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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실력없는 사람이 변려문 읽는 법

by 초야잠필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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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처럼 실력이 없는 사람은 변려문을 읽는 일은 고역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변려문이 특수한 경우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고 고문이 장려되었기 때문에 별문제 없는데, 

통일신라-고려시대 글에는 변려문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이런 글은 상당히 읽기가 난삽해서, 

고려시대 글이 조선시대보다 읽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경우 그렇다는 소리다. 

필자가 어거지로라도 변려문 읽는 방법을 써 보면, 

변려문이 해석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4자, 6자로 댓구를 극악하게 맞추려 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글자를 넣게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잘 안 쓰는 글자)

둘째는 각종 일화나 성어를 밑도 끝도 없이 집어 넣어 정확히 해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이미 검증된 기관에 의해 번역된 변려문도 유심히 보면 번역자가 자신이 없어 하는 것을 간취할 수 있는 경우가 많더라. 

필자처럼 얕은 실력으로 변려문의 뜻이라도 간취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댓구를 맞추려 넣은 글자들이 많은지라 한두 자 못읽어도 뜻을 이해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최치원의 아래 글을 보면, 

太宗文皇帝。震赫斯之盛怒。除蠢尒之群兇。親率六軍。遠廵萬里。龔行天罰。靜掃海隅。勾麗旣息狂飈。劣收遺燼。別謀邑聚。遽竊國名。

이렇게 댓구를 맞춰 써놨지만 유심히 보면 한글자 한글자 악착같이 해석하지 않아도 뜻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글자로 문장을 이루지 않고 필요 없는 글자를 넣어 댓구를 맞추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위 문장 같은 경우, 

太宗文皇帝。震盛怒。除群兇。親率六軍。遠廵萬里。行天罰。掃海隅。勾麗旣息狂飈。收遺燼。別謀邑聚。遽竊國名。

이 정도로 줄여도 해석하는 데 전혀 문제 없다는 말이다. 

필자 같이 간신히 한문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다. 

 

P.S.1) 뭐 옛사람들이 변려문을 어떻게 완성했을지 모르겠지만 필자라면 먼저 고문으로 글 내용 틀을 잡아놓고 그 다음에 폼잡는 글자, 댓구용 글자를 추가하여 완성했을 것 같다. 그게 제일 쉽지 않았을까. 

P.S.2) 조선시대 국조보감인지 연려실기술인지 보면 왕이 과거 답안을 보고 알아들어 볼 수가 없게 써 놨다고 짜증을 내는 기록도 있다. 고문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뒤이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변려문을 흉내내어 쓰면 아무리 옛사람들이라 해도 읽기 곤혹스러운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복원된 사산비명 대숭복사비. 고문이 장려된 이유는 이데올로기에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댓구를 극악하게 맞추려 하고 폼잡는 글자를 넣자고 붓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완성된 글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옛사람도 읽기 어려웠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고문장려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더 지지를 얻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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