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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67

누에의 기원 근간 "한국의 고고학" 63호에 필자와 국립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 경희대 홍종하교수 고아라 선생이 함께 쓴 "누에 사육의 기원과 역사적 확산과정의 고찰"이 실린다. 정식 학술논문과는 다르므로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 작업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물 사육 및 식물 재배의 기원에 관해 살펴보고자 하는 동기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 아마도 동아시아 누에의 기원과 확산에 관해서는 한글로는 처음 나온 글이 아닌가 한다. 졸고를 게재해 주신 한국의 고고학에 감사드린다. 2024. 4. 13.
지키려 하면 모두 잃게 되리라 필자의 나이, 정확히는 50대 후반-60대 초반은 생각이 많은 시기이다. 필자도 노후는 정말 생각도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그런데도 요즘은 생각이 많고,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60대 이후가 놓여 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평생 책만 보고 글쓰며 살아온 필자가 지금까지 대학에서 활동한 것과는 전혀 다른 조건이 주어졌을 때 과연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는 고민이 많다. 우선 대학에서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방식과 다른 세상을 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생업과 공부가 일치해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개 학자로서 40대를 제대로 넘기지 못한 친구들이 50이 되면 경쟁력을 상실하고 학교 밖을 떠돈.. 2024. 4. 13.
(이대로라면) 끝내 이류로 그칠 한국 학계 필자도 이제 정년까지 한 손 손가락 조금 더 남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단행본으로 내고 정년 후 지금과는 전혀 달라질 공부의 판을 새로 짜기 위해 자못 바쁘다 요즘. 어쨌건 필자도 연구 경력이 이제 30년을 바라보고 있어서 나름 이 판에서 오래 굴러먹던 경력이 쌓이게 되었다. 30년 동안 한국에서 연구라는 것을 해 보고 이제 앞길을 전망해 보자면,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학문의 성장은 지금이 오를 수 있는 한계다. 우리나라 학계가 지금 절대로 국제무대에서 1류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결국 앞으로도 한국의 대학은 2류 언저리를 머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필자가 비관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다 제쳐놓고 우리나라 대학에는 연구에 미친 놈이 별로 없다. 머리 좋은 사람은 많다. 오히려 머리 좋은.. 2024. 4. 12.
2006년, 발굴 현장에서 2006년, 수원 화성 근교 어느 발굴 현장에서 조선시대 묘지군이 확인되어 인골 수습에 나섰다. 왼쪽부터 필자, 단국대 김명주, 가톨릭대 김이석 교수다. 이때까지 오창석 선생과 홍종하 선생은 연구진에 아직 합류하지 않았을 때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 뛰어든 시대인데 이것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2024. 4. 12.
일본인의 아호 에도 막부 이전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아호가 거의 없다. 어렸을 때의 아명, 성인식 이후의 이름, 그리고 은거하거나 불문에 귀의했을 때 법명이 있겠고, 또 별명이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다케다 신겐을 보면, 武田 信玄(たけだ しんげん) / 武田 晴信(たけだ はるのぶ)は、戦国時代の武将、甲斐の守護大名・戦国大名。甲斐源氏第19代当主。武田氏の第16代当主。諱は晴信、通称は太郎(たろう)。正式な姓名は、源 晴信(みなもと の はるのぶ)。表記は、「源朝臣武田信濃守太郎晴信」。「信玄」とは(出家後の)法名で、正式には徳栄軒信玄。 이렇게 되어 있다. 이름이 많지만, 초명과 관례 이후의 이름, 그리고 법명이다. 이름을 수시로 바꾸기도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작은 성의 영주로 태어나 쇼군이 될 때까지 이름을 바꿔 치웠는데, 幼名は竹.. 2024. 4. 10.
메이지시대 녹명관鹿鳴館의 유래 일본 메이지 시대에 지은 건물로 녹명관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어로는 로쿠메이칸이라 읽는다. 에도성에서 도쿠가와가 쫒겨 난 후 덴노가 쿄토에서 쇼군이 살던 성으로 옮겨 앉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 황거(皇居, 고쿄)이다. 일본은 개항이후 서구 제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그러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개입한 청일전쟁 시기까지도 여전히 서양 세력과는 불평등조약이었고 이 조약은 최종적으로 러일전쟁 이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정되어 사라졌다. 아무튼 1880년대에 일본은 불평등조약 개정을 위해 일본이 서양 못지 않은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덴노가 사는 동경의 궁성 옆에 외국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서양식 건물을 짓는데 이것이 바로 녹명관, 로쿠메이칸이다. 녹명관을 기..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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