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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놀고대학생이 놀자고 부른 노래 놀고 대학생이 놀자고 부른 노래이니 잘못 없다. https://youtu.be/Apqidw-Nfb4 2023. 8. 9.
놀고대학생을 다시 기린다 놀고 (혹은 먹고) 대학생은 이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지만, 대학 4년 내내 공부는 않고 놀아제끼다 졸업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놀고대학생이란 후진국이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출현할 수 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놀고 대학생"이란 고학력 졸업자가 필요한 개발도상국에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 수준 미달의 대학을 대규모로 속성으로 증설하고자 할 때 그 대학안에 자격 미달의 "교수"와 수업 안 듣고 놀아도 졸업하게 되는 "놀고 대학생"이 무더기로 온존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자격미달의 교수와 놀고대학생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메이지시대를 거쳐 19세기 내내 출현했었고 20세기 들어와 30년대쯤 되어야 간신히 일본 본토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진정되었다. "놀고대학생" 현상은 국가.. 2023. 8. 9.
실력없는 사람이 변려문 읽는 법 필자처럼 실력이 없는 사람은 변려문을 읽는 일은 고역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변려문이 특수한 경우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고 고문이 장려되었기 때문에 별문제 없는데, 통일신라-고려시대 글에는 변려문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글은 상당히 읽기가 난삽해서, 고려시대 글이 조선시대보다 읽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경우 그렇다는 소리다. 필자가 어거지로라도 변려문 읽는 방법을 써 보면, 변려문이 해석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4자, 6자로 댓구를 극악하게 맞추려 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글자를 넣게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잘 안 쓰는 글자) 둘째는 각종 일화나 성어를 밑도 끝도 없이 집어 넣어 정확히 해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이미 검증된 기관에 의해.. 2023. 8. 9.
동문선: 최치원 발해 인식의 양면성 흔히 최치원은 발해를 속말말갈의 후신으로 생각하여 고구려와는 별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근거는 謝不許北國居上表의 다음 구절이다. 臣謹按渤海之源流也, 句驪未滅之時, 本爲疣贅部落靺羯之屬, 寔繁有徒, 是名栗末小蕃. 甞逐句驪, 內徙其首領乞四羽及大祚榮等, 至武后臨朝之際, 自營州作孼而逃, 輒據荒丘, 始稱振國. 위 구절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최치원은 신당서, 구당서 중 신당서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최치원이 발해를 마냥 고구려와는 다른 말갈로만 보고 있었는가 따져 보면 동문선에는 이와 다른 취지의 최치원 글도 보인다. 동문선 47권: 新羅王與唐江西高大夫湘狀: 昔貞觀中。太宗文皇帝手詔示天下曰。今欲巡幸幽薊。問罪遼碣。盖爲勾麗獷俗。干紀亂常。遂振天誅。肅淸海徼。武功旣建。文德聿修。因許遠人。亦隨.. 2023. 8. 8.
시가 별로인 한국전통문학 필자 정도 수준에서 한문학을 평가할 수 있을지 좀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냥 있는 느낌대로 써 보면,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비교하여 시가 별로다. 20세기 이전 국문시 뿐 아니라 한시도 별로다. 읽어 봐도 별로 감흥이 없다. 그 시대 사람들은 달랐는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없는 감흥을 있다고 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하는 어린애의 치기로 봐주기를. 반면에 동문선을 보면 우리나라는 시를 제외한 나머지 서, 발, 전 등 문장들은 좋은 글이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소명 문선을 보면 전체의 거의 절반 정도가 시인데 반해, 동문선에는 시가 전체의 17프로 밖에 실려 있지 않다. 동문선이 대부분 고려시대-조선초의 저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장을 낮게 보는 .. 2023. 8. 8.
데라코야寺子屋와 서당 일본의 근대교육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전통 교육기관이던 서당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였다. 이것이 아주 의미가 깊은 부분인데, 한국의 서당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의 데라코야寺子屋이다. 일본은 데라코야 선전을 엄청나게 한다. 전국적으로 몇만 개가 있었는데 그 숫자는 유럽을 앞질러 일본의 교육수준이 이만큼 높았다던가 하는, 뭐 이런식의 국뽕 선전이다. 그런데-. 조선에도 국치 이전 서당은 넘칠 만큼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전통사회에서 한국이 서당이 부족했겠는가? 한국 전통사회에 동네마다 서당이 있었던 연고가 깊다는 고구려시대 경당만 봐도 안다. 고구려 경당을 일각에서는 후대의 향교처럼 생각하여 지방 교육기관으로 보지만 필자가 보기엔 경당은 서당의 기원이다. 서당은 초등교육기관으로서 아주 중..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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