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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2) 앞서 김단장께서 연구보고와 수준있는 학설과의 차이를 이야기 하신 적이 있지만, 물론 이 이야기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겠지만 연구보고 이외에 제대로 쓴 학술 논문이라 해도 자연과학분야에서는 논문 한편에 변죽만 두드리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개 논문은 확고한 증거에 입각한 내용만 fact로 인정되기 때문에 조금만 이에서 이탈하면 사독과정에서 이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거나 그게 아니면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에 불과함을 고찰에서 분명히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수십 수백 편 논문이 쌓여도 연구자 주장의 큰 그림이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 이러한 엄격한 사독 과정에서 벗어나 있는것이 대개 단행본인데, 단행본은 사독이 생략되거나 어느 정도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 2023. 11. 16.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1) 필자가 쓴 글 중에 웻 랩 (Wet Lab), 드라이 랩 (Dry Lab)이라는 표현이 있어 여기에 대해서 조금 부연한다. Wet Lab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자연과학 실험을 하는 연구실을 말한다. 대개 실험에는 물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과학 실험실 전반을 대개 Wet Lab이라 부른다. 필자도 90년대 중후반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Wet Lab일을 해왔다. 필자 자신의 독립 연구실이 시작된 것이 1999년이었으므로, 필자 명의의 Wet lab 경력은 약 25년 정도 된다. Wet Lab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과학 연구실을 대표하지만 모든 자연과학 연구실이 Wet lab은 아니다. 실험실 이외에서도 자연과학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23. 11. 16.
태봉이 수덕이라면 금덕은 고구려인가 신라인가 태봉 연호 정개政開가 묵서된 목간이 나왔다고 한다. 수덕만세水德萬歲 태봉이 수덕이니 그 누리는 복이 영원하라는 뜻이리라. 태봉이 수덕이라고 했다면 그 앞의 금덕은 신라가 맞을까. 금덕이 고구려고 화덕이 신라가 아닐까. 善宗自稱王. 謂人曰, “徃者, 新羅請兵於唐, 以破髙句麗. 故平壌舊都, 鞠爲茂草. 吾必報其讎.” 善宗以強盛自矝. 意欲并呑, 令國人呼新羅爲㓕都, 凢自新羅來者, 盡誅殺之. *** Editor's Note *** 수덕만세水德萬歲는 태봉 궁예가 쓴 연호다. 911년부터 914년까지 사용하다가 개원하면서 국호를 마진摩震에서 태봉으로 고쳤다. 오행은 상생이 있고 상극이 있다. 전국시대 말기 추연이 오행을 들고 나왔을 땐 상생설밖에 없었다. 상극설은 한대에 등장하는데 이게 획기인 까닭은 왕조 교체 논리를.. 2023. 11. 16.
한국사 북방개척의 문제에서 요점은.. 북진정책이나 사대주의 이런 게 아니다. 한국사 북방개척에서 정말 중요한 요점은 당시의 농업기술사다. 왜 통일신라는 북위 39-40도를 돌파 못했고, 이것을 14세기 후반에는 북위 41-43도까지 올라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윤관이 9성을 지었네, 김종서의 육진이 어떻고 하는 그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수백년 전에는 성공 못했던 농사가 이 시대에는 기술적으로 달라졌는가, 이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라의 북방한계선은 그 당시까지도 쌀농사를 기반한 한반도 남부의 문명으로서는 한 번도 돌파해보지 못한 기술적 한계선이었기 때문에 김춘추가 사대주의자네 아니네 이런 거 하고는 상관없이 대개 그 정도쯤에서 북진은 머물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로서.. 2023. 11. 14.
북위 41-43도 이야기 다음으로 북위 41-43도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사에서 북위 41-43도가 돌파된 시기는 조선초기다. 이 시기에 사군 육진이 개척되면서 두만강 압록강선이 확정되고 북위 41-43도 선까지 북상했다. 일본사에서 북위 41-43도 선이 돌파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대략 메이지유신 이후 북위 41-43도선의 본격적인 개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 시대에는 한국의 경우 청의 봉금 지대인 북위 44도선까지 올라가 벼농사를 시작하였는데, 19세기 후반이 되면 한국과 일본사에서 각각 북상한 지리적 한계는 거의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사에서 북진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문제와 결부된 농업 기술, 생산성의 문제다. 한국이 사대를 했건 .. 2023. 11. 14.
북위 39도-40도 이야기 한국지도다. 북위 39도와 북위 40도 선이 보일것이다. 대체적으로 북위 39도 선은 통일신라 때 신라가 규합한 대동강-원산만 선에 부합한다. 북위 40도선은 대체로 고려초기 북쪽 국경선에 부합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도 헤이안시대는 북벌의 시대였는데, 고대 일본의 고분은 북위 39도선 이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헤이안 시대 내내 북위 39-40도선 일대에서 이 지역 원주민과 야마토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대략 우리의 통일신라 말-고려초기에 해당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위도에서 북진정책이 시도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현명한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필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아실 것이다. 통일신라 북쪽 경계와 고려의 북진 정책이 벌어진 지리적 판도는 민..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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