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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4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도작이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남부, 특히 남해안 일대의 촌락유적과 일본 큐수 북부의 소위 대륙계 야요이인 초기 정착촌, 이 두 촌락유적 주변에는 농지가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경작지에는 양측 모두 비슷한 비율의 논이 포진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의 촌락에 비해 후쿠오카 평원 일대의 정착촌은 논이 더 많은 모습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우 야요이 촌락 복원 모형이나 그림에서는 거의가 풍요로운 논으로 둘러싸인 촌락을 그리고 있더라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묘사가 그 쪽 발굴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반도 남부는 어떠했을까? 한반도 남부의 촌락 역시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을까? 양자간에는 재배하는 작물의 종류 별 비율 차이가 있었을까? *** previous article .. 2024. 5. 22.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며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김단장께서 올리신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면 이 인골은 정말 필자로서도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커플이 한 무덤 안에서 서로 마주보며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꽤 있다. 필자도 이전 인도 발굴에서 부부합장묘로 보이는 케이스를 하나 보고하여 BBC에 보도된 바가 있었다.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46806084?fbclid=IwAR0UyI9W4nwPPH8FJbe5MKRPINwxzNXa5YQlVTFmsf0VzSsmkivmRbW562Y 이외에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정도의 인골은 보았지만, 이 경우처럼 서로 안고 있는 자세의 인골은 필자는 정말 처음 보는것 같다. 저런 자세가 나오려면, 1. 일단 추가장은 아니다. 두 사람이 거의 비슷.. 2024. 5. 22.
삼국지 동이전의 "稻"와 도작중심의 사회 삼국지 동이전에는 벼를 뜻하는 稻가 딱 두 군데 나온다. 어디인가 하면 바로 변진과 왜이다. 변진: 土地肥美, 宜種五穀及稻, 曉蠶桑, 作 布, 乘駕牛馬.왜: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흔히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오곡"에 벼가 포함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는데,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오곡과 벼를 구분해 썼다. 위에 변진조 문구를 보면 알 것이다. 宜種五穀及稻한반도 북부의 여러 나라에는 오곡은 있지만 벼=도는 기록에 없다. 부여: 土地宜五穀옥저: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읍루: 有五穀·牛·馬·麻布.여기서 말하는 "오곡"이란 곧 우리의 잡곡을 말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벼 재배가 변진과 왜에서만 있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한반도 서북부 평양일.. 2024. 5. 22.
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 2024. 5. 21.
야요이 정착촌의 논과 밭 대륙계 야요이인의 정착촌과 주변의 논. 야요이 마을 주변에는 항상 논이 있다. 복원된 야요이 마을 주변에도 논이 천지다. 일본의 논농사는 대륙, 정확히는 한반도를 경유해서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동기시대 마을도 저렇게 논에 둘러싸여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잡곡농경-혼합농경-도작농경의 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경우 남해안 일대를 제외하면 그 이북은 혼합농경지대로서 청동기시대 마을이라고 해서 논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아마 논보다 밭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논이 밭과 거의 비슷한 비율을 점한 것은 아마도 한반도 남해안이 되면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도작이 전달되었다고 해서 그 마을의 구조, 마을 주변의 논과 밭의 비율.. 2024. 5. 21.
필자는 왜 농경과 동물사육, 사람 이동에 주목하는가 필자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를 흉내낼 생각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검토는 필자 입장에서는 그 성과를 받아 인용하면 그뿐이지 이에 대해 필자가 왈가왈부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 생각한다. 필자는 그러면 왜 농경과 동물사육, 사람이동에 대한 글을 올리는가. 바로 필자의 60세 이후 연구가 이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금 작업은 시간이 남아 여흥 삼아 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오던 미라, 기생충, 발굴조사 작업만큼이나 serious한 일이라 하겠다. 그 전체 모습은 빠르면 2-3년 안에 그 구조물을 드러낼 것이라 본다. 그때까지는 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넘나들더라도 주제 넘은 짓이라 생각지 말고 조금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통섭의 길은 어차피 이런 과정을 밟을 ..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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