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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데라코야寺子屋와 서당

by 초야잠필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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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데라코야 한 풍경. 이거 보면 완전히 일본식 서당이다.

 
일본의 근대교육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전통 교육기관이던 서당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였다. 

이것이 아주 의미가 깊은 부분인데, 

한국의 서당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의 데라코야寺子屋이다.

일본은 데라코야 선전을 엄청나게 한다.

전국적으로 몇만 개가 있었는데 그 숫자는 유럽을 앞질러 일본의 교육수준이 이만큼 높았다던가 하는, 뭐 이런식의 국뽕 선전이다. 

그런데-. 

조선에도 국치 이전 서당은 넘칠 만큼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전통사회에서 한국이 서당이 부족했겠는가?

한국 전통사회에 동네마다 서당이 있었던 연고가 깊다는 고구려시대 경당만 봐도 안다. 

고구려 경당을 일각에서는 후대의 향교처럼 생각하여 지방 교육기관으로 보지만

필자가 보기엔 경당은 서당의 기원이다. 

서당은 초등교육기관으로서 아주 중요하다. 

에도시대에 일본이 본격적으로 유교 교육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데라코야가 18세기 이후 급증했다. 

문제는 이것이 근대화 국면에서 어떻게 처리 되느냐인데-. 

일본은 이 데라코야의 상당수를 소학교로 전환했다. 

왜냐하면 소학교 증설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소학교를 늘리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할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일본의 대한제국 합병 후, 기존의 서당은 몽땅 불법 교육기관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소학교를 설치할 때까지 약 10여년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무슨 공백기냐 하면 서당을 없애고 소학교는 설치 못한 공백기가 나온다는 말이다. 

아마 한국인의 국가가 근대화를 추진했다면 기존의 서당은 모두 소학교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이런 작은 차이가 모이고 모여 식민지 백성을 만드는 것이다. 


서당은 절대로 우습게 보면 안되는 교육기관이다. 조선은 서당과 서원, 성균관이 모두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일제시대 초기 근대교육의 공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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