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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022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조선후기 이른바 자생적 근대화 담론도 의미 없는 일이다 라고.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동란을 왕조교체기의 혼란 내지는 토지 분배의 모순 극복 등으로 간단히 설명해 버리는데 조선후기 자생적 근대화는 어떻게 설명이 된다는 것인가? 조선후기 이른바 중농파 실학자를 근대화의 선구로 보는 것도 모두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의 동란을 우리가 현재 해석하는 방법.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후삼국, 무신정권, 여말선초는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에서 이에 상응하는 시기를 쉽게 간파할 수 있다. 후삼국은 헤이안시대 말기의 혼란, 무신정권은 무가정권의 성립, 그리고 여말선초는 일본사에서 수시로 볼 .. 2024. 9. 21.
여말선초의 괴벨스 여말선초 신진사대부들은 이전까지 자연스럽게 발전해 오던 농장을 해체하면서 성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농장은 해체되고 사원은 불벼락을 맞아 재산은 몰수되고 승려들은 사대부들의 종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과정의 결과로 성립된 것이 바로 과전법 체제이다. 우리 역사학하에서 여말선초에 대한 현재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소위 신진사대부들의 정치 프로파간다를 곧이 곧대로 신뢰하면서 성립된 것으로, 역사의 바른 해석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이건 일본이건 이러한 농장이나 장원은 한국처럼 강제로 해체된 바가 없었고,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신진사대부들의 프로파간다에 속지말라. 정도전? 그는 새로 만든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부르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는 조선왕조의 괴벨스다. 괴벨스의 .. 2024. 9. 21.
권문세족 겸병농장은 일본으로 가면 무엇이 되는가 고려말 권문세족이 경영했다는 겸병 농장은 일본으로 건너가면 무엇이 되는가? 아래를 보자. 日本の荘園(しょうえん)とは、古代・中世(8世紀から16世紀)に存在し、権門(中央の貴族(公家、武家の棟梁)・大寺社など)が国家から領有支配が認められ収入を得た農地とその周辺の山野を含む土地を指す[1]。その農地は「公領」に対して「私領」と呼ばれ、多くは国家へ納める税の減免が認められ免田となった。 우리의 권문세족의 겸병 농장과 똑같지 않는가? 일본의 장원이 바로 우리의 겸병 농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사에서는 이 장원은 "사회악"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이 장원을 없애는 것을 "정의의 심판"으로 부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장원은 역사의 순리적 발전으로 보고 이를 해체하려 한 공가의 시도를 "반동"이라고 본다. 2024. 9. 21.
여말선초 그들은 왜 땅이 필요했는가 여말선초 조선 건국세력의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우리는, 고려말에는 송곳하나 꽂을 곳이 없이 권문세가의 농장이 백성을 침탈하여 고통받고 있어 사전을 혁파하여 권문세가의 땅을 몰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전법체제를 출범시켰다고 하고, 이것을 일종의 혁명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송곳 하나 꽂을 수 없는 겸병된 농장을 일본에서는 동시기에 장원이라 불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하는 성리학자의 혁명없이도 장원은 잘만 성장하고 발전하여 무가정권을 출범시키고 그것이 에도막부까지 발전하여 조닌문화, 거대한 화폐경제를 출현시키고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말선초의 "농장"과 "겸병"은 정말 사회악이었을까? 군역을 도피한다고 공격당하여 절집과 인근의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대부들의 종 아.. 2024. 9. 20.
성리학 벽이단론闢異端論의 기원: 맹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리학의 벽이단론 기원은 맹자다. 맹자는 이단을 통렬히 비판하였는데 막상 이단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가혹하지 않았다. 맹자는 이단을 물리치는데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孟子曰: “逃墨必歸於楊, 逃楊必歸於儒. 歸, 斯受之而已矣. 墨氏務外而不情, 楊氏太簡而近實, 故其反正之漸, 大略如此. 歸斯受之者, 憫其陷溺之久, 而取其悔悟之新也. 今之與楊墨辯者, 如追放豚, 旣入其苙, 又從而招之.” 放豚, 放逸之豕豚也. 苙, 闌也. 招, 罥也, 羈其足也. 言彼旣來歸, 而又追咎其旣往之失也. ○ 此章見聖賢之於異端, 距之甚嚴, 而於其來歸, 待之甚恕. 距之嚴, 故人知彼說之爲邪; 待之恕, 故人知此道之可反, 仁之至, 義之盡也.군자가 이단을 처분하는 방법은 엄하게 대하되 돌아오면 다 받아주고 도망.. 2024. 9. 20.
과격한 척불론은 성리학의 본령이 아니다 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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