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년 4월 29일
당쟁이라는 것이 있은 이래, 그 악영향이 견고하고 만연하기로 들자면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시비를 가리는 데서 출발하여 충신과 역적을 나누는 것으로 끝나고, 끝이 났다가는 다시 시작하여 지엽말단적인 것을 층층이 첩첩이 쌓아가니 결국에는 반드시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르러서야 그만두게 될 것이다. 명나라 말기에 당쟁의 폐해가 심각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786년 1월 16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이른바 당파의 구분이란 것은 도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비록 한 나라에 함께 살고 한 군주를 함께 섬기고 심지어 한 마을에 함께 살고 있지만 아득히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전혀 소식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당파의 사람이 쓴 글을 얻어 보면 마치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작품인 것처럼 보여 그 우열을 논할 수 없으며 몹시 새롭고 눈에 설다 여기게 된다. 이는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1786년 7월 17일
흑산도에서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주인들도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당론이 퍽 준엄하다. 이태중(李台重, 1694~1756) 공(公)은 옥당(玉堂: 홍문관)에 재직하다 이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 적이 있다. 그때 섬사람 하나가 마중을 나와 자기 집에서 대접하겠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은 홍계적(洪啓迪, 1680~1722) 공이 창건한 것입니다. 선생께선 노론이시니 이 집을 두고 다른 데로 가면 아니 되십니다."
그리하여 이 공(李公)은 흔쾌히 그 집에 들어가 살았다. 한편 이 무렵, 이 공과 사이가 좋았던 소론의 한 벼슬아치가 동
시에 귀양을 오게 되었다. 그는 이 공과 한집에 같이 살면서 귀양살이의 적막함을 서로 위로하고 싶어했고 이 공도 허락을 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노론의 명재상인 홍 공(洪公)께서 이 집을 창건하셨습니다. 선생께선 노론이시니 제가 감히 머물러 주십사 했지만, 소론을 어찌 이 집에 들일 수 있겠습니까? 소론은 비록 이 집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맞아 줄 집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공은 해로울 것 없다고 타일렀지만 집주인은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소론 벼슬아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더 함께 지내고 싶어져서 억지로 그 집에 들어갔다. 그러자 집주인은 곧장 이 공에게 말했다.
"선생께선 다른 집으로 옮기십시오."
왜 그러는지 묻자 집주인이 말했다.
"홍공께서 이 집을 세운 이래로 계속하여 노론이 살았지 한 번도 소론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지금 사세事勢가 급박하니 제가 장작 한 묶음을 가져와서 이 집을 깨끗이 태워 버리렵니다."
이 말에 그 소론 벼슬아치는 깜짝 놀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기로 했다. 거참! 아무래와 아무개가 이 섬사람을 본다면 참으로 부끄러워 죽을 거다.
1786년 윤 7월 12일
명明의 무리가 남의 무덤에 모여 음식을 늘어놓고 종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러대며 놀다가 어떤 무관武官에게 들켜 질책을 받았다. 알고 보니 모두 노론의 자제들이었기에 소론 당인들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비난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건대 노론의 행실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사람들을 감복시킬 수 있겠는가? (**명은 유만주가 교유한 인물이다.)
1786년 11월 21일
손바닥만 한 한 나라가 또 셋으로 다섯으로 분열되어 저쪽에는 저쪽의 문서가 있어 그것을 지키며 익히고 이쪽에는 이쪽의 문서가 있어 그것을 지키고 익히니, 그 시시하고 자질구레함이란 손가락 한마디 정도에 그칠뿐 아니다. 그런데도 또 그 안에서 영웅이니 썩어 빠진 선비니 일컫고 옳으니 그르니 따진다. 맑은 새벽에 생각하노라니 나도 모르게 조소가 나온다.
1786년 11월 27일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청나라에서는 만주족이 대대로 국권을 쥐고 있어 마치 주인과 같은데, 이는 우리나라의 노론에 견줄 수 있다. 한인漢人 중의 지식인도 높은 벼슬자리에 간혹 섞여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소론에 견줄 수 있다. 그리고 몽고인은 어리석고 둔하고 사나워서 우리나라의 남인에 견줄 수 있다. 이는 실로 노론을 욕하는 자의 말이지만, 그럴 듯하게 대응된다. (유만주 지음 김하라 편역 《일기를 쓰다2 흠영선집》 돌베게, 2015.7, 35~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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