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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인도의 회고 (3) : 인더스문명으로 가는 길 사진을 올리다 보니 필자가 인도에서 작업하는데 현지 고고학자들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음을 새삼 느낀다. 이 자리를 빌어 현지에서 필자를 지원해주고 도와준 많은 동료 학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필자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이 연구를 남김없이 학계에 정확히 보고하는 것일 터다. 남아 있는 작업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쳐 이 분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러면 계속 간다. 2012년의 인도-. Dholavira · 인도 370165 구자르트 인도 370165 구자르트 www.google.com 2023. 9. 23.
인도의 회고 (2): 델리에서 우리 연구실은 거의 단독으로 들어가 작업했기 때문에 2인 이상이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필자도 연구를 위해 들어갈때는 단독으로 들어가 작업했다. 사실 인도에서의 연구라고 해서 별로 다를 것은 없다. 현지에 도착한 우리 일행에게 지금까지 인도 측은 성심성의껏 최대한 편의를 거의 다 제공해 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혼자 들어갔으므로 현지 학자들과 어울려 지냈고 같이 이동했고 숙식을 함께했다. 그쪽 발굴단 일원이었으므로 인도에 일단 도착하면 거의 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2023. 9. 23.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3) 큰 갈등이 없던 두 학교, 당대 최고 의료스타 백인제는 의전 출신 앞에서 경성의전과 경성제대의 차이를 이야기했지만, 일제시대를 보면 이 두 학교 출신 사이에 그다지 큰 갈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보면, 의전과 제대는 교육기간과 학위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회로 진출하여 의사로 활동하는 단계에서는 양자간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성의전 졸업생 대부분은 개업을 택했고 지금과는 달리 소규모 개업의가 대부분이었던 상황을 보면, 사회로 진출한 후에는 서로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중대형병원만이 살아 남아 의사와 환자가 거대한 병원에서 서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경성의전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개업의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교수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백인제 선생이.. 2023. 9. 23.
인도의 회고 (1): 프롤로그 뭐 필자가 이제 다시 인도로 들어가 작업할 순간이 또 올지 모르겠다. 어쩄건 필자의 작업이 마무리 되어가는 지금, 인도에서의 세월을 사진으로 회고해 본다. 뭐 엄청나게 보이지만 필자와 한국의 연구진은 인도 고고학 발굴 현장의 비영속적 단기 방문이었고, 김용준 교수는 저때부터 최근까지 인도에서 학위과정을 밟았다. 발굴 작업은 장기체류하며 인도고고학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김용준 교수가 없었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밝혀둔다. 2023. 9. 23.
[연구업적] 인더스문명 유적 발굴보고서 영국 현지 출간 필자는 인더스 문명 전성기의 도시 유적인 라키가리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에 참여하였는데 이 유적에서는 인더스 문명 도시민의 공동묘지를 발굴하게 되었다. 우리 쪽에서는 김용준, 오창석, 홍종하, 우은진, 이원준, 서민, 이혜진 교수 등이 참여하였고 전체 연구 성과가 이번에 영국 Archaeopress사에서 보고서로 출간되었다. 인도측 전 데칸대 학장 신데 교수와 내가 책의 편집을 담당하였다. 고려대 김용준 교수가 부편집자이다. 우리 측 발굴 조사 참여자인 김용준, 오창석, 홍종하, 이원준, 서민, 우은진, 이혜진 교수 등은 모두 공저자로 참여하였다. 이 보고서에 꼬박 1년을 매달려 작업을 했다. 한국인 연구진으로서는 인더스문명에 대한 최초의 연구보고 아닐까? 국내에서 Archaeopress 사에 출판한 최초.. 2023. 9. 22.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2) 가깝고도 먼 당신 일제시대에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관계는 묘하다. 원래 경성제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경성의전은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한제국 의학교가 나라가 망한 후 총독부 의학강습소로 바뀌었고 이것이 1916년, 관립학교인 경성의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성의전은 기초의학 2년, 임상의학 2년으로 이러한 커리큘럼은 필자가 대학 다니던 80년대까지도 그대로 였다. (지금은 필자가 재학하던 때에 비해 임상의학 강의가 늘고 기초의학이 줄었다) 쉽게 말해 경성의전은 해방 후 예과 없이 본과만 있는 의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의전이라 연한이 대학 의학부에 비해 짧지만 전문 교육은 둘다 4년으로 동일했다. 당연히 일제시대에도 의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경성의전에는 조선바닥의 수재는 다 모여들었다. 이것이 1924년..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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