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경성의전과 경성제대의 차이를 이야기했지만,
일제시대를 보면 이 두 학교 출신 사이에 그다지 큰 갈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보면, 의전과 제대는 교육기간과 학위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회로 진출하여 의사로 활동하는 단계에서는 양자간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성의전 졸업생 대부분은 개업을 택했고 지금과는 달리 소규모 개업의가 대부분이었던 상황을 보면,
사회로 진출한 후에는 서로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았다.
중대형병원만이 살아 남아 의사와 환자가 거대한 병원에서 서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경성의전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개업의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교수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백인제 선생이다.
이 양반은 예전에 프로필을 한 번 소개한 바 있었는데,
알려진 바와 같이 경성의전 졸업후 외과를 택하여 경성의전 교수로 활동하였다.
백인제 선생은 임상의로 크게 성공하여 아마도 경성의전 경성제대를 통틀어 일제시대 가장 유명한 의사 아니었을까.
결국 의사라는 것은 환자를 잘 고쳐야 명의 소리도 듣고 성공하는 것이니 만큼
실력 좋은 외과의인 백인제 선생이 경성의전을 나왔건 경성제대를 나왔건 대중은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쪽도 문맹자가 대부분인 당시 조선 상황으로 볼 때 고학력자인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성제대 출신과 의전 출신이 큰 갈등을 빚기 어려웠던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조선인이 극소수였다는 것도 있었다.
결국 해방 전만 해도 경성의전과 경성제대는 위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저마다의 영역에서 서로 협조하며 의업에 종사하는 상황에 있었다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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