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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국립박물관 세계문화관 최근 국립박물관 3층의 세계문화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오래간만에 가서 그런지 이전과 차이가 눈에 띄게 다가왔다. 전반적으로 전시의 수준이 정말 많이 올라갔다는 생각이다. 자주 찾아볼 것 같다. 이전에는 3층은 거의 올라가지 않았는데. 박물관을 자주 찾는 문외한으로서 앞으로도 좋은 전시를 많이 기대한다. 2023. 9. 22.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 (1) 고졸과 대졸, 그 건너기 힘든 간극 작금의 육사 논란이 서울대병원-세브란스 병원의 뿌리찾기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쓴 바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경성의전-경성제대 이야기를 조금 써 볼까 한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두 학교는 해방후 국대안에 의해 합쳐져서 국립서울대 의대가 되었다. 서울대병원은 현재 기원을 제중원, 서울의대는 대한제국 의학교까지 올려 잡는데, 이 중 대한제국 의학교까지 이어지는 연혁은 경성제대 쪽에서는 소급이 안 되고, 경성의전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바로 경성의전--총독부 의학강습소--대한제국 의학교의 순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사이에 국체가 한번 바뀌고 (대한제국--일본총독부), 이름도 계속 바뀌었지만 대체로 대한제국 의학교에서 경성의전까지 이어지는 맥은 병원 쪽보다는 훨씬 뚜렷한 편인 것 같다. 최소한 병원처럼 대.. 2023. 9. 22.
현대사는 어떻게 과거를 역규정 하는가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인식하는 소위 "역사의 발전 법칙"들-. 그것은 전부 현대사가 과거를 역규정한 결과이다. 무슨소리인가? 유럽사를 보자. 유럽국가들이 근대이후 전세계를 서세동점-. 석권하면서, 유럽사가 세계사의 표준이 됐다. 거짓말 같은가? 경제사를 보자. 경제사의 소위 발전법칙-. 전부 유럽경제사를 표준으로 놓고 정식화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역사를 가진, 근대화에 실패한 국가들의 역사는 모두 이에 맞추어 재해석 되었다. 한국사와 일본사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본이 성공하면서, 일본은 제대로 발전한 역사의 표준이 되었고, 한국은 애초에 싹수 노란 역사의 예가 되었다. 왜 그럴까? "현대사"가 과거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사를 보자. 남한의 역사. 성공의 역사이.. 2023. 9. 21.
현대사는 왜 과거를 역규정하는가 현대사가 과거를 역규정하는 예를 써보면-. 한 40년 전, 80년대 때만 해도 한국사와 일본사 연구에서 한국의 식민사관 극복은 솔직히 백약이 무효였다. 왜냐. 한국이 개발도상국, 일본이 선진국으로 남아 있는 한 "뭔가 시원찮았으니까 그 모양이지"라는 결론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위로는 고조선 부터 아래로는 구한말까지, 한국사는 도매금으로 전부 매도되었고, 반대로 일본은 조몽시대부터 메이지시대까지, 있었건 없었건 금박으로 전부 치장되었다는 말이다. 그만큼 사건과 사건이 연쇄적으로 꼬리를 물고 서술되는 역사에서, 현대의 위상은 중요하다. 현대가 시원치 않으면 수천년 전 역사까지도 비하하는 눈길로 보게 되는 것이 역사이다. 한국이 그때부터 40년-. 먹고 살 만한 정도를 넘어 선진국 경계를.. 2023. 9. 21.
독립군 전투의 의미 최근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규모와 전과에 대해 설왕설래 하지만, 이 전투의 전과에 대한 이견은 사실 처음 일본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고 연변지역 조선족 역사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런 이견이 제시된 연원도 꽤 길다. 상당히 오래 전에 이미 제기되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봉오동 전투의 전과인 일본군 전사자가 한국측 주장에 의하면 157명, 일본측 주장으로는 1명, 그리고 청산리 전투의 경우 한국측 주장은 1200명, 일본측 주장으로는 11명의 일본군 전사자를 냈다고 하여 그 차이가 무척 큰데, 필자의 생각을 써 보면 사실 이 두 전투의 의미는 일본군이 몇 명 죽었느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보급도 없고 현지조달로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부대는 정규부대라기 보다 유격전을 펼칠 수 .. 2023. 9. 21.
진정한 식민사학 극복은? 필자가 학생 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위 "식민사학의 극복"이라는 것이 굉장한 화두였다. "임나일본부", "한사군", "고조선", "광개토왕비", 그리고 "조선의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극복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연구 논문들도 그런 방향으로 집필되었고, 신문은 항상 "식민사학이 극복되는 대단한 발견이 있었다"라던가, "일제식민사학은 해방이후 노력으로 극복되었다"던가 하는 기사가 끝도 없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의 식민사관을 규정하는 요소: 정체성, 타율성, 당파성 같은 것들은 역사학 연구에 의해 극복된 것이 아니라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이 선진국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모두 해결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성취하고, 문화적으로 존중받는 나라의 역사를 정체성, 타율성, 당파성이라..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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