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특히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거개 그렇겠지만, 나 역시 과거의 오늘, memories라는 데를 훑어보게 되거니와, 오늘 살피니 꼭 4년 전인 2017년 7월 11일, 아래와 같은 포스팅이 뜬다.
《복귀합니다》
좀전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습니다.
심리불속행기각
간단히 말해 연합뉴스가 나 김태식을 부당해고했다는 겁니다.
많은 응원해주신 분들 힘입니다.
복귀시점은 지금 벌여놓은 일 정리가 끝나는 다음달 말쯤이 될 것입니다.
추신) 저 새끼 복귀하면 안된다 하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아득한 중생대 시절 같은데, 4년밖에 안됐다는 푸념과 더불어 벌써 4년? 이라는 상념이 머리끄덩이 붙잡고 쟁투한다.
이보다 다시 1년이 흐른 2018년 7월 11일을 보니, 나는 이태리 북부 볼차노 행차 중이었으니, 그곳에 미라 냉동보관 중인 외치 Ötzi 라는 5천년 전 중년 남자 시체 본다해서였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802680.html
하긴 그러고 보면 복직 판결이 저때요, 해직 당한 시점은 2015년 11월이니, 이건 벌써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니, 벌써 6년이 흐른 까닭이다.
이제 까마득한 시절이 되었겠지만, 이것이 과거의 오늘이 아닌 현재의 오늘일 수도 있음을 보이는 일이 있으니, 근자 우리 공장만 해도 이미 지난 3월에 경영진이 교체되어야 했지만, 여당은 야당, 야당은 여당 탓을 하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경영진이 교체되지 아니하고 계속 흘렀으니 그러다가 근자 변화 흐름이 있는 모양이라
지배구조가 정치권 입김 직격탄을 맞는 우리 공장 소유구조를 보면 대주주가 뉴스통신진흥회라, 그 이사진 구성이 먼저였으니, 그 이사회가 구성되지 아니하니 하염없이 경영진 출범이 늦어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 이사진에는 야당 추천 몫 1명이 있어 이번에야 겨우 야당 대표격인 제1 야당에서 그를 추천했으니, 보니 그 놈이 2015년 나를 찍어낸 당시 상무놈 조모라 하는 놈이라, 그 뻔뻔스런 그 놈이 뒤진 듯 숨어있다가 도로 기어나온단다.
이른바 박근혜 적폐청부를 청산한답시고 출범한 이 정부가 개판을 치는 바람에 저와 같은 '부활'의 토대를 마련한다.
권력은 선한 권력과 악한 권력이 없다. 내가 보고 겪은 모든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모든 권력은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에서 박근혜 정부건 문재인 정부건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부패하는 권력, 집권을 공고히 영속화하고자 하는 모든 권력은 언론을 지배하고자 한다. 혹자는 그것이 이른바 적폐정부 시절에 더 강고하다 하겠지만, 모든 권력은 언제나 언론을 주물하려 한다. 물론 그러한 언론 역시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는 하등 이론이 있을 수 없거니와, 그런 권력기관끼리 다툼에서 언제나 언론은 집권세력의 침탈도구로 전락한다.
다음 정권 향방이 어찌될 수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현 정권이 하도 개판을 치는 바람에 야당으로 간다는 관측이 우세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어디로 가건, 그런 권력은 언제나 비판에 노출되어야 한다.
내가 지지했다 해서 그 권력을 두둔하는 일이야말로 독재의 지름길이며, 그것이야말로 그 권력을 부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이다.
내가 그 정권을 지지할수록 그 정권을 향해서는 매서운 칼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자로서의 김태식을 일러 나는 언제나 적당히 정의로웠고 적당히 부패했다고 묘사하고는 하거니와,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고, 때로는 권력의 압력이 굴복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양보해서는 안 되는 굴복은 한 적은 거의 없어 그런대로는 떳떳하다.
그건 그렇고 4년 전 오늘 복직판결이 나로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는지를 적어두고자 한다. 1심과 2심을 모두 이긴 나는 당연히 복직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대법원까지 오른 마당에 좀 더 놀 시간이 있을 줄로 알았다. 하지만 저와 같이 판결남으로써 나는 준비없는 복귀를 맞이하고 말았다.
저 확정판결이 나기 하루 전, 회사에서 공식 통보가 왔으니, "사장님의 대승적인 결단에 따라 회사가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는 요지였으니, 그것을 통보하는 사람도, 나도 한참을 웃고 말았다.
한데 그 이튿날 내가 고용한 변호사한테 전화가 왔으니, "부장님, 판결이 나 버렸어요"하는 게 아닌가? 황당한 일의 연속이었다.
왜 황당했는가 하면 나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좀 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며, 그래서 저 무렵에 나는 그간 내가 벼르고 벼르다가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한 프랑스며 이태리며 그리스 세 군대로 한달이라는 장기간 여행을 계획해둔 상태였던 까닭이다.
그것을 출발하기 직전이었으니 자칫하면 그 여행을 취소할 수도 있는 판국이었으니, 이는 블라블라해서 한달 뒤 복직한다고 대략 합의해서 그리하기로 했다만, 막상 복직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그토록 싫을 수가 없었다.
애초 유럽 여행을 떠날 적에는 한달을 계획했지만, 저와 같은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더래면 나는 그 체류기간을 더 늘릴 생각이었다. 지중해를 뒤질 생각이었으니, 그리스 주요 섬들을 비롯해 시칠리아 튀니지 등지를 거쳐 프랑스 남부로 상륙해 마르세이유와 리옹을 거쳐 파리로 곧장 북상하거나, 바르셀로나로 넘어가 그쪽에서 몇 군데 둘러보고는 파리로 가서는 복귀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떠나기 전에는 막연하기는 했지만, 막상 가서 둘러보니, 이때가 아니면 이런 기회가 엎을성 싶어 그런 마음이 더 굴뚝 같이 일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332
복직하고, 문화부장이 되어 1년이 흐른 뒤에 다시금 내가 유럽으로 날아 볼차노를 향한 까닭이 그때 풀지 못한 욕심이었으니, 이때는 이미 기껏 길어봐야 나한테 허여된 휴가는 1주일 남짓이 전부였으니, 이건 내가 직업을 가지는 한 그리되고 말 것이다. 어차피 요새야 이러니저러니 팬데믹 국면이라 다 말짱 달아나고는 말았지만
암튼 저 해직을 계기로 촉발한 인생 하반기 계획이 그리 철저할 수는 없겠고, 더구나 돌발변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저때 내가 세운 계획의 얼개는 대강 섰다 할 수 있겠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내가 건강해야 하고, 가족이 무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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