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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520

신라시대 공무원 규모 19세기 조선후기를 살다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정리한 수필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12권에는 신라 관원官員의 숫자를 논한 글이 있으니 헌덕왕憲德王 3년(811)에 임금이 비로소 평의전平議殿에 나와서 정사를 들었다. 이때 나라의 관원들이 매달 여섯 번씩 참여하였는데, 문반文班이 710원員이고 무반武班이 540원이었다. 여섯 번 절을 한 다음 춤을 추면서 물러가다가 마루가 끝나는 계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걸어서 나갔다. 나라 사람들도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보면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新羅官數 憲德王三年。始御平議殿。聽政。國官月六參。文班七百十員。武班五百四十員。六拜。舞蹈而退。至堂級。乃步。國人卑者見尊者。亦如之。 저것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언뜻 찾지 못했다. 삼국사기 헌덕왕본기에서는 그 재위 3.. 2025. 2. 17.
마라토너로 순치된 조선인, 그 슬픈 자화상 도로가 없고 그런 까닭에 이용할 마뜩한 교통편도 없어 오로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전근대 조선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몸으로 때우기였으니, 이런 민족이 살아남고자 버둥치기 위해서는 죽어나사나 걷거나 달려야 했다. 이른바 줄행랑이 주특기일 수밖에 없으니 조선시대에 마라톤이 있었다면, 요새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독식하는 마라톤은 조선인이 독식했으리라 본다. 19세기를 살다간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찬술한 방대한 분류식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보면 이 이야기가 내가 하는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보인다. 그 경사편經史篇5 논사류論史類2 풍속風俗을 보면 아예 소제목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東人善走辨證說] 이라는 짧은 글 한 편이 있으니 .. 2025. 2. 17.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보유) 성현이 본 사금갑 지금까지 우리는 사금갑 이야기는 판본이 여러 개임을 봤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삼국유사가 유일본이 아님을 확인했다. 사금갑 이야기는 버전이 여러 개였다. 그 일환으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말한 사금갑 이야기가 독특함을 이야기했다. 그에서는 왕비와 그의 내연남 내전 분수승이 복주된 이유가 반란, 곧 소지왕을 시해하려 했기 때문임을 지적했다. 한데 내가 빠뜨린 또 하나의 사금갑 이야기가 있다. 그 이전 세대 사가정 서거정 뒤를 이어 성종~연산군 연간 조선 전기 문단의 총수로 군림한 성현成俔(1439~1504) 또한 사금갑 이야기를 남겼으니, 어떤 점에서 그가 말한 사금갑은 다른 사금갑 이야기와 만나며 갈라지는가? 그의 불후한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 권 제2에 보이는 한 토막이다. 신라왕[소지왕.. 2025. 2. 17.
사초史草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사초는 간단히 말해 실록을 편찬하는 원재료다. 그런 사초가 초래하는 각종 스캔들은 나라를 말아먹기도 하니, 근자 가장 대표 케이스가 박근혜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안종범 업무수첩이다. 알려지기로 전 57권에 달한다는 이 수첩은 청와대 재직시절 대통령 지시 사항 등을 메모한 것이다. 또 이런 사초류로 이번 계엄 탄핵 정국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인사들 메모가 등장하니, 진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이것이 바로 사초다. 이 사초는 공문서 성격을 지니기도 하지만, 안종범 수첩이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사적인 비망록 성격이 강해서, 조선시대에도 이걸 개인이 보관했다. 물론 공식으로 제출하는 문건은 따로 있었지만, 이건 세탁을 거친 검열문건이었다. 조선시대 이 사초로 나라를 흔든 사건으로 흔히 김일손에서 초래한 김종직 사건.. 2025. 2. 17.
남효온이 증언하는 어우동 스캔들 한 토막 할매가 된 지금도 곱디고움을 자랑하는 여배우 이보희는 이른바 리즈 시절 어우동이었다. 이제 어우동 이보희를 기억하는 세대도 서산 노을 저편으로 기울어져 가는 형국이라 이 어우동은 그 조선시대 사족, 그러니깐 어엿한 사대부 가문 여식으로 익히 알려졌듯이실존인물이며 당대를 섹스 스캔들로 밀어넣어 그에 걸려 패가망신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조선 전기를 살다간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성종년간에 엮은 이런저런 야담집 추강냉화秋江冷話에는 어우동과 관련한 논급이 있다.어우동은 생몰년이 1440~1480년으로 확인되니 남효온한테는 막내고모뻘이었다. 경자년에 사족士族의 딸 어우동於宇同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와 간통한 선비가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말이 생원 이승언李承彦에게 미쳐 그.. 2025. 2. 16.
풍수설을 돈독히 믿은 한산이씨, 그리고 그 사위 한음 이덕형 조선 중기를 살다간 인물로 이덕형李德泂이란 이가 있다. 예조판서와 판의금부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字가 원백遠伯이요, 호가 죽천竹泉이라, 그의 중국 사신행 견문록 죽천행록竹泉行錄이 2001년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1566년, 명종 21년에 태어나 1645년, 인조 23년에 사망했다. 저 시대 이덕형이라 하면 자칫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이덕형과 혼동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한자를 李德馨이라 써서, 李德泂이라는 죽천과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字를 명보明甫라 하며, 한음漢陰은 호다. 죽천 이덕형 보다는 다섯 해 먼저인 1561년, 명종 16년에 태어나 각종 고관대작은 다 해 먹었으니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선 1613년, 광해군 5년에 사망한다. 따라서 죽천 ..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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