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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19

인생에 대한 가장 심각한 고민의 시기 인생에 대해 가장 심각한 고민의 시기는 60 전후가 아닐까. 필자 생각에는 고졸-대입 시기 만큼이나 인생의 격변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에 기대하면 살아가던 고졸-대입 때와는 달리 이 시기는 질병과 죽음의 준비까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60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그런 생업과 평생 작업의 일 외에도 어떻게 여가를 보낼것인가, 어떻게 대인관계를 유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도 그 고민 안에 포함되니 가히 전방위에 걸친 숙고의 시기라 할 만하다. 공자께선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라 하셨는데 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인지 대략 십년 정도 뒤로 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 지천.. 2024. 10. 31.
절대권력을 쥔 황제 일문이 문제다 대한제국이 망한 결정적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황제 일문이 사실상의 절대 권력을 쥔 상태에서 삽질을 한 세대 동안 하고 다닌 것이 가장 크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 사실 지정학적 위치가 불리하다고 하지만 여러 열강의 이해가 한반도에서 충돌하여 동남아 태국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구한말 전략을 조금만 현명하게 가져갔다면 국권 손실까지는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대한제국이 멸망으로 달린 가장 큰 이유는 고종, 순종, 명성황후, 대원군 등 황제권을 둘러싼 일문이 삽질을 하고 돌아다닌 이유가 가장 크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도 대한제국 관리 중에는 .. 2024. 10. 29.
속설이 훨씬 그럴 듯한 대한문大漢門 대한제국의 정궁은 덕수궁-. 그 덕수궁의 정문이 大漢門인데 이 문 이름을 볼 때 마다 참 한가한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문의 연원은 乃立大漢正門, 備皐門應門之規. 塗勤丹 , 取霄漢雲漢之義, 德合蒼 이라던가 伏以, 河淸屬千一之運, 邦永昌, 漢都奠萬億之基, 門號特揭. 라는 건데 명색이 제국을 선언하고 나서 황궁 정문에 이런 사주풀이 이름 받아와 짓는 것 같은 한가한 이름을 지어 붙인다는 것이 참 명색이 유교국가면 정치를 갈고 닦아 덕업을 세상에 펴겠다던가, 그게 아니고 제국주의 국가면 부국강병을 연상할 만한 뭔가를 걸던가 해야지 무슨 부적도 아니고 쉽게 말해서 발복해서 로또나 맞자는 이야긴지. 당시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저런 이름을 황궁 이름으로 걸었는지 도통 이해가 .. 2024. 10. 28.
한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이들의 우리나라 가축 평을 보면영 좋지 않아 말, 닭, 돼지 등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다 하고, 실제로 이들 대부분의 종은 20세기 넘으면서 재래종이 거의 살아 남지 못하고 외래종이 사실상 완전히 대체했다. 여기서 딱 하나 예외가 소다. 소에 대해서는 극찬 일색이다. 일단 크고 힘도 좋고 순하다 라고 한다. 소를 써서 농사를 지으면 사람 10명 몫을 한다고 했다. 소가 없으며 농사가 망할 판이라, 조선에서는 뭐라고 했냐 하면, 흉년이 들어 소를 잡아 먹으면 사형으로 다스린다하고 그 논리가소를 살려 놔야 농사가 가능해지고 농사가 되면 사람 100명을 살릴 수 있다. 따라서 소를 잡아 먹는 사람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사람 100명을 살리는 것이라 했다. 왜 유독 한우만 이렇게 대단.. 2024. 10. 28.
할복을 버리고 자존심만 취해라 요즘 한국문화가 약진하는 모습을 보면이것이 사실 80년대 일본이 한참 잘나갈 때 일본에서 원하던 일본문화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쪽에서도 이리 만들기 위해 그렇게 돈을 붓고 국가적으로도 지원했는데결국 그게 잘 안 되고 끝나버렸다. 필자는 일본의 대중문화 전략의 실패에서 가장 큰 원인은일본문화의 고유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일본의 문화에서 다도, 할복, 우키요에 등 일본문화의 고유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런 쪽에 돈을 때려 부었다. 일본문화가 그자체 통채로 서구에서 존경받기를 원하고 이것은 국력만 받쳐준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물론 90년대 이후 일본의 기나긴 침체기가 없었다면이러한 일본문화의 세계적 표준화가 가능했을지 어쨌는지 모.. 2024. 10. 28.
나선정벌을 다시 생각한다 나선정벌이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때는 국사교과서에 상당한 비중으로 실려 있었다. 열심히 북벌을 추구한 효종이 준비한 무력을 한 번 시험해 볼 겸 파병했다던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다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이걸 1차 정벌 2차 정벌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 굉장히 중요하게 간주하는건 알겠는데 솔직히 요즘 김정은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에 폭풍군단 파병한 거랑 이게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선정벌이 교과서에 그렇게 지면을 할애해 쓸 만한 사건이었을까? 가정하자면 폭풍군단이 우크라이나 군을 격퇴하여 용맹을 떨친다면 이번 김정은 파병도 나선 정벌 만큼 중요하게 수백년 후에 실릴까? 애초에 나선정벌 자체가 교과서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질 만한 사건이 전혀 아니었다고 본다. 나선정.. 202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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