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88 [마왕퇴 spinoff]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무령왕릉 만행 나는 작금 신동훈 교수님과 함께 세계 미라를 정리 중이라, 그 와중에 지금은 마왕퇴 미라에 집중하거니와 그것이 발굴된 때가 1972년이라, 그 직전 1971년 무령왕릉 발굴, 그리고 같은 1972년 일본 고송총高松塚 다카마쓰즈카 고분 발굴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거니와 이미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에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기적으로 출현한 무령왕릉을 하룻밤만에, 것도 거의 남기지 아니하고 쏵 걷어버린 김원룡 발굴에 다시금 분노가 치솟아 올라 뒷목이 뻐근하다. 이를 김원룡 스스로는 내 머리가 돌아서 그리했다 했지만, 그래서 사과 혹은 사죄를 했다 했지만 그런 사죄가 나온 시점이 90년대 들어와서야였고 그 이전에는 그런 의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시 우리 고고학 수준이 그것밖에..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9] 날이 갈수록 느는 실력 앞서 김단장께서 올리신 사가교 발굴에 대한 글이나 봉황산 발굴에 대한 글들에서 볼수 있듯이마왕퇴 이후에도 전국 초묘와 한묘의 발굴은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마왕퇴 정도로 잘 보존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지금도 마왕퇴는 전국 초묘와 한묘를 대표하는 거대한 발굴 보고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김단장께서 올리신 사진이다. 이 발굴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퇴 이후 여러 차례 비슷한 발굴을 거듭하면서 그 조사기법도 점점 정밀해지는 것을 웅변하는 것으로초기에는 사진에서도 마왕퇴 발굴 때 우왕좌왕하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찍혀 있는 듯 하지만 지금 이 사진에서는 이미 발굴 당시 고고학자들도 보호복을 착용하고 작업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 조사 때의 과..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8] 보존이냐 부검이냐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왕퇴 한묘에서 나온 미라는 보존하기로 결정이 되어 의과대학과의 협의하에 고정액 (방부액)에 담그어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완벽한 보존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시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외부로 부터 방부액을 침투시키는 방법은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아서 아주 아주 느리게 내부로 침투하기 때문에 외부가 과다하게 처리되었다 싶을 때에도 정작 내부 장기는 전혀 방부액이 침투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의학 등 분야에서 시신을 장기적으로 보관하여 검사해야 하는 경우에는냉장보관을 하거나 혈관으로 방부액을 흘려 보내어 방부처리를 한다. 이런 방법도 금방 사망한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고 이미 2천년 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7] 일본의 세 가지 반응 당시 일본의 반응을 보면, 지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서, 학계와 대중 모두 열광적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아사히 신문이 이러한 보도의 최전선에 있어 아사히주간에서는 중국에서 흘러나오는 소식과 사진을 받아 계속 속보를 냈고일본학계도 단순히 소식을 기다리는 수준을 넘어 마왕퇴 한묘의 실체에 대한 논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일본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일본이 마왕퇴 조사와 연구에 참여할 수 있을까. 이 제안은 중국측에 의해 거부되었다. 중국은 시종일관 마왕퇴 한묘를 중국인의 손으로 시작하여 끝내는 것이 국가적 체면과 사회주의 중국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마왕퇴 한묘를 외교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이 무덤 조사를 중국인의 손으로 제대로 끝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 것이..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6] 일본의 관심 마왕퇴 한묘가 발견되어 조사되던 무렵은 동서 냉전의 양상이 일대 전환기를 맞던 무렵으로 소위 말하는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과 미국이 냉전을 넘어선 교섭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데탕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일본으로 일본 외교가는 미국이 추진하는 외교 기조의 선을 넘지 않으려하되 물밑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중국 외교의 복원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은 중국이 팬더를 단순한 동물원 볼거리를 넘은 세계 외교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당시는 마왕퇴 한묘가 탁구와 함께 팬더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중국 지도부는 마침 발견된 마왕퇴 한묘를 대미, 대일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는데,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은 일본쪽의 반응이 미국보다는 훨씬 컸던 모양이다. 주은래는 냉전..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5]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미라 중국 쪽에서 보고된 미라 중 마왕퇴 미라를 비롯한 소위 전국 초묘에서 발견된 미라는 "살아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표현은 또 다른 중국 미라인 신강성 타림분지의 미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건조한 기후 탓에 완전히 말라버린 형태로 발견되므로 잘 보존된 상태라도 조직이 굳어 있어 나무토막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마왕퇴나 전국 초묘에서 발견되는 미라의 경우, 자주 나오는 표현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며 관절의 움직임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견된 미라 시신의 피부가 부드럽고 결체조직이 탄력성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 장기의 모습도 금방 사망한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탁월한 보존상태는 모든 전국 초묘나 서한묘.. 2025. 3. 16. 이전 1 2 3 4 ··· 1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