정을 확보하여 199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규모가 단독주택의 경우 대지면적 495㎡이하 건축연면적 165㎡이하, 소규모 영업용 건물의 경우 대지면적 330㎡이하, 건축연면적 264㎡이하의 건축물 신축에 대한 발굴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지금은 문화재보호법에서 매장문화재보호법이 별도로 분리되어 나갔으며, 규모도 당초보다 상당히 확대되었고 농어업시설물과 소규모 공업시설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의원입법으로 지역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황윤기 국회의원은 이듬해인 1996년 제15대 국회에 출마하여 3선에 도전하였으나 낙선하고 얼마 뒤 정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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