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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당파 없앤다고 학교를 다 때려 부순 흥선대원군 이하응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아는 부분이 많지 않다. 대원군은 당시 당쟁의 온상이자 민폐의 진원지인 서원을 없앤다 하여 각광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서월철폐후 조선땅에는 40여 개 잔존 서원을 제외하면 서당 외에는 교육기관이 일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원철폐 후 이를 대체하는 교육기관을 국가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정황을 보면 아마 사실일 것이다. 대원군-고종 연간 상황을 보면 이 시기가 일본 메이시시대에 거의 대응하는데 필자가 이 시기에 조선왕실이 조금만 제정신이고 똑똑했다면 나라가 식민지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이야 하는 부분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근대적 교육기관은 개화를 하게 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 2023. 8. 11.
서원철폐 : 1864년 1864년. 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려 전국 서원을 다 문닫게 하고 딱 47개소만 남긴다. 이 서원철폐령은 당시까지 서원의 운영이 당파를 만들고 주변 백성에 대한 수탈의 진원지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것은. 서원은 당파의 온상이기도 했겠고, 수탈의 폐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여기는 어디까지나 교육기관이기도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후기, 향교가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상황에서는 서원이야말로 지역사회 교육의 중심이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문제는 이런 서원이 철폐된 후, 그 교육기관 공백을 어떻게 대책을 세워 보완했다는 이야기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서기 1864년 이후 조선은 서원이 철폐되고 사실상 서당 이외에는 교육기관이 사실.. 2023. 8. 11.
서당, 서원, 향교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한국에는 20세기 이전 수 많은 교육기관이 있었다. 서당, 서원, 향교, 그리고 성균관이 있었다. 여기서 20세기 이후 정규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한 경우는 몇이나 될까? 놀랍게도 그 숫자는 1이다. 성균관만 살아 남았다. 그것도 사립으로. 20세기 이전, 그 많던 교육기관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왜 20세기 이전의 교육기관들은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모두 다 살처분되어버렸을까? 조선땅에는 1920년대까지도 서당이 2만 5천개, 대원군의 서월철폐령 이전까지 서원수가 1700개에 달했다. 이 많은 수의 교육기관이 단 하나도 20세기 이후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그 폐허 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일제시대의 식민지교육: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전문학교이.. 2023. 8. 10.
일본 전근대 교육기관의 연속성 (필자 주: 앞에 쓴 데라코야 이야기가 좀 부족해서 보탠다. 결국 일본 전근대 교육기관이 어떻게 근대적 교육기관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 이를 시리즈로 만들어 글을 남긴다.) 일본이 앞서 데라코야를 대폭 소학교로 전환한 이야기를 했다. 이를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일본은 역시 전통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구나. 그래서 데라코야가 소학교로 바뀌었지만 우리는 서당을 거의 초등교육기관으로 바꾸지 못했다. 우리도 반성하자.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일본이 스스로의 전근대문명이 귀중한 것이라 자각하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예를 들어 일본 미술. 전통 일본미술이 대단하다고 처음 인정한 것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일본의 근대화를 "탈아입구"로 설명하지만, "탈아".. 2023. 8. 10.
일제시대 식민지 구조 연구의 고도화를 제안하며 앞서 쓴 것처럼 필자는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시스템 자체가 조선인들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로서 당시 조선인들은 그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한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필자가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한 교육제도다. 일제시대 교육제도처럼 그 당시 조선인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 당시의 교육제도는 조선인의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1930년대 이후 이미 일본은 교육수준이 생활수준과 밀접히 결부되는 시대로 들어가 배우지 못한 조선인은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실상 막혀 있었다는 말이다. 이 당시 조선의 소학교가 몇 개라는 식의 통계로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보는데 필자의 글을 꼼꼼히 봐 오신 분들이라면 왜 이.. 2023. 8. 10.
식민지 조선: 교육시스템의 확립 식민지 조선의 교육 시스템은 "무관심과 방기, 비우호적인 제도"로 정의할 수 있다. 조선인에 대한 교육시스템이 조선인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려 이를 바탕으로 근대화의 엔진으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설계였다는 뜻이다. 식민지 조선의 교육시스템이 성립됨에 있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앞에 썼지만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선의 교육제도가 고등교육 졸업자를 배출하는 데서 극히 불리한 시스템이었다는 말이다. 교육제도의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대졸자가 양산되는 일본 본토와 달리 조선은 한 단계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이는 조선인이 교육비를 부담할 재정적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제도 자체가 조선인에게 비우호적으로서 돈이 있더라도 상급학..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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