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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3162

해혼후묘 발굴팀장이 말하는 해혼후묘 발굴 이야기 문화유산 수호자 | 양쥔, 해혼후묘 발굴팀장: 흙덩이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澎湃新闻, 2026년 6월 13일 07:16) 한나라 해혼후묘海昏侯墓에서 발굴된 희귀 죽간들, 특히 18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제논어齐论语』와 완전한 서한 시경诗经 전집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양쥔杨军 발굴팀장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 "눈에 띄지 않는 흙덩이 하나, 만약 그때 부주의하게 제거했다면 생생하고 실재하는 유하刘贺의 모습, 그리고 문명을 담고 있는 이 귀중한 고전들이 모두 사라졌을 겁니다."팽배신문澎湃新闻의 예술평론艺术评论은 2026년 문화유산의 날 특집 '문화유산 수호자'에서 양쥔 팀장을 초청해 해혼후묘를 만나고 그곳에 매료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남창南昌의 감강赣江에서 서쪽으로, 그리고 북.. 2026. 6. 15.
고구려-말갈 오마주로서의 거란과 여진 앞 지도가 세계에서 통용하는 거란에 의한 요 제국 영역 최대 판도라, 저 거란이 요새 우리한테 부쩍 저 친숙한 존재가 된 까닭은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대하 드라마에 힘입는다. 저 거대 제국과 한 판 뜬 고려 왕조도 실은 제정신은 아니기는 하다. 다만 저 판도를 보면서 우리가 생각할 지점은 땅만 컸지 실상 빈땅 천지라는 사실이다. 요새야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땅덩이에 견주어 불모지가 너무 많다. 그렇다면 저 거란 영역도는 실상에 부합하는가?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동쪽이 문제다. 다른 쪽은 다 빼버리고 더 동쪽 문제에 집중해 실제 거란 영역도를 그리면 아래와 같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대략이라 봐주면 되겠다. 저 빗금친 부분은 거란 영역이 아니었다.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인가?바로 여진이다.. 2026. 6. 15.
동해, 고구려와 발해를 가르는 결정타 고구려와 발해는 완전히 다르다. 그 다름은 바로 동해안 문제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대목은 앞으로 상세히 논의하게 될 것이다.그 키워드는 말갈이다. 말갈을 모르니 헛소리가 난무했다.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니 하는 헛소리가 난무하게 된다.저 말갈은 그만큼 중요한 키워드다. 저 말갈이 신라시대 그네들이 직접 남긴 증언을 보면 읍루로 나타난다. 그러니 이 읍루, 혹은 말갈을 모르면 안 된다. 고구려 지배층과 발해 지배층은 dna가 달랐다.고구려는 동해 dna가 없었고 발해는 그 dna가 있었다. 2026. 6. 14.
알고도 개무시한 고구려 강역 동쪽 끝 "그 땅은 동쪽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를 지나니 [동서가] 2천리요, 남쪽은 백제와 인접하고 북쪽은 말갈靺鞨과 이웃하니 [남북이] 천여 리다."북주北周, 557년~581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마지막 북조北朝 왕조로, 선비족 우문씨宇文氏 왕조 북주北周(557~581)의 정사로 기획한 주서周書 중 이역열전異域列傳 중 고구려 열전 한 대목이라,이 주서는 백제열전까지만 있고 신라 열전이 없으니, 이는 신라와 직접 접촉이 없는 데서 비롯했다 보아야 할 듯하지만 이것도 설명이 좀 이상한 것이 분명히 저에서는 신라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각설하고 이를 포함한 중국 역대 정사 한반도 관련 열전을 번역하고 주석한 중국정사조선전은 저 항목에다 注하기를 "中國 正史 중 高句麗의 경역境域 표시에 있어서 삼.. 2026. 6. 14.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히는 말갈, 그 존재가 주는 묵중함 신라사에서 말갈은 아주 일찍이 등장하기 시작해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히는데, 그 접근 지점이 거의 예외없이 신라 북경 북쪽 근방, 그러니깐 태백산맥 이동 동해안 지역이며, 가장 핫한 지점이 지금의 삼척이나 강릉이다.삼국사기 신라본기 기준으로 저네는 벌써 지마니사금 14년(125) 봄 정월에 북쪽 경계를 대거 침입해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는 존재로 등장하거니와, 이 지점이 어디인지 확실치 아니하나 삼척 근방 일대였다.물론 이를 고대사학도들은 후대 사실의 가탁이라 하지만, 개소리다. 귀 기울일 필요없다. 신라는 저 시대에 이미 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이어 같은 해 가을 7월에도 내침하는데, 이때 저네가 대령大嶺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넘어왔다고 한다. 저 대령, 곧 큰 고개를 혹자는 대관령이라 .. 2026. 6. 13.
동부전선 이상없다. 서부전선이 문제다, 백제 구원 1만 명을 보낸 신라 광개토-장수왕 시대를 맞은 고구려가 백제를 향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신라 역시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 무렵 고구려는 이미 남한강 유역으로 깊숙히 소백산맥까지 치고 들어온 형국이라, 한반도 중남부 일대는 삼국이 국경을 대치하는 시대였다. 신라와 고구려는 크게 보아 양쪽에서 대치했다. 하나는 동부전선이고 다른 하나가 서부전선이었다. 지금의 강원도 삼척과 강릉을 중심으로 하는 동해안 전선이라, 고구려는 동해안에 직접 진출한 적은 없기에 이 지역 연고권이 있으며, 그쪽을 무대로 삼는 말갈[물길]을 부용하면서 그들을 앞세웠다. 삼국간 지형을 바꾼 475년 전쟁, 곧 고구려에 의한 백제 한성 정벌에서 우리는 흔히 신라의 움직임을 간과하는데, 이 전쟁은 신라도 휘말린 국제전쟁이었다. 미쳐 신라군이 손을 쓰기 전에 .. 2026.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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