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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고향서 쫓겨난 예수, 불알친구는 대빵이 될 수가 없는 법

by taeshik.kim 202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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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dignity는 신비神秘와 미지未知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내가 저 친구한테 군림하려면 저 친구는 나를 잘 몰라야 한다.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저 친구는 몰라야 한다. 반면 군주는 자기가 부리는 사람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뚤어야 한다. 


일전에 나는 이리 썼다. 이를 유감없이 증언하는 인물이 실은 한 제국을 일으킨 유방과 기독교라는 제국을 일으킨 예수인데, 전자는 집권 이후 그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을 싸그리 죽여버림으로써 비밀을 유지하려 한 반면, 용한 무당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후자는 고향에서도 신이함을 행하려 했다가 통하지 않으니 쫓겨나고 말았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언제나 아기 예수상에는 아버지가 없다. 그 없애버린 생물학적인 아버지 자리에다가 성령이라는 하늘을 등치한다.



오늘은 오야붕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처절한 보기로 예수를 들기로 한다. 고향 나사렛에서 평범한 목수 아들로 살아가던 예수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 해서 출향했다가 대성공을 거두어 금의환향하려 한다. 내가 이 정도로 대도시 나가서 성공했으니, 고향에서도 그런 대로 대접을 받을 줄 알고 귀향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품은 그에게 기다린 것은 배척뿐이었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 얘기가 여러 군데 나오는 것으로 그에서 받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라 곳곳에 그 상흔을 적기함으로써, 후세에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한테는 지남철이 되고자 했으니,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모조리 이 얘기가 나온다. 인용문은 개역개정판이며, 영문은 킹제임스 버전이다.   


언제나 아기 예수상에는 아버지가 없다. 그 없애버린 생물학적인 아버지 자리에다가 성령이라는 하늘을 등치한다.



먼저 마태복음이니, 이에서는 그의 고향을 구체로 적기 하지 아니하고 '고향'이라고만 하니, 이는 아마도 이리 적어도 그 앞에다가 고향 얘기를 잔뜩 한 까닭에 이리 처리했으리라 본다.  


(마 13: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곳을 떠나서

(마 13: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 13: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마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 13: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53 And it came to pass, that when Jesus had finished these parables, he departed thence.

54 And when he was come into his own country, he taught them in their synagogue, insomuch that they were astonished, and said, Whence hath this man this wisdom, and these mighty works?

55 Is not this the carpenter's son? is not his mother called Mary? and his brethren, James, and Joses, and Simon, and Judas?

56 And his sisters, are they not all with us? Whence then hath this man all these things?

57 And they were offended in him. But Jesus said unto them, A prophet is not without honour, save in his own country, and in his own house.

58 And he did not many mighty works there because of their unbelief.


다음 누가복음이니, 이에서는 그 고향을 나사렛이라 적기한다. 예서도 예수가 고향에서 폼 좀 잡으려 했다가 망신을 당한 일을 증언한다.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눅 4: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14 And Jesus returned in the power of the Spirit into Galilee: and there went out a fame of him through all the region round about.

15 And he taught in their synagogues, being glorified of all.

16 And he came to Nazareth, where he had been brought up: and, as his custom was, he went in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day, and stood up for to read...

24 And he said, Verily I say unto you,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country.


다음 요한복음이니, 예서 주목할 점은 고향에서 쪽을 당해 쫓겨났는데, 갈릴리에서는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는 대비다. 


(요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 4: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43) ○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요 4: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3 And he must needs go through Samaria.

4 Then cometh he to a city of Samaria, which is called Sychar, near to the parcel of ground that Jacob gave to his son Joseph....

43 Now after two days he departed thence, and went into Galilee.

44 For Jesus himself testified, that a prophet hath no honour in his own country.

45 Then when he was come into Galilee, the Galilaeans received him, having seen all the things that he did at Jerusalem at the feast: for they also went unto the feast.



언제나 아기 예수상에는 아버지가 없다. 그 없애버린 생물학적인 아버지 자리에다가 성령이라는 하늘을 등치한다. 이쪽은 한국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모자가 아예 한복을 입는다. 하긴 아프리카에서는 아예 흑인으로 나타나며, 인디언 사회에서는 인디언이더라.


성경은 여러 모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성찰을 제공하거니와, 요는 뭔가? 이제 우리는 다시 저 첫 얘기로 돌아가야 한다. 


권위dignity는 신비神秘와 미지未知를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그 말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가 고향에서 선지자 혹은 그것을 넘어 야훼의 아들이라는 등식이 통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러함을 행하는 공동체에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몰라야 한다. 하지만 고향만은 달랐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가 어떤 친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니, 그에서 예수가 목수의 아들이요, 엄마가 마리아인 줄 다 알고 있었으니, 내가 그런 아버지 아들이 아니요 실제 아버지는 따로 있다는 그 주장은 어찌 믿는단 말인가?


마태복음은 선지자가 등신 취급받는 데로 한 곳을 더 들거니와, 그곳이 바로 집구석 방구석이다. 모든 남편은 마누라한테 얻어터지는 법이다. 이 점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니, 저런 증언이 정말로 예수 자신의 목소리라면, 예수는 지 엄마 아버지 형제자매들한테 넋 나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수는 멀쩡한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그 자리에다가 하늘을 등치하니, 예수가 천자天子라는 도식은 바로 이에서 만들어진다. 


생물학적 아버지 죽이기와 그를 통한 천자 만들기는 실은 예수는 물론이고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실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박혁거세가 그렇고, 김알지가 그러하며, 고주몽이 그러하다. 


유방만 해도, 한 제국을 이룩하고 황제로 즉위했을 그 당시에도 살아있었지만, 그 멀쩡한 아비를 상징으로써 죽여 버리니, 그 멀쩡한 생물학적 아버지 자리에다가 생뚱맞게도 뱀을 갖다 놓는다.  


결국 성공하려면 나를 너무 잘 아는 놈들은 처단해야 한다. 그런 놈들은 내 비밀, 무엇보다 치명적인 약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가 일단 성공한 다음에는 없어져 줘야 한다. 그래야 비밀은 유지되므로. 


믿음과 배려



자기집 근처에 맛집은 없는 법이다.

예수도 지 고향에선 철없는 한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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