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7 마왕퇴 (16): 관속의 액체 마왕퇴 발굴 당시 관련자들의 주목을 끈것은 관속의 액체였다. 마왕퇴는 전한 제후왕의 예에 따라 여러 겹 관곽이 포개져 있었는데 마지막 관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상당량의 액체가 바닥에 차 있었고 썩지 않은 유물은 바로 그 액체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마왕퇴 무덤이 처음 열렸을 당시 하나도 썩지 않은 시신과 유물을 보고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은 부패하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처리된 것이라 보았다.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원망은 사실 한대에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고 그 시대에 시도했던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마침내 성공을 거두어 시신과 유물이 잘 남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관을 열었을 떄 유물은 물론 시신까지 완벽하게 남은 것을 보고 당시 발굴에 참여한 사.. 2023. 11. 1. 마왕퇴 (15): 누에의 동진 중국은 동물 사육의 측면에서 최초로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한 때 상당히 탐내서, 소, 말, 닭 등 각 종 가금 가축에 대한 유전정보 취합이 있을 때마다 중국기원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이 중에 현재 중국 내에서 최초로 사육되기 시작한 가축으로는 대략 돼지 정도가 거의 확실하며, 소와 말은 외래종이 분명하며 닭도 남방에서 북상했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다. 야생닭이 중국 본토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떄문에 중국에서도 동물 사육은 개-- 돼지--기타 동물 순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 순서는 우리나 일본도 시간차를 두고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동물 사육 측면에서 중국기원을 인정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단-양잠의 누에다. 알다시피 누에나.. 2023. 11. 1. 마왕퇴 (14) : 소사단의素紗襌衣 마왕퇴에서 나온 유물 중에 소사단의라는 것이 있다. 마왕퇴 미라가 보관된 호남박물원 (전 호남성박물관) 홈페이지 메인으로 등극해 있을 정도의 대단한 유물이라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 점은 길이가 128센티, 소매 길이가 190센티인데 무게가 겨우 48이고 다른 한점은 49그램이었다. 옷 두 벌의 무게가 합쳐서 100그램이 안되었고 소매와 목둘레 동정을 떼버리면 겨우 25그램이었다. 복식전공자에게는 이 옷은 보기 드문 전한대 비단 옷이 될 터이고, 고고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필자처럼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유구한 중국의 비단제조역사를 웅변하는 생생한 유물이 되겠다. 양잠과 비단의 기원에 대해서는 가끔 딴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도가 비단의 기원이라고 주장.. 2023. 11. 1. 세계사란 세계와 한국의 대화 E. H. Carr에게 역사란 "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라 하여, 시간적으로 선후 관계인 두 시대의 사람과 사건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했는데, 그렇게 본다면, 세계사란, Unending dialogue between us and them 아니겠는가? 같은 마왕퇴가 중국인의 시각에서와,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겠다. 내재된 인문학적 토양이 척박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사"와 "세계사"간 대화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2023. 11. 1. 마왕퇴 (13): 아직도 새로운 것이 남아 있을까? 마왕퇴는 이제는 약간 한국에서도 한물 간 것 같지만, 사실 일반인은 물론 연구자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주제이다. 그리고 그 발굴 경과도 한글번역된 것이 있어 대략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마왕퇴에 대해 더 이야기 할 것이 있을까? 물론 지금까지 중국에서 나온 마왕퇴 관련 연구에 착안하여 이에만 집중한다면 더 할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마왕퇴가 아래로 아래로 연결되어, 조선시대까지 연결된다면? 이 부분에 착안해야 마왕퇴가 새로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 Editor's note *** 앞서 편집자는 마왕퇴가 삼국사기요 삼국유사이며 고려사요 실록이라는 말을 했다. 한국문화사 영역으로 포섭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이는 요컨대 마왕퇴의 활용범위를 넓히는 일이며 한국문화사의 영역을 .. 2023. 10. 31. 마왕퇴 (12): 회곽의 역할을 했던 백고니, 청고니 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조선시대 미라의 형성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회곽이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다. 회곽이 온전하지 않은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온 적이 없음에서이다. 조선시대 회곽을 연구한 많은 분이 아마 회곽이야말로 조선시대 미라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마왕퇴 미라는 일견해서 조선시대 미라와 다른 것 같지만,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서로 닮았다. 특히 조선시대 무덤의 회곽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마왕퇴의 백고니, 청고니, 즉 햐얗.. 2023. 10. 31. 이전 1 ··· 160 161 162 163 164 165 166 ··· 33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