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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555

1929 Joseon Exposition,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1929) Joseon Exposition The Joseon Government General organized the first Joseon Exposition in 1915 as a form of propaganda to show how well colonial administration had been performing. A second Exposition was held in 1929. Due to these two big events, Gyeongbokgung Palace has lost its dignity appearance as the main palace of the Joseon Dynasty.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의 식민통치 업적을 자랑하고 위세를 과시하고자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2020. 10. 21.
[역사학자로서의 남당 박창화] 《중앙사단》 논문의 경우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를 내가 도서출판 김영사를 통해 공간하기는 2002년 5월이다. 직후 절친한 형 박환무가 연락이 왔다. 일본 근대 천황제를 주된 연구분야로 삼는 서강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 유학파다. 그의 이야기인즉, 박창화가 논문을 공간한 것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진즉에 박창화를 역사학자로 보았으니,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는 그 시대 전형의 역사학자였다. 나아가 《화랑세기》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그의 유작들에는 분명히 강역과 관련된 논문도 있었고, 더불어 무엇보다 《요사遼史》지리지를 필사하기도 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에서 그가 학술지에 공간한 논문까지 있다니, 역사학도로서의 박창화는 이제 기정사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었다. 박환무에 의하면, 초기 .. 2020. 10. 21.
Cheomseongdae, observatory? altar? Cheomseongdae, built in the era of Queen Seondeok in Silla, has a lot of controversy over its function. It is regarded as an astronomical observatory, considering the record that it was a star-observing place, but to me it is an astrological altar. photo by seyun oh 2020. 10. 20.
Drastic Changes of the Han River The Han River, which runs through the central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especially the capital city of Seoul, has undergone drastic changes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Before the 1960s, there were several islands along the Han River that runs through Seoul, but since the 1970s, almost all of them have been lost in the development process whereas Yeouido Island has remained. Jamsildo, Je.. 2020. 10. 19.
역사학도로서의 박창화 남당 박창화....나는 그를 20세기 역사학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그는 화랑세기 필사자이기 이전에 역사학도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매몰되는 바람에 화랑세기 신빙론자들은 그를 역사학의 문외한으로 만들었고(왜냐하면 그래야 화랑세기처럼 위대한 역사서를 조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 위서론자들은 그를 천재역인 역사학자로 만들었다.(왜냐하면 그래야 화랑세기처럼 참으로 '교묘한' 역사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는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그리고 2003년 《역사비평》 투고 논문을 통해, 이 양쪽을 싸잡아 비난했다. 덕분에 그 전부터 웬수였던 위서론자들과는 여전히 웬수였지만, 그 전부터 우호적이었던 신빙론자들과도 갈라섰다. 내가 양쪽을 모두 비난한 이유는 간단했다. 화랑세기를 어떻.. 2020. 10. 19.
《간양록看羊錄》에서 만난 안행량安行梁 2004년 이래 지금 근 십년 만에 《간양록看羊錄》을 집어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왜적에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어 가던 중에 무안현務安縣 낙두落頭라는 곳에 머물던 강항姜沆(1567~1618)이 통역을 시켜 왜놈에게 했다는 다음과 같은 강항의 말이 보인다. "태안泰安의 안행량安行梁은 예전에는 난행량難行梁이라고 하여 해마다 배가 내려오다가 표류하거나 파선하므로 가기 어려운 곳이다. 지금은 이름을 안행량으로 좋게 고쳐 행여나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여기는 수로로서 참으로 천연의 요새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지원하러 나온 명장 명名·고顧 두 유격遊擊은 전함 만여 척을 거르니고 안행량의 위아래를 가로질러 벌써 유격선이 군산포에 닿았으며, 우리 통제사(이순신-인용자)는 또 전략상 후퇴하여 중국 군.. 2020. 10. 18.
위만조선 100년은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에 시달린 분 꽤 있다. 위만조선 중심지가 이른바 정통 학계에서는 지금의 평양 일대라고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위만조선시대를 증언하는 유적은 단언하거니와 단 한 기도 없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서너곳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반면 그 땅에 설치되었다는 이른바 낙랑시대 유적은 쏟아졌다. 혹자는 위만조선 역사가 100년밖에 되지 않는 점을 거론한다. 또 혹자는 고고학 발굴성과의 미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타당하지 않다. 발굴성과가 미미 미비해서 소위 낙랑시대 유적 유물은 쏟아졌다는 말인가? 위만조선 역사 100년을 거론하지만 이는 동시대 위만조선과 똑같은 길을 걸은 남월왕국과 대비할 때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다. 위만조선은 대략 기원전 200-190년대 무렵에 중국에서 도망한 위만이라는.. 2020. 10. 18.
클리쉐로 정착한 면신례첩免新禮帖 면신례免新禮 관련 자료 정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지인이 그와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다 준다. 이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강민경 선생이 찾아준 것으로,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이라, 그 내역은 이러하며 출전은 아래다. 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0100104601500000 면신례(免新禮) 문서 조선시대 신입 관원의 면신례(免新禮)에 관한 문서. 신입 관원 정양신(鄭暘臣)에 대한 면신례 문구가 기록됨. 오른쪽에 정양신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고, 왼쪽에 5개의 수결이 있음. www.emuseum.go.kr 그에 대한 안내는 이렇다. 면신례(免新禮) 문서 국립민속박물관 명칭 면신례(免新禮) 문서 다른명칭 정양신(鄭暘臣) 면신례 문서, 신참례(新參禮) 문서 국.. 2020. 10. 17.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과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 두 사서 한전韓傳에 대한 압도적 이해는 A다. 다시 말해 범엽范曄(398~ 445)이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을 지으면서 그 前 시대에 나온 진수陳壽(233~297)의 《삼국지三國志》 한전을 축약하고, 나아가 그러면서 《후한서後漢書》인 까닭에 후한 이후 삼국시대 이래 관련 기록은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까닭에 《후한서後漢書》 한전은 단순 축약 발췌본이라 해서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라 내가 아무리 따져봐도 B다. 시건방지기가 김태식 열배는 더한 범엽에겐 진수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존심 강한 범엽은 시종 타도 반고를 외쳤으며, 그를 제끼고 사마천과 어깨를 겨루고자 했다. 진수 삼국지는 역사서 자체로도 그렇고, 문장으로 봐도 어린애 장난 같다. 하도 날림으로 써서 같은 삼국지 내에서 .. 2020. 10. 17.
풍운아의 글씨 두 장 *** 이하 국립중앙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이다. 1. '풍운아'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글쎄, 사전에서의 뜻은 그렇지만, 실제로는 거칠고 굴곡진 인생을 산 이들을 가리켜 그렇게들 부르는 듯하다. 개화 바람이 불던 근대 한국엔 흥선대원군이나 김옥균처럼 유달리 그런 '풍운아'가 많았다. 이 글씨 주인 황철黃鐵(1864~1930)도 개중 하나라 할 만 하다. 2. 황철은 字가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라 했는데 주로 자를 호처럼 썼다. 서울 출생으로 부유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의 인생이 굽이치기 시작하기는 1882년, 집안이 소유한 광산에 사용할 독일제 채굴기계를 구입하려고 청에 건너가면서였다. 기계를 산 뒤에 그.. 2020. 10. 17.
면신례 免新禮 Ritual to get out of the newcomer 면신례 免新禮 고된 과거시험을 거친 신규관원, 주로 문과급제자들은 4관, 곧 예문관·성균관·교서관·승문원에 배속되었다. 신규관원을 신래新來라고 불렀는데 이 딱지를 떼는 최종 의식이 면신례이다. 면신免新이란 글자 그대로는 신참을 면한다는 뜻이다. 여러 부서의 면신례 중 예문관의 그것이 특히 악명 높았다. 50일이 지나도 면신되지 않으면 관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거나 따돌림을 당했다. 신규 관원은 근무부서 선배에게 인사를 다니고 명함을 돌려야 했는데 자주 문전박대 당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든 선배가 허락할 때까지 계속 돌아야했다. 명함을 돌렸으면 장미연薔薇宴·중일연中日宴·허참례許參禮·면신례에 이르기까지 각종 연회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했다. 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전답을 팔아 마련하기도 했다. 연회에서도 온갖.. 2020. 10. 16.
신출내기 공무원 임백현 신고식과 수습졸업기 임백현 면신첩 林百鉉免新帖 Myeonshincheop to Lim Baek-hyeon 새내기 관리 임백현의 신고식이 끝나고 선배가 작성해준 연신칩이다. 간단히 말해 공무원 수습기간이 지났음을 증명한 문건이다. 면신첩은 신참이 연신례免新禮를 통과했음을 증명한 인증서다. 공식문건은 아니기에 공식효력은 없으나 위력은 막강했다. 이런 문건은 써준 측에서 부본을 둘 필요는 없다. 당하는 쪽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걸 고이 간직했겠는가? 저리 당한 임백현은 나중에 신참이 들어왔을 때 이번엔 바뀐 처지로 후배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에서 자칭 선진先進이라 일컫는 기성 관료들은 신출내기 공무원 임백현을 신귀新鬼, 곧 '새로운 귀신'이라 부르면서, 이름을 거꾸로 해서 현백임鉉百林이라 했다. 이렇게 성과 이름을 뒤집어서 쓰는.. 2020. 10. 16.
龍과 dragon 누차 지적했듯이 용을 드래곤, 드래곤을 용으로 번역해서는 안된다는 단적이 보기다. 물론 안다. 관습이 굳어져 이젠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쯤은. 동아시아 룡은 水를 관장하는 귀신이다. 반면 양코베기 드래곤은 사악함의 대명사이면서 불을 뿜는다. 이 드래곤은 서양에서 퇴치 대상인 이유다. 물론 동아샤에서 일부 용도 나쁜 짓을 한다 해서 퇴치 대상이 되기도 하나, 압도적인 의미는 善神이다. 경복궁에서 출토한 조선후기 용 그림, 그리고 용 글자 도안 水자는 용이 물을 관장하는 신이기에 화재 방지라는 염원을 담았다. 양놈 드래곤 같으면 저래 할 수 있겠는가? 베오울프 봐라. 나쁜 드래곤은 때려죽어야 한다. 성서에서도 두세번 드래곤이 나오는데 나뿐 놈이다. 이거 누군가는 총대 메고 혁명해야 한다. 번역.. 2020. 10. 16.
출판문화 진작을 부르짖은 윤춘년尹春年 장성 독거노인 기호철 선생이 느닷없이 조선 최고 재상으로 영조 연간 홍계희를 드는 바람에 역사에 매몰되거나, 혹은 부당하게 매도되거나, 혹은 그 매도가 나름 역사성을 지닌다고 해도 다른 측면에서 조명할 부분은 없는가 라는 자문自問을 하게 되거니와, 그런 점에서 과거 내가 기사로 다룬 이로써, 윤춘년尹春年이라는 사람이 퍼뜩 떠올라 그와 관련해 내가 긁적인 기사 두어 편을 새삼 꺼내봤다. 이 윤춘년을 본격 조명하기 시작한 이는 지금은 성균관대 한문교육과(한문학과인가?)에 정착한 안대회 교수라, 당시만 해도 안 교수는 강사 신분이었다. 이후 영남대로 갔다가, 명지대로 옮겼으며, 다시 성균관대로 옮겨 지금 자리에 안착했다. 2001.01.26 11:54:37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우리나라에는 온갖 .. 2020. 10. 13.
작가 조정래는 왜 이영훈을 공격할까? 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 송고시간2020-10-12 14:12 이승우 기자 "이영훈은 신종 매국노이자 민족 반역자" www.yna.co.kr/view/AKR20201012096100005?section=society/all&site=hot_news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 | 연합뉴스조정래 "일본유학 다녀오면 친일파 돼…150만 친일파 단죄해야", 이승우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10-12 14:12)www.yna.co.kr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 선 조정래 작가가 친일파 얘기를 꺼냈는데, 전후맥락은 내가 보지 아니했으므로 짚기 곤란하나 단단히 억하심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작심하고 그 .. 2020. 10. 12.
딸기코로 元 공주한테 혐오감을 준 주열朱悅 *** 강민경 선생 글인데 업어왔다. 첫번째 그림 역시 강선생 작품 아닌가 한다. 《고려사》 권106, 주열朱悅 열전 주열은 외모가 추하고 코가 귤이 익어 터진 것 같았다. 제국공주齊國公主가 처음 왔을 때,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주열이 일어나 축수祝壽를 올리자 공주가 놀라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늙고 추한 귀신이 내 앞 가까이 오게 합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이 노인이 외모는 귀신같이 추하지만 마음은 물과 같이 맑다오.”라고 하니, 공주가 존경하고 중히 여겨 잔을 들어 다 마셨다. --- 흠, 익어 터진 귤이라...그러나 사람은 외모로만 따지면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 2020. 10. 12.
도굴과 발굴 그 사이, 무령왕릉의 Rheroric *** 아래는 정확한 시점은 기억하지 못하나, 2017년 여름쯤 한국전통문화연수원 강연록이다. 강연은 당연히 원고로 한 것이 아니라 준비한 ppt로 했다. 이 강연록은 증거를 남겨야 원고비를 지불한다 해서, 할 수 없이 긁적여 제출한 것이니, 별로 참조할 만한 것은 되진 못하나 기록 차원에서 전재해 둔다. 발굴과 도굴, 그 사이 700년 신비의 왕조, 그 출현을 알린 무령왕릉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장마가 초래한 축복 유사 이래 여느 해처럼 몬순 기후대에 속한 한반도에 1971년 여름 역시 장마철이었다. 매년 한반도를 물바다로 만든 장마는 대체로 문화유산 현장에는 재앙이었지만, 또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해에도 한편으로는 축복이기도 했다. 예수가 출생하기 직전인 기원전 18년에 태.. 2020. 10. 12.
대중고고학 문을 연 무령왕릉 고고학과 문화재를 관광과 착목한 경주관광개발계획 전주곡은 무령왕릉 발견 발굴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은 대히트였다. 하지만 놓친 게 있었다. 대중매체, 특히나 발굴과정을 생생히 담은 영상을 촬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두고두고 정권에는 한이 됐다. 무령왕릉 발굴단장 김원룡이 당시 문화부 장관 윤주영한테 불려가서 쿠사리 찐밥을 먹었다. 테레비 왜 안 불렀느냐? 이걸 이해해야만 이듬해 닻을 올린 경주관광개발계획을 이해한다. 무령왕릉 실패를 거울삼아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은 티비가 동원됐다. 그 발굴소식은 대한뉘우스를 타고 전국으로 전파됐다. 오늘 신라문화동인회 내 발표 중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2015. 10. 11) *** 이런 반성은 무령왕릉 발굴 직후 박정희 정부가 의욕으로 추진한 경주관광개발계획과 그 일.. 2020. 10. 12.
홍대용 화상畵像은 이렇게 발굴되고 이렇게 공개되었다 각종 사전에서 홍대용洪大容(1731~1783)을 검색하면 화상畵像 하나가 빠지지 않고 소개되거니와 영정조시대를 살다간 이 위대한 조선후기의 실학자라는 사람 모습이라며 동시대 북경에서 그를 만난 중국인이 그린 것이다. 예컨데 구글위키피디아에서 홍대용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거니와 저 사진만 따로 검출하면 다음이라 이것이 바로 홍대용이다. 연배로 보면 연암 박지원보다 6살이 많은 그는 이른바 연암학파라 일컫는 인물들과도 직접 교유도 적지 아니했으며 유럽에서 유래하는 최신 사상 소개에도 주력해 지전설을 비롯한 괄목할 만한 주장을 열성으로 소개한다. 저 담헌湛軒을 소개할 적에 빠지지 아니하는 저 화상畵像...1999년 내가 천하에 공포함으로써 알려진 자료다. 이걸 찾은 사람은 따로 있어 순천향대 중문과 박현규 교수.. 2020. 10. 11.
장서인을 가장 먼저 후벼파는 이유 원래는 장서인이 있던 자리다. 도난품은 가장 먼저 이 장서인을 면도날로 오려내야 한다. 소유권 다툼을 원천에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3. 10. 8) 2020. 10. 10.
1983년 아웅산테러의 현장 아웅산 묘지에 들렀다. 미얀마 건국의 공로자 아홉명을 기리는 기념물인데 아웅산만 별딱지를 붙였다. 이곳이 바로 1983년 10월9일 아웅산 폭파사건 현장이다. 묘지 입구 한켠에 기념관을 세웠다 한다. 이 기념관은 미얀마 정부에서 한국 대사관이 30년 임차한다 한다. 희생자 명단에 동아일보 사진부장도 있다. 우리 연합에서도 당시 최금영 선배가 현장에 있다가 구사일생 피투성이로 살아났는데 그 유품들인 카메라와 사진이 연합뉴스 본사 일층에 전시 중이다. 최선배는 내내 아웅산 후유증에 시달리다 타계했다. (2015. 9. 16) *** related article *** 1983년 10월 8일, 미얀마가 폭발했다1983년 10월 8일, 미얀마가 폭발했다[순간포착] 남북 분단사의 대참극…'아웅산 테러 사건' 송고.. 2020.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